소요산(逍遙山 444.2m)은 선운산의 명성에 눌려 숨죽여 왔다.
고창의 젖줄 인천강을 사이에 두고 높이가 같은 선운산 경수봉과 마주보고 있어 형제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선운산 자락에 맥을 대기에는 범할 수 없는 경계가 선명하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지 않는가?.
이는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말.
선운산과 소요산 사이에는 인천강(주진천)이 선명한 경계를 가르며 서해의 곰소만으로 흘러든다.
소요산 자락은 걸출한 문장가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의미로 문필봉이란 별칭도 얻었다.
소요산 9부능선의 소요사는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으로서 소요대사, 연기조사, 도선선사 등 당대 고승들이 머무르기도 하였다.
또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 인촌 김성수, 미당 서정주 등이 그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동학혁명의 주인공 전봉준 장군 부친이 소요산 암자에서 글공부하며 길몽을 꾸고 전 장군을 잉태했다고도 전해 온다.
소요사는 신라 경덕왕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고, 소요대사가 개창해서 얻은 이름이다.
소요산과 연기마을 등 주변의 지명들은 모두 이와 관련되어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소요사엔 역대 이름난 승려들이 배출되었지만 정유재란과 6·25때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지었다.
추사 김정희가 쓴 소요사 현판은 분실되었다.
정상에 서면 사방 조망이 시원스럽다.
북쪽은 곰소만과 죽도 너머로 드넓은 서해와 내변산의 산줄기가, 서쪽으로는 선운산이 한눈에 잡히고, 동쪽 가까이에는 화시산이 반긴다.
그 너머로는 내장산·방장산·입암산이 아스라이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특히 남쪽 인천강 병바위에는 변인천 형제가 초막을 짓고 어진(仁)고을 수령은 물(川)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주창했던 곳이다.
주변엔 아홉 개 바위가 있고, 걸출한 인재가 배출된 길지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언젠가 병바위와 연계한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소요산의 소요(逍遙)란 서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걷는 것을 말한다.
오늘 우리는 소요산에서 소요하며 망중한을 즐길 것이다.
코스: 연기교(강나루풍천장어)-수변로-목교-산길진입-연기제갈림길-정자-전망대-첫무덤갈림길(독도주의)-헬기장-사면길-안부(수월봉갈림길)-사자봉-
연기재-임도(약 2km)-소요사-소요산-241봉-기와집-포장도로-연기마을(약 9km, 4시간 20분)

산행궤적

약 9km의 길을 4시간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고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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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도를 크게 확대하면 들머리는 수변로입구에서 수변로를 따라 200여미터 들어가면 목교에서 안내판과 정자가 있는 곳이 들머리다.
가파른 산길에 계단과 밧줄 등 정비가 되어 있었지만 찾는 이가 적은 듯 잡초가 등로를 덮고 있었다.
더욱 난감한 것은 보다시피 산길이 도로수준으로 넓직하게 그려져 있어 필자는 임도 내지는 아주 반듯한 길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노약한 B팀 회원들도 함께 출발하자고 하였으니..ㅉㅉ.

네비엔 '연기교'를 입력하여 연기교를 건너자마자 '강나루풍천장어'집 앞 너른 길가에 차를 댔다.

연기교에서 들머리인 낮은 산자락을 건너다 본 뒤...

다시 다리 위로 올라와 방향을 잡는다. 직진 방향은 우리가 내려올 연기마을이고, 일행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수변로로 인천강변에 나란히 이어져 있는 들머리.

지형도에서 씻을 곳을 찾으며 먼저 인천강을 염두에 두었지만, 에구~ 하수에 완죤 뻘밭이다.

돌아보니 연기교와 우리 버스.

휘어지는 곳의 목교. 굳이 목교가 필요없겠지만 산길을 정비하면서 제법 의욕적으로 멋을 낸 듯하고...

안내판과 정자 또한 여행객의 편의를 감안한 듯하다. 하기사 이 길이 고창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길마재 100리길'임이랴. 들머리는 안내판 뒤로 난 계단길.

안내판엔 들머리가 두 군데로, 연기마을에서도 있다고 그려져 있다.

들머리가 거의 제로 미터이니 능선이 불과 100여 미터이지만 그 가파름이야 어쩔 수 없어.

굵은 밧줄과 계단으로 정비된 길이지만...

헥헥...네이버지도가 에러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10여분 만에 능선에 올라서자 잔디없는 민둥 묘지를 만나고...

길은 어느새 유순해진다.

육산인 듯한 산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더니...

조망까지 선사한다. 내려 보이는 곳은 연기저수지. 저수지를 따라 도로가 나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괜찮을 듯.

전망바위에서 올려다보는 소요산.

연기저수지 끄트머리 잘록이가 연기재이고, 우측 솟은 산은 사자봉과 수월봉.

이정표가 있는 안부는 십자로인 연기저수지갈림길. 이정표에 좌측으로 꽃무릇데크와 임도라고 적혀있고 우측으론 수변산책로.

안부 사거리의 다른 이정표. 이제부터 이정표는 연기재까지 전무하다.

정자를 지나고...

탄성을 자아내는 전망대에 섰다. 와아~ 최고의 전망대다 하고...

자주 함께하는 한덤님.

연기저수지 너머 소요산.

도끼자국이 난 저산은 무슨 산? 나침판을 들고 방향을 잡아보며 내린 결론은 고인돌휴게소에서도 올려본 화시봉.

화시봉을 당겨보았다.

그리고 살짝 당긴 소요산과 9부 능선의 소요사.

연기제와 소요산.

중요지점이다. 우리는 직진을 하므로서 잠깐 알바를 하였다. 첫무덤인 이 지점에서 우측 숲속으로 숨어있는 산길을 찾아야 한다.

무더위 산행의 로망은 숲길. 그렇다고 숲길만 걸으면 재미없고 무료하다. 무료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바위 전망대.

그래서 전혀 지루할 새가 없다.

돌출된 도드라진 바위에 올라서서...

또다시 주위 조망을 짚어본다.

선운산 방향으로 중앙에 경수산?

더 좌측으로...

가까이 구황봉 능선과 그 뒤로 경수지맥.

우측으론 가막제.

숲속에서 빠져나오면 어김없이 바위 전망대.

가막제 너머로 계속 눈길이 가는 화시봉.

헬기장을 지나고...

사면을 돌다 우측으로 조금 빠져나가 도드라진 바위를 카메라에 담는다. 수월봉 아랫자락에 있는 바위다.

안부에 닿았다. 서 있어야할 것은 이정표다. 좌측으로 조금 오르면 사자봉, 우측으로 조금 오르면 수월봉(361.8m). 수월봉 왕복을 선택으로 짚어 주었다.
사람들은 용산에서 건기봉(200.1m)을 타고 수월봉을 거쳐 이길을 지나 사자봉~소요산으로 오르기도 한다.

사자봉을 오르다 또다시 만나는 바위전망대.

그곳에서 돌아본 수월봉. 수월봉은 사자봉보다 20여 미터 더 높다. 수월봉 우측에 아까 올라올 때 보았던 바위가 보인다.

사자봉에선 점심보따리를 풀었다. 목마른 가슴에 벌컥벌컥 시원한 탁음료. 그런다음에 챙긴 이미지.

다시 찾지 못할 내 인생의 흔적. 갈 곳은 많은데 내 인생은 빠르게 저물고 있음은...

또다시 만나는 전망대.

이러저러하게 또다시 맨 꼴찌.

화원(花園)을 만난다. 보라색 엉겅퀴와 개망초, 거기다 요새 한참 만화방창(萬化方暢) 시절을 구가하는 밤꽃.

우리집 정원에 이러한 꽃밭을 꾸밀 수 있다면...

임도에 닿았다.

돌아본 모습.

연기재다.

소요사 안내판 뒤로 사각정자.

앞서간 사람들이 연기재 사거리에서 산길을 마주하고 섰다. 빨간 화살표 방향은 소요사.
필자도 이 길을 임도를 걷지않고 임도 우측 능선으로 가는 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능선으로 붙지않고 둘레길인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빠꾸~

이정표에서 탈출팀들은 탈출을 감행. 직진 임도 방향(소요사)으로 우측 노란 시그널은 아까 가서는 안되는 그 길.

임도를 따르다 5분 만에 곡각지점에서 만나는 좌측 샛길. 이 길도 가서는 안되는 길.

산사면을 에두르는 이 길은 아주 편안한 길로 곧 굽어지는 임도를 만나야 하는데, 자구만 등고선은 평이하다.
조망처에서 바라보니 소요사의 암문이 고개를 들어야 할 만큼 높이 걸려있다.

그러거나말거나 'Enjoy my life'

빨치산으로 도로에 올라섰다. 깎아지른 절벽.

그 곳은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지질명소'다.

소요사에 닿기전 능선이 내려앉아 임도에 맞닿을 즈음 우측 낮은 산자락으로 산길이 열려 있지만, 주차장을 지나면...

다시 만나는 암벽에는...

부도를 포함한 비석 세 기가 있다.

공적비와 헌답 기념비, 그리고 한눈에도 그리 오래돼 보이지는 않는 자그마한 부도.

김경중(金暻中)은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1891~1955))의 부친이다. 인촌은 김경중의 넷째아들.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바위도 낙서장이 되는가보다. 아무개아무개...

또 아무개아무개.

그리고 또 아무개아무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노트엔 쓴 데 또 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모두 떠났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떠났지만 이름은 남지 않았냐고?

태고종 소속 소요사를 지나지만 패스다.

카메라를 들었더니 당우 뒷편으로 깎아지른 암봉이 예사롭지 않다.

소요사 앞을 지나 우측으로 꺾이는 곡각지점.

소요산 산길은 거기에서 열리지만 10여 미터 임도를 더 따르면...

2층 건물이 나온다. 사용하지 않는 건물로 짐작된다.

산길엔 오래된 이정표가 땅에 뒹굴어...

가까이 확인하고...

곧 갈림길에선 좌측으로 산신각인 듯하며...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판.

이 암릉은 아까 소요사 뒤로 본 깎아지른 암봉인가?

조망이 열리기 시작한다.

소요산 직전에서 연기제를 배경으로 멈춘 최회장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氣가 팍팍한 암릉.

안테나 시설이 있는 고스락에선...

사방이 열린다.

곰소만 너머로 얼마전 다녀온 변산국립공원 우금산이 우측으로 짐작되고...

살짝 당겨보니 내변산 내소사 뒷편으로 쌍선봉과 세봉 라인.

반대쪽 아래는 연기저수지.

성능 좋은 카메라를 짊어지고 다니는 문채님.

캬~ 연리지, 등네미, 서표님.

국방부 삼각점.
하산길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또다시 만나는 바위 전망대.

그저 카메라를 휘두르기만할 뿐.

암봉에 올라서..

또다시 바라보는 곰소만과 변산반도.


하산길 무덤가에 내려섰더니 광김 묘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고...

고인의 성명이 '김쪼간(1925~2009)' 갓난아이로 태어나면 쪼깐히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리요. 아마도 할머니의 수목장인 듯.

검은 기와집 뒤로 내려섰더니 좌측 좁은 농수로엔 물이 콸콸콸.

바로 내려 설려다 좌측으로 도로에 접한다. 건너 연기제 수로엔 한방울의 물도 흐르지 않는다.

원점회귀 코스를 이렇게 잡은 건 시원한 물을 찾기 위함인데,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돌아본 검은 기와집과 좌측 접근로.

내려온 동선.

선운 사랑방과 검은 기와집.

금방 연기마을 입구에 우리 버스가 보이고...

이 길은 '길마재 100리길'.

우리 버스 옆으로 아까 보았던 농수로의 물이 흐른다. 콸콸콸...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산행의 흔적을 지웠다.

산수유?

연기마을은 콩나물국밥으로 유명세를 떨치려 하고있다.

버스를 그늘로 옹기종기 앉은 일행들.

덕천동에선 또 필자가 깃대를 꽂았다. 깃대의 기는 사시사철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데...
-고난기에 사는 친구들에게-
- - - 상략- - -
햇빛과 폭풍우는
같은 하늘의 다른 표정에 불과한 것
운명은, 즐겁든 괴롭든
훌륭한 나의 식량으로 쓰여져야 한다.
굽이진 오솔길을 영혼은 걷는다.
그의 말을 읽는 것을 배우라!
오늘 괴로움인 것을, 그는
내일이면 은총이라고 찬양한다.
어설픈 것만이 죽어간다.
다른 것들에게는 신성(神性)을 가르쳐야지.
낮은 곳에서나 높은 곳에서나
영혼이 깃든 마음을 기르는
그 최후의 단계에 다다르면, 비로소
우리들은 자신에게 휴식을 줄 수 있으리.
- - - 하 략- - -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