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중산층 사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최상위 10%는 연 소득이 1억 1,520만원이다. 상위 20%는 연 8,500만 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2010년 이후 나타난 변화는 대기업-정규직의 번듯한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IT기술의 도입 확산으로 기술을 필요치 않는 범용 사무직을 중심으로 나타나 남성의 비율이 가파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같은 내부자Insider와 중소기업, 비정규직 같은 외부자Outsider로 구분한다. 여기서 한번 외부자로 떨어지면 영원한 외부자가 되는 것이 문제다. 20대는 첫 일자리로 사실상 ‘신분’이 결정된다. 20대 가운데 10%만 번듯한 일자리를 갖는다. 2017년 대학 대학원 졸업자는 57만 4천 명이다. 이중 12.5%인 7만2천 명이 번듯한 일자리(월 300만 원 이상)를 찾는데 성공했다. 임금수준으로 줄을 세우면 중간 값은 월 200만원을 살짝 웃도는 숫자로 추정된다. 오늘날 20대가 느끼는 취업난은 이전 세대가 겪은 IMF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수준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과장은 이제 인사, 재무, 영업 등의 사무직 채용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문과 일자리는 이제 끝났다는 인상을 준다. 서울 중간급 사립대나 지방의 거점 국립대를 나와도 대기업 채용시대는 R&D분야를 제외하고 없다는 얘기다. 이른바 ‘문송’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시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괜찮은 대학을 나온 흙 수저 남성이 밀려나고 서울명문대를 나온, 외국어에 정통한 중상위층 여성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직종은 ‘경영, 회계, 사무관련’ 직종이다. ‘금융, 보험 관련’ 직종도 반 토막이 났다. 10분위에 9~10분위는 치의대, 변호사, 회계사 전문직과 이공계 연구직의 비중이 높고 가장 높은 일자리가 포진한다. 그러나 최하위 1~3위 30%는 남성 비중이, 2분위에 17.3% 1,3분위에 7.6% 늘어났다.
90년대 생은 그의 부모 세대가 대졸 사무직으로 중산층의 지위를 확보치 못한 경우, 자녀 세대가 명문대 졸업장을 받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렵다. 예전 70년대처럼 지방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업하여 고소득을 얻는 삶의 기회는 오늘날 20대에게는 존재치 않는다. 이제 근본적인 불평등한 90년대 생의 생활세계를 보자.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기안대’는 소위 ‘지잡대’로서 학점에는 관심이 없는 고학년 학생들과, ‘마케팅’의 철자도 틀리는 실력 없는 교수, 짜장면을 배달 온 선배가 신입생을 맞으며 군기를 잡는 모습이 나온다. 즉 공부를 못했으니 자기개발이나 취업이 뒷전인 학생들만 모여 ‘기안대’에 간다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하류인생에서 얼짱 경연대회와 의류 쇼핑 몰 등으로 성공을 노리나 밀린 학자금 때문에 김치공장 생산직으로 취업을 한다는 얘기다. 지방대와 고졸이하는 청년 담론에서 거론되지 않는 존재다.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고, 노동시장에서 열등한 지위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품성이 나쁘고 노력이 부족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남서울대 ‘유지영’ 교수의 2011년 설문조사한 것을 보면 지방대 충청도 N대와 서울 K대의 부모의 연평균 소득은 N대가 4,795만 원, K대가 7,085만 원이고, 부모 학력은 대졸 비율이 N대는 35.9%, K대는 66.3%이다. 부모직업이 N대는 생산기술직과 소규모 자영업인 반면 K대는 경영자가 많았다. 2018년 현재 20~24세 가운데 절반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산다. 고교 졸업 후 진학이나 취업을 못하고, 무직자 및 미상은 2011년 졸업자 중 13만 6천 명으로 늘었고 20%에 육박한다. 결국 탈산업화 탈 제조업화 흐름 속에서 지방의 질 좋은 일자리 얻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취업시장은 지방은 시골이 되어간다. 고졸은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정치적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고졸은 투명인간 급이고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한다. 미래가 없는 고졸 취업자는 급여 상승 같은 직업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30대가 직면한 불평등은 1956년생 ‘최순실’의 자녀가 비교대상이었다면, 20대는 불평등이 1965년생 ‘조국’의 자녀가 비교 대상이다. 최순실이 아버지가 물려준 빌딩을 가진 ‘못 배운 졸부’라면 조국은 부산건설업자 장남으로 부친태생은 비슷하나 서울법대 학력의 서울대 교수 운동권 인맥의 중상위층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대 간 중상위층 계급재생산의 핵심 수단은 교육’이라며 ‘대학 및 대학원 교육이 불평등 제조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 저자는 주장한다. 결국 한국에서 90년 대 생들은 전문직 대기업일자리를 가진 부모들이 확보한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명문대 졸업장과 좋은 일자리를 독식하는 ’세습중산층 자녀 세대‘로 처음 경험하는 집단이라 저자는 주장한다.
이것은 결혼과 부동산에 나타나 계층의 격차를 벌린다는 것이다. 예로 38세의 동갑 K씨는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에 과장으로 외국에 1년 체류 한 뒤 30평 아파트에 산다. L씨는 광주 사립대 졸업 후 충남의 중소기업에 근무한다. 공무원을 준비하다 낙방하고 포기하여 지방의 중소기업에 취업한다. 아파트 가격도 올라서 집살 기회도 놓쳤다. 20~30대의 양대 과제는 취업과 가족의 형성이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정상가족’을 구성하는 것인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출신계층’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끼리끼리 동류 혼이 많아서 결혼이 가족단위 계급재생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2015년 현재 35~39세의 남성 33%가 미혼이다. 남성과 여성이 미혼을 선택하는 동기는 남성은 직업과 소득의 영향이 강하다. 미혼은 사회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음을 시사하는 일종의 낙인처럼 작용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50~60년대 생이 주축이던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노동자는 1998년 280명이 정리해고를 당한다. 2,200명이 1년 6개월 무급휴직 된다. 해고통지서는 받은 근로자는 자신과 회사의 심리적 계약을 깨트린 것에 분노한다. 이에 ‘노동조합이 임금보상을 극대화하고 고용안정 전략을 채택하게 된 계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2011년 생산직 연봉은 9,599만 원, 2014년 1억이 넘는 사람이 전국 노동자의 3.2%인데 현대차 생산직은 그 안에 포함된다. 50~60년대 생이 현대차에서 ‘해자’를 파면서 제 밥그릇을 보호하자, 고용의 질과 양은 곤두박질쳤다. 1999년 근로자는 418명 채용으로 끝났고, 극소수이던 사내하청은 2009년 8,000명으로 늘어났다. 회사 측은 정규직 인건비 증가를 생산 ‘모듈화’로 대처하여, 엔진, 변속기, 동력전달장치. 조향장치 등 주요 기능별로 부품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모듈화’로 조립하는 생산방식으로 대전환을 한다. 즉 끼워 넣어 생산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자동차 노동조합의 힘은 2만개의 부품을 실수 없이 조립하는 근로자의 ‘숙련성’에 있는데, 모듈화는 이를 탈숙련화 시키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기능의 협조 없이도 생산이 가능하고 외주가 가능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동차공장의 기능공의 힘은 약해지고 조율하는 엔지니어의 힘은 커진 것이다. 귀족노조원의 완성차 조립공장의 정규직 근로자일자리는 2000년 이후 크게 줄어들게 만든 것이 현대차의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연령별로 상위 소득 10%의 2018년 순자산규모는 60~64세는 11억9천만 원, 65~69세는 16억9천만 원, 50~54세는 8억 원, 55~59세는 9억5천만 원이다. G세대는 조선일보 독자가 주축인 50대-SKY대-강남 일대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산층의 자녀를 가리킨다면, N포 세대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란 의미로 진보진영의 정치적 의미가 가미된 ‘예비 저항 주체’로 까지 격상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스테레오타입을 표현하면 ‘보수’가 60대중반 이상의 건물주라면 ‘진보’는 50대 초반의 대기업 부장 또는 임원이다. 60대가 20대에 높은 월세로 자산 소유 기반을 한 경제적 관계라면, 50대 고참 부장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경제적 교육투자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체 인턴기회를 알아주는 사실상 경제자적 관계를 맺고 있고 , 조국 전 장관 논란으로 가속화된 민주당, 진보정당 문제는 단순한 계급 갈등의 문제이상이다 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제 SKY졸업장이 빛을 바래고 세계무대에서 펼치는 명문대 졸업장의 경쟁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인데, 해외파가 우위를 잡았다는 것이다. 국내대학 졸업장이 비교우위가 떨어지고, ‘아이비리그’ 명문대로 자녀를 보내는 일이 많아졌단다. 반면에 해외유학파는 비록 똑똑하지만 한국기업과 문화, 업무를 모르기 때문에 힘을 못 쓴다는 한국일보의 주장도 있단다. 여하든 2017년 전희경의원의 자료에 의하면 ‘박영선’장관의 장남, ‘홍남기’ 부총리의 자녀, ‘강경화’ 장관, ‘김연철’장관, ‘정경두’ 장관 자녀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나경원’의원의 아들은 미국 고교와 대학을 진학했단다. 중앙부처 고위 관료나 교수, 자녀 중 여럿이 외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고, 현지나 국내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데 성공했다. ‘은성수’ 금감원장의 자녀가 외국계 증권사에 취업한 것이 대표적 예라 저자는 주장한다.
젊은 저자의 시각은 구체적으로 지적했지만 나무만 보지 숲을 못 보는 듯하다. 이 세상에 중산층은 직업이나 수입뿐만이 아니다. 종교지도자와 말없이 연구하는 학자와 예술의 발전에 혼을 불태우는 예술가 그리고 말없이 1차 산업에 생산을 하는 일꾼이 있고 나라의 방어에 힘을 쓰는 군인도 있다. 박봉에 희생하며 안전을 위한 공익요원도 있다. 어디 최순실과 조국과 윤미향 등, 일부 오염된 정치인 같은 사람뿐이겠는가? 고교졸업 후 취업을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들은 먹고 살만하니 집에서 쉬고 있을 것이고, 나름대로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보면 된다. 한 푼 더 벌자고 모두 자식을 의사를 만들면 어찌되나? 아마 그들은 의료사고의 희생양이 되어 변화사의 먹이사슬이 되고, 사회가 뒤집어질 것이 아닌가? 이 세상은 단순한 이분법 논리의 잣대로 재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사랑으로 키우고, 부모에 효도하고, 날 나아준 부모와 선대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하느님)에 늘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만들자. 자식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키우면 되고, 후에 어느 곳에서고 필요해서 쓰인다는 점을 저자는 모르는 것 같다.
하늘은 미물인 모기, 파리도 미생물 박테리아, 병균도 필요해서 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하물며 사람을 고졸이라고 투명인간이라니! 요즘의 각박한 교수사회에서 저자도 먹고 사려고 튀는 데 너무 나간 듯하다.
왕조도 바뀌고 재벌도 망하고 아비가 대통령이라도 자식은 백두가 되어 변하는데, 중산층이 몇 대를 더 가겠는가? 다 살아생전에 이 세상에 쌓은 덕, 잘한 일, 봉사한 일들을 하늘의 저울대가 재서 자식이 한 대 더 잘 살게 하든지, 일곱 세대 흥하게 하든지, ‘폭망’도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살맛이 나고 계속 이사회는 변하는 것이다.
2020.11.30.
세습중산층사회
조귀동 지음
세종도서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