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이다(약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7-8)
어떤 여자가 극장에서 밤 프로를 보고 나올 때 실수로
수 천만원 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떨어뜨렸습니다.
이튿날 아침 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황급히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제 밤 프로를 본 사람인 데요
다이아몬드 목걸이 분실신고 들어 온 것이 있나요?”
지배인은 없다고 말하면서 잠깐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면 앉았던 자리에 갔다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가 어제 밤 영화를 보았다는 자리로 달려갔습니다.
컴컴한 극장 의자밑에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영이라 청소를 아침에 하기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지배인은 기뻐하면서
급히 전화통 앞으로 달려와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응답이 없었습니다.
잠시를 기다리지 못 하고 전화기를 끊어 버린 것입니다.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조금을 기다리지 못 하여 찾지 못 하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결과가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기다리는 데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 모래알같이
수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100살에 이삭 아들 한 명을 낳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이려는 형의 낯을 피하여 브엘쉐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던 첫 날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큰 축복을 받고
이 자리로 돌아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야곱은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20년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야곱도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노아는 더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비로 온 세상을 멸할 터이니 배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면서 비를 기다렸습니다.
120년만에 비가 왔습니다.
오래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왜 기다리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일가요?
1. 기다림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인 이유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믿음은 무서운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내와 사라 둘 사이에 낳은 자녀가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100살 되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90 세가 되어 경수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의학적으로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00살에 아들을 낳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 아들이 이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에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을 죽이라고 하신 것은 번제로 드리면
하나님이 다시 도로 살려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칼로 찔러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기다림의 믿음은 이 정도로 무서운 것입니다.
이삭을 통하여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믿는 믿음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기다림은 무서운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를 보아도 믿음의 힘이 대단한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죄악이 가득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릇에 물이 가득찬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 자체가 아예 물속에 잠겨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홍수로 멸하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크고 비밀한 일을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보여 주시지 않고는 행하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에게 홍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성도님들 앞으로 되어 질 것을
미리 보여 주시는 거룩하고 신령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임할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120년 동안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믿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믿음이 있기에 기다리는 것이고
기다림의 믿음은 무서운 힘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 National사의 창업자 마쯔시다 고노스케를
일본인들은 "경영의 신(神)"이라 부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살이의 시작은 참으로 고달프고 불운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습니다.
자전거 점포에서 심부름꾼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11살부터 가게에서 일하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면서 일하였습니다.
그렇게 작게 시작한 그가 지금 570개 기업에
종업원 19만 명을 거느리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어떻게 하여 이처럼 성공하였습니까?"
마쯔시다 회장이 말했습니다.
“나는 세 가지 하늘의 큰 은혜를 입고 태어났네.
가난과 허약한 몸과 못 배운 것, 세 가지네.
나는 가난 하였기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네.
약하게 태어났기에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아
건강에 늘 힘써 겨울철에도 냉수마찰을 날마다 하며
90살이 넘었어도 건강을 지키며 살고 있네.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늘 나의 스승으로 받들고 있네.
그래서 배우는데 노력하였지. 그래서 상식과 지식을 얻었다네.
이렇게 불행한 환경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 주기 위하여
하늘이 준 시련이라 생각되어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네."
이같이 믿음은 무서운 것입니다.
내일을 기다리는 것은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 안나라는 여자 선지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 2;36-38)
안나는 결혼하고 7년 같이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84년 동안 성전에서 금식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대단한 여자입니다.
84년 동안 금식하며 교회에서 지낸 무서운 여자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면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무서운 것입니다. 믿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기다림은 인내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기다림속에는 인내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참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7-8)
기다리는 사람은 길이 참습니다.
길이 참는다는 말은
원어에 마크로뒤메사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참는다는 말입니다.
무섭게 참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사막을 달릴 때 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3십리를 뛰어도
물을 삼키지 않고 참을 정도의 참음을 의미합니다.
언제까지 참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참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생을 참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에머슨(Emerson)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타인보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10분 더 오래 기다리기 때문이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힌두교도 하나를 구원하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서아프리카(West Africa)에서는
한 명 전도해서 구원받게 하는데 14년이 걸렸습니다.
뉴질랜드(New Zealand)에서는
한 명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9년 걸렸습니다.
베드로는“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였습니다(벧후 3;8)
조선시대에 장공예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한 곳에서 9대째 내려오면서
이사하지 않고 자손이 오손도손 살았습니다.
그래서 900여명이 한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9대를 내려 오면서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살았습니다.
고종은 이 소문을 듣고 장공예에게
그렇게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비결과
온 가족이 그렇게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장공예는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 종이 안에
참을 인(刃)를 수 백개를 빽빽하게 썼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화목하지 못 하는 것은 참지 못 하여서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참기만 하면
오래 살 수 있고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결이었습니다.
탈무드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앞에 있는데
나그네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배고픔도 느끼는 듯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를 자기집안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고 가라고 권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부탁하여
시원한 우유와 빵을 그 나그네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빵과 우유를 먹는 나그네에게 아브라함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음식을 먹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나그네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페르샤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을 숭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은 나그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려주면서 믿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큰 논쟁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나그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장막에 있을 자격이 없으니 당장 나가시오."
나그네는 화가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나는 나그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저 사람을 위하여
50년을 참고 기다렸는데 너는 한 시간도 못 기다리는구나!"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너무나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야곱 이야기입니다.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벧엘에 와서 해가 지나 잠이 들었습니다.
야곱부터 하나님까지 사닥다리가 놓여졌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께서 서 계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 올 때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야곱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벧엘로 돌아 올 것을 기다렸습니다.
20년 동안을 늘 벧엘로 갈 것을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참았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무서운 것은 참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손에 잡힐 때까지 참기 때문에 기
다리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기다리십시오.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무섭게 기다리십시오.
한 소녀가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성지순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테레리스트가 쏜 총알이 아버지 머리에 관통하였습니다.
딸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어코 아버지 원수를 찾아 내어
원수를 갚고 말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날을 기다려 살았습니다.
오직 원수 찾아 복수하는 것이 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어 아랍어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유명한 신문 워싱턴 포스트 지의 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근무를 자청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로 와서
그 때 범죄 기록부를 추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2년 만에 범인의 소제를 파악하였습니다.
테러범은 오마르 하티브였습니다.
그는 다른 범죄로 감옥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 드디어 아버지 원수를 찾아 복수할 기회가 왔다!”
그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복수할 생각으로 목적은 숨기고
기자로서 그 가족을 만났습니다.
점점 접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복수가 눈 앞에 다가 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진정한 복수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리적인 복수는 동물적인 본능일 뿐이다.”
그는 가족을 만나 오히려 죽이려 하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감옥에 있는
범인의 가석방을 위하여 청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이 기자 여인이 바로 로라 블루멘펠트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3. 기다림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기다림속에는 방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 비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방향은 추수입니다.
부산에 기차가 닿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부산이 방향입니다.
졸업을 기다리는 학생의 방향은 취직입니다.
그것을 기다리면 그 곳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 것을 움켜 쥐게 되어 있습니다.
농부는 심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추수할 수 있습니다.
농부의 특징은 기다림입니다.
심고 거두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심으면 거둘 수 있습니다.
어느 농부가 지나가다가
독수리가 덫에 걸려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농부는 덫에서 독수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라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땅을 파다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담밑 그늘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수리가 나타나서
농부의 모자를 입에 물고 달아났습니다.
농부는 벌떡 일어나서 독수리를 쫓아 갔습니다.
그 순간 뒤에서 담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대로 있었으면 깔려 죽었습니다.
독수리를 구해 주었더니 독수리가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은 우리의 일을 하여 줍니다.
기다림속에는 방향이 있고
방향이 있는 사람은 목표가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 됩니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 의롭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동방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자녀도 10남매나 두었습니다.
종들도 많았고 땅도 넓었습니다.
어느 면을 보아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반대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다 도적질당하였습니다.
10명의 자녀가 한꺼번에 집이 무너져 깔려 죽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부스럼 투성이로 고름이 질질 흘렀습니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이 욥을 조롱하였습니다.
그 때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아내가 욥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떠났습니다.
남편이 잿더미에 앉아서 기와장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아내가 가장 필요한 때였습니다.
행복을 누리면 살 때는 좀 떨어져 있어도 될 때였습니다.
2. 하인들, 형제들도, 아는 사람들도 욥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 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어린 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 19;13-21)
3. 친척들과 동네 아이들도 모두 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욥은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
련하신 후에는 대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8-10)
욥은 앞으로 자기가 정금같이 될 것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믿음이 되었습니다.
기다림은 인내가 되었습니다.
기다림은 방향이 되었습니다.
정금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방향이었습니다.
현대학자들은 점점 기다림이 없어진다고 꼬집었습니다.
제프 딕슨은 <우리 시대의 역설>이란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현대를 이렇게 꼬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낮아졌습니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좁아졌습니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가난하여졌습니다.
모든 것이 더 편리하여졌지만 시간은 부족합니다.
학력은 많아졌지만 상식이 부족하여졌습니다.
달나라까지 길이 생겼지만 이웃집과의 길은 막혀 있습니다.
외계를 정복하였지만 자기 마음은 정복하지 못 하였습니다.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랍니다.”
기다림이 없는 성질 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탈무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무슨 재산이 가장 좋은 재산이라고 생각하니?”
“땅이 제일 좋은 재산같아요.”
“전쟁이 일어나면 땅은 가지고 갈 수 없단다.”
“그러면 금이 가장 좋은 재산일가요?”
“금도 가지고 가다가 강도에게 빼앗기면 없어진단다.”
가만히 생각하던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생각났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가장 좋은 재산같아요.
복은 무게도 없고 부피도 없고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어요.”
이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렇다. 전쟁과 환란날에도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복이야 말로 가장 큰 재산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축복입니다.
본문의 농부는 심기만 하고 늦은 비와 이른 비를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열매 주시기를 기다리는 농부입니다.
기다림속에는 믿음이 있고, 인내가 있고, 방향이 있습니다.
농부의 기다림의 영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의 보혈의 강단 중에서
출처 :평화&쉼 원문보기▶ 글쓴이 :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