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박정옥
서식지 외
구름이 밀밭을 넘실거리다 쏟아졌다
밀밭은 비의 숙취로 욱신거리고
단풍나무 우듬지는 빠르게 분홍색 전입신고를 끝냈다
비가 온다
한꺼번에 비난을 쏟는다
너는 울지 않는다
눈은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면
싱싱하게 발가벗겨진 불안의 면적이 늘어난다
꽉 차서 넘치고 울창하여 헐렁헐렁 흔들렸다
누군가의 마음이 연고처럼 남아서
아무렇지 않게 왼편을 데웠으며 깜박 슬픔의 오류,
미어진다
불안에 바를 연고를 찾는다
비의 낭떠러지 금방 젖어버리네
부르튼 마음 흘러내리지 않기를
오분만 같이 흐를게,
같이 흔들릴게,
이것을 저항이라 부를까
삼월의 산봉우리
어미개가 갓 낳은 새끼를 핥아 일으키듯
비의 혓바닥으로
사월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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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입맛
겨울이 두통을 앓다 퍽! 꺼지기도 전에
이곳 햇볕들은 무단횡단입니다
뿌리의 찬란을 숨기고
금이 간 사람들의 갈라진 발톱
떼 묏등 공동묘지 서늘한 발가락
꽃을 피우고 치사량의 사랑으로 사무칩니다
작년, 앞마당 수선화 옆으로 옮겨져
냥이들의 배설물에 자주 발이 걸립니다
그 덧없는 풍부함에
세 배로 꽃을 피워냈습니다
보송보송한 잔털이 잔설처럼 반짝입니다
잔설을 뚫고 올라 온,
할 미 꽃 전설에 극적인 후기가 매달립니다
영화관람 공연 할인도 연극처럼
울산서 부산으로 부산서 울산으로
기차 지하철 공짜
마구 튀겨내는 선심을 받아먹고
어쩜, 우린 포충망 속 나비
할미꽃 피고
할미꽃이 피고
할미들이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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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옥| 본명 박정연. 2011년 《애지》로 등단했으며 울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거대한 울음』, 『lettering』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