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3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고전 15:6,7 /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 - 여덟, 아홉번째 만남
(0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0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예) 부활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
-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어릴 때 개가 고추를 뜯어먹어 불구로 자라, 어렵사리 신학교를 갔으나, 1학년 때 침대에서 떨어져 뜨거운 난로 위의 물을 건드려 온몸에 화상을 당하고, 불구라는 것 때문에 결혼까지 약속한 애인과 헤어지고, 다른 헌신된 여자와 결혼을 했으나 결국 교통사고로 죽음)가 환한 옷 입고 찾아옴
(예) Ashley Smith와 목적이 이끄는 삶
지난 3월 13일 주일 이후 한 주간 미국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2002년도에 발간된 릭 워렌 목사의 책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당겼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아틀란타의 한 법정에서 현직 판사가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판을 받도록 되어있던 Brian Nichols가 재판정에 들어서기 직전 경비원의 총을 빼앗아 판사와 기자 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 미국을 들끓게 하였다.
아틀란타 경찰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5대의 차를 차례로 빼앗아 갈아타고 기차를 타고 그 지역을 떠나고 그 중간에 또 살인을 저지르고, 둘루트라는 지역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경찰은 미적거리고 있었음이 밝혀져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한 여인이 영웅이 되어 나타났다.
Elizabeth Ashley Smith.
칼에 찔려 자신의 가슴에 안겨 죽은 남편을 잃은 지 4년이 된 여인.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여 재활훈련을 받고 있고, 그래서 딸도 자신이 키우지 못하고 친척에게 맡기도록 되어 있는 여인.
그 여인이 들려준 이야기 때문에 릭 워렌과 '목적이 이끄는 삶'이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모으게 되었다.
죠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식당 종업원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애쉴리 스미스는 새벽 두 시 일을 마치고 가게에서 돌아오고 있었는데, 범인 니콜스가 아파트 주차장에서부터 그녀를 몰래 따라가 머리에 총을 겨누고 아파트에 들어서서 그녀를 테잎으로 묶어 욕조에 가두었다.
스미스씨는 "자신이 죽으면 딸 아이는 아빠와 엄마 없는 아이로 자랄 것"이라며 "죽이지 말라"고 애원했더니 니콜스가 이 말을 경청했다고 후일담을 털어놨다.
스미스씨는 범인에게 계란 후라이와 팬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범인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법정 살인 뉴스가 보도되는 것을 보고 "그 같은 끔찍한 범행을 자신이 저질렀음을 믿을 수 없으며 자신은 이제 죽은 목숨"이라고 스미스에게 말했다.
그러자 스미스 여인은 "당신은 죽지 않았으며 당신은 지금 내 앞에 서 있다"고 말하면서 "지난 2001년 남편이 잔인하게 살해된 뒤 다섯 살 된 딸 아이와 힘겹게 살고 있는 기구한 운명과 가족, 신앙에 대해 얘기했더니 자신을 믿더라"고 말했다.
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하나님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살인범인 니콜스는 며칠동안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화가 통하기 시작하자 아예 자수할 것을 권유하였고, 마지막으로 죽인 40대 남자에 관한 화제에 이르자 '당신은 남편이요 아버지인 사람을 죽인 것이다' 사뭇 도전적인 이야기도 건넬 만큼 애쉴리는 용감해져 있었다.
입이 열린 여인은 '삶의 목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가져와서 읽을 수 있는지 물었다.
'목적에 이끌린 삶' - 'The Purpose- Driven Life'
그 날 그녀는 33장을 읽는 날이었다.
'진정한 종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 자신이 누구인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의 중요성 등에 관한 이야기 한 문장을 읽어가자 브라이언은 멈추라고 하고 다시 읽게 하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느냐 묻자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야기 해주는 것 아니냐고 대답하는 등 그들은 순간 진지한 구도자가 되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다'
진지해진 브라이언은 잔인한 살인자의 탈을 벗어버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살인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살인자의 피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는 나의 믿음과 내가 무엇을 믿는지를 본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그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둘은 깊은 세계의 언저리를 더듬고 있었다.
스미스 여인은 특히 니콜스에게 "나는 하나님의 자식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에게 보냈다"라고 말했고, "친척집에 머물고 있는 딸아이를 보기 위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더니 범인 니콜스는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브라이언 애쉴리가 아침 9시 반 딸을 만나러 가도록 문을 열어 주었고 911(한국의 119)전화를 걸수 있었다. (그럴 줄 알았으리라!) 몰려든 경찰에 브라이언은 체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순순히 수갑을 받았다.
6만 불 이상의 포상금을 받게 된 그녀는 기자회견장에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2002년 출판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2,200만 부가 팔린 릭 워렌 목사의 책은 한동안 아마존(Amazon.com)에서 50위를 기록하다
그날부터 다시 가장 잘 팔리는 책의 자리를 차지했다.
우연이나, 물질이나, 쾌락에 의해서가 아니라 목적에 이끌리는 삶, 목적을 바로 알고 살아가는 삶, 릭 워렌 목사는 이 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를 두고 아예 이렇게까지 말한다.
'이건(목적에 이끌리는 삶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문화다'
그는 미국의 문화를 하나님의 문화로 만들고 싶어하고 있다.
→ 테잎으로 결박당한 채 욕조에 처박히면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으며, 중간에 도망칠 수도, 권총을 빼앗을 수도 있었던 기회도 버린 채, 브라이언 니콜스 스스로 하얀 수건을 흔들며 투항하게 한 알콜중독자 애쉴리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의 기적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예수의 능력은 알콜중독자, 살인자의 삶을 바꿔놓았다.
또한 오늘 우리의 삶도 능히 바꿔놓으신다. 믿으라!!
찬송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
첫 번째 만남 - 막달라 마리아 - 사랑에 대한 보답
두 번째 만남 - 여인들 - 천사의 말에 순종에 대한 보답
세 번째 만남 - 게바 - 회개에 대한 보답
네 번째 만남 -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 - 의심에 대한 자비의 응답
다섯 번째 만남 - 제자들 - 불안과 두려운 마음에 기쁨과 확신 응답
여섯 번째 만남 - 도마 - 의심에 대한 확실한 응답
일곱 번째 만남 - 갈릴리바다 - 오른편에 그물 던져라! /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으로는 세 번째 만남이다.(5-7번 만남), 베드로에게 사명회복, 요한의 인생에 대한 궁금증은 주께 맡기고 나를 따르라!
1. 부활하신 주님과의 여덟 번째 만남 - 오백여 형제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 "오백"이란 숫자(數字)는 대중(大衆)의 숫자이다(= 모든 믿는 이들의 상징).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소수(小數)에게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 이는 소수에게만 나타나시는 불완전한 사실이 아니고 많은 사람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진리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행 1:3에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라고 하였다.
* 그럼 이 사건은 어디서 일어났는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인 사건은 추정컨대, 갈릴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여진다. 예루살렘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의 추적을 두려워하여 밤에 아무도 모르는 밀실이나 다락방에서 문을 잠그고, 또 망을 보면서 몰려 모였다. 그리고 소수만이 주님을 뵙고 음성을 들을 특권을 누렸다.
하지만 이제 주님은 산헤드린 공회로부터의 위협에서 자유롭고, 많은 이들이 모여도 부담이 없는 장소인 갈릴리의 한적하고 넓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다.
이렇게 갈릴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난 것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셨고, 목회를 하셨고, 거기에 많은 제자들이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 그런데 왜 다른 부활의 사건이나, 부활의 사건과 비슷한 변화산 이야기는 길게 소개되어 있는 반면, 오백여 명이 주님을 만난 이 사건은 짧게 소개가 되어 있는가?
만일 이 만남이 전체 교회를 위해 어떤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더 자세하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목적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변화산 사건을 보면, 이 사건을 경험한 세 명의 제자(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마 17:9)는 명령을 하셨었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준비라는 목적 때문에 엘리야와 모세를 만난 이야기로, 예수님의 고난으로 모든 것이 성취되었기에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후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오백여 명의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흐름으로 볼 때, 그 목적이 앞으로 일어날 박해에 대하여 교회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며, 또한 그들이 얻게 될 영광에 대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대상들의 머리속에는 지울 수 없도록 새겨져서 길게 기록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오늘 우리에게는 오백여 형제들이 믿음의 눈으로 영광의 주님을 만났으며, 미래에 얻게 될 영광을 몸소 체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천국에서 기다리신다. 해와 달도 필요없는 하늘나라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고, 모든 슬픔을 다 잊게 해주며, 영원히 승리의 노래를 부를 하늘 나라에서 기다리신다.
이제 제자들은(또한 우리들도) 그 영화로운 만남을 기억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이겨나가고, 부활의 증인으로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2. 부활하신 주님과의 아홉번 째 만남 - 주의 형제 야고보
(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2-23페이지에 보면, 2세기의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 헤게시푸스(Hegesippus)라는 사람이 전해주는 야고보의 이야기가 나온다.
야고보는 어릴 때부터 나실인으로 드려져 극단적으로 엄격한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구별되었고, 머리에 삭도를 댄 적이 없었고, 하물며 머리에 기름으 바른 일도, 목욕을 한 적도 없었고, 제사장들처럼 삼베로 된 옷만 입고 모직으로 된 옷은 입지 않았으며, 또한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야고보만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동족들을 위하여 너무나도 많이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그의 무릎이 마치 약대의 무릎같이 되어 버렸고, 야고보 자신은 "오블리암"(Obliam, 백성들의 산성)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그리고 69년에 바리새인들에 의해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리워서 돌에 맞아 순교당했다고 한다. 숨을 거두면서 한 그의 말은 "주 하나님....나의 아버지시여, 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였다고 한다.
그리고 유세비우스는 "유대인들 중에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그 후에(70년) 곧 멸망을 당한 것이 야고보를 그토록이나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라는 말을 한다.
다시 말하면, 야고보는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처럼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특별한 유대식의 교육을 받게 되어 모세의 율법에 대단히 헌신적인 사람으로 성장하여 갔는데, 문제는 엄한 유대주의 사상이 예수님의 신성이나 그리스도되심에 대하여 믿을 수 없도록 만들었고, 함께 자라온 낮고 천한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영화로운 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는 불신앙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갈 2:12,13에 보면,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 와서 이방인들과 함께 하던 식사자리에 있을 때, 유대의 풍습을 따르는 제자들이 왔을 때 도망치듯 떠나간 적이 있어 바울 사도에게 혼이 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유대의 풍습을 따르는 제자들이 누군가 하면,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라 되어 있다.
그만큼 야고보는 극단적이라 할 만큼 유대주의적 입장을 대표하였지만, 부활하신 주께서 그를 만나주심으로 그가 변화하여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직책(교회 공의회 의장)을 맡아 일을 잘 감당하였고, 야고보 서신을 통해 보여지듯이, 유대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교회로 받아들임과 이방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할례를 행하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즉 율법을 따르게 할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복음으로 잘 마무리함으로 교회를 안정되게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주를 위하여 순교함으로 교회에 큰 빛을 드러내었다.
→ 야고보가 가진 유대주의 편견에 사로잡힌 것처럼,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만나게 된다.
때로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는 습관 때문에, 때로는 세상에서 배운 지식 때문에, 때로는 어떤 사실을 경험했다든가, 신비한 일을 보았다든가, 성경공부를 했다든가, 어떤 모임이나 집회나 교회에서 무슨 일을 했었다는 그것이 새로운 것(성령의 역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이 자기의 고집과 편견을 깨고 새로운 눈을 갖게 되기를 원하신다. 율법의 핵심, 성경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올바로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 새로운 역사를 체험하길 원하신다.
분재신앙을 기억하라 - 주인이 나를 좁다란 곳으로 데려와 뿌리를 마음껏 못 뻗게 하고, 가지를 마음껏 못자라게 하고, 손을 벌리고, 철사로 마구 뒤틀 때라도 순종하는 것이 참 생명이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새로운 역사에라도 순종하여 따라가는 것이 참 신앙이다.
⇒ 부활의 주님을 만난 오백여 형제는 고난과 박해의 현장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붙잡고 이겨 나갔으며, 극단적 유대주의 사고를 가진 야고보는 변화되어 교회의 안정과 성장에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더욱 변화되어 고난을 이겨나가며,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받는 좋은 일군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