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빛
이 글은 처음부터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형식에서는 미국인이 한국인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어 놓았던 것을 출간한 것이다. 그리고 내용에서도 1920-1930년대의 중국에서 공산주의 혁명 활동을 수행했던 한 혁명가의 삶의 그렸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체 게바라 평전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머물렀다. 특히 백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이나 전면전을 펼친 경우 세세한 전쟁 상황들이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서도 이와 같이 혁명가 활동을 수행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익히 듣지 못해서 그 신선함은 배가 되었다.
먼저 그는 윤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하여 30대가 될 때 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무엇이 가치를 창조하는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계속 변화하고 한 단계씩 발전해 나간다. 청소년 시절 정치의식에 눈을 뗀 이후 종교가 실천적인 사회 이상주의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3․1운동의 실패, 파리 평화회의에서의 결정에 의해 그는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가르침은 투쟁세계에서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단지 기도만으로는 패배를 자초할 뿐이라는 신념을 견고히 한다. 청년이 되고나서도 위와 같은 삶의 원리를 포기하지 않고 실천해 나갔다. 즉 그는 위의 삶에 대한 질문에서 투쟁의 삶을 선택했다. 이것이 자신을 옭아매는 역할을 했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삶의 길을 의연한 의지로 계속 밟아나갔다.
이 책의 가치는 김산의 생애를 초점에 맞추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상황을 세세히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1919년 3․1운동, 관동대지진 후 일본 내의 정황, 상하이 임시정부내의 세력다툼, 광동코뮌, 하이루펑에서의 상황 등 여러 가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에 주목하면서 그 당시의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는 부분에서였다. 백군이 농민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경우나 집, 논, 창고를 불살라버리고 극심한 허기와 각종 질병에 시달려 몸이 성치 않는 부분은 전쟁의 심각성과 인간 생명에 대한 허무함을 대변해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농민들은 그들을 도와주었고, 총알이 빗발치면서도 사랑은 있었다. 즉 격변기 중심에 있었어도 인간의 삶은 존재했다. 여기에서 나는 현재 인간의 삶이란 것도 수많은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해본다. 1920년대나 2000년대나 인간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은 변화가 거의 없다. 이제부터는 간단히 내가 감명 깊게 생각한 부분을 나열해볼 것이다.
먼저 사랑의 위대함이다. 김산은 계속 자신은 결혼도 하지 않을 것이며 연애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혁명활동을 수행하는데 개인의 감정을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생각도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이 여성의 위대함이다. 그의 친구 김창충 역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또 앞에서 언급했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김산을 향해 뛰어오는 한 연인이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김산은 결혼을 통해 그 아내에서 충성과 관용, 선량함을 발견하며 이것을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이와 같이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사랑의 위대함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복수나 배신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김산은 감옥에서 배신을 하고 개인적인 향락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정직하게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감옥의 모진 고문을 견뎌 낸다. 복수에서도 자신의 험담을 늘어놓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복수를 끝내는 행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복수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볼만하다. 소크라테스는 보복은 항상 그른 것이고 그릇된 행위가 자신의 영혼에 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즉 복수는 자신의 영혼까지도 손상시키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그의 사고의 변화를 지적해볼만하다. 그는 전쟁 당시에는 ‘잔인함을 끝장내는 것은 잔인함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어둠을 비춰주는 빛을 갈구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음식, 안락함, 우정, 사랑 안전 등 삶에 주어져야하는 일체의 것을 소중히 여긴다. 또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세계가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타인과 의견이 상이했을 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쟁을 겪고, 배신이나 감옥생활 등을 겪고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용을 가졌다고 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이다. 과연 어떤 것이 정답인가?
김산은 의무론적 삶을 살아갔다. 즉 자신 앞에 내려진 도덕적 명령을 기필코 수행하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왔었다. 또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혁명 투쟁의 전사이기도 하였고, 톨스토이에서부터 마르크스까지 정통한 학자였다. 그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에서 이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아리랑은 죽음과 패배의 노래이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최후의 희생이 마침내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삶 속에서도 중국공산주의가 와해되고 배반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절망과 분노 ‘마마후후’식의 사고가 그를 지배했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대중운동으로 뛰어든다. 김산은 곧 죽었지만 이 죽음은 끝이 아니고 한 줄기 빛을 쏘아 올리는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김산은 청년기에 아리랑 고개를 넘었지만, 그는 모든 청년들 가슴에 한 줄기 빛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