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8월 15일 목요일 맑음
“1500 포기요 ? 그까짓 것 여기까지 가져올 것 없이 이웃에 팔던지 나눠 먹어요” “예 ?” 여기서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가 보다.
“1500포기면요. 인부 두 사람하고, 1톤 차 한 대면 돼요. 인부가 20만원이고, 운반비가 27만원입니다. 그러면 한 40만 원 정도는 만질 수 있을 거예요”
“고생하지 말고 그냥 밭떼기로 넘겨버려요. 그런데 그 정도밖에 안되면 사자는 사람도 없을 걸요. 헐값에 넘겨야 될 거예요”
“농사 짓는 사람은 씨나 뿌리지 다 다른 사람 차지가 돼 버려요. 소용 없어요”
오정동 농수산시장에서 들은 소리다.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이 게 농업의 현실이다. 농사 짓는 사람은 고생이나 하고 남는게 없다.
그럼 내가 내가 배추 농사를 지으면서 투자한 돈은 얼마나 될까 ?
먼저 배추모를 산 돈이 12만원. 비료값이 13만원, 농약값이 6만원, 내 밭에 다른 작물들이 심겨져 있어서 영석이네 집에서 빌린 밭 임대료가 20만원, 스프링쿨러와 호스 산 돈 5만원, 물주느라 스프링쿨러 돌린 전기세와 물값이 적어도 5만원, 심고, 농약주고, 비료주고, 수확하는 일은 가족들과 함께했지만 돈으로 따지면 싸게 해서 80만원, 모두 140만원은 돼야 본전이 된다.
그런데 겨우 40만원이라니....
배추 농사가 잘 되어서 그걸 쳐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속이 쓰리더라.
한 포기에 천원씩만 해도 150만원이 아닌가 ?
‘에이. 억울해서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출하를 해보자. 그것도 공부니까....’
농수산시장 채소전에 가봤지. 어떻게 출하를 하는지 보려고....
파란 망사망에 세 포기씩 넣고 묶었더라. ‘아하 망을 사야겠다, 그런데 망마다 묶은 끈의 색깔이 다르네. “끈들이 다른 이유가 뭔가요 ?” 상인에게 물었지.
“배추 크기 나타내는 거예요. 제일 작은 것이 48호로 검정 끈, 다음이 50호, 더 큰게 52호로 파랑끈, 그 보다 더 크면 55호로 노랑끈, 제일 큰 게 58호인데 그런 건 나오기 힘들지요. 망마다 자루의 크기가 달라요”
‘아하 그렇구나. 그럼 선별해서 자루에 담기가 힘들겠다.’ 자꾸 기가 죽는다.
“그럼 이 파란 망 한 자루에 얼마를 받습니까 ?” “6천 5백원요. 몇 망이나 사실 거예요” 내 대답이 없자 “이게 소매상으로 가면 8천 5백원은 받을 걸요. 다음 주 김장철이 시작되면 더 올라요” “둘러 보고 올 게요” “예 그러세요”
‘나도 팔 사람인데....’
배추를 싣고 온 트럭을 보니 높은 철장을 설치하고 하늘까지 닿게 실었더라.
‘아하 저래야 많이 싣겠구나. 저걸 사야돼 ? 만들어야 하나 ?’ 자꾸 가슴이 조여오더라.
‘그럼 내 배추는 몇 호나 될까’ 손으로 만져보고 재봤지.
‘52호나 55호 정도는 되겠다. 그럼 봉투를 사러가자. 몇 개나 사야 하나 ? 한 망에 세 개씩 넣어야 하니까 52호 200개, 55호 200개만 사야겠다.’
자루 가게로 갔지. “배추 자루 52호 200장, 55호 200장 주세요”
“그렇게는 안 팔아요. 500개 한 묶음씩만 팔아요” ‘허 참 1000장이나 되면 남는 건 뭐하나 ?’ 값을 물어보았지. “그래요 ? 그럼 얼마인가요 ?” “두 묶음이 19만원입니다” 두 세집을 둘러봐도 어느 집에서나 500장 묶음 아니면 안 판다네. 100장 단위로 팔면 얼마나 좋은가.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떡하니 나오는데 50장에 17000원이란다. ‘그럼 1000장이면 34만원....’ 입이 벌어진다. 갈수록 태산이더라.
‘도대체 농민들은 죽으란 말인가 ? 끝까지 한 번 해보자’ 오기가 솓더라’
‘그대로 주저앉는다면 억울할 거야’
발품을 팔아 제일 싼집을 찾았고 16만원에 두 묶음을 샀다.
다음은 철공소로 갔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철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얼마면 되겠어요 ?”
한참을 계산기로 두드려 보더니 “80만원은 주셔야 하는데 최하로 70만원 받을 게요” 갈수록 태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놈의 오기가 나를 정산의 고물상으로 안내하더라. 사진을 보여주면서 재료를 달라고 했지.
전부터 잘 아는 주인이 혀를 차면서 묻는다. “용접을 할 수 있어요 ?”
“한 번 연습은 해봤는데 잘 안되대요. 이참에 배우려구요”
“이 건 용접에 능숙해도 어려운데.... 참 별일 다 보네요” 하면서도 각관이니 파이프니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5만원만 주세요”
‘햐. 제대로만 만든다면 몇 배가 남는 장사냐’ 겁 없이 덤벼들었지.
사실 농촌에서 용접기가 있으면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 생각하고 2년 전에 용접기를 사와서 연습을 한 번 해본 적이 있으나, 쉽지 않다는 깨달음만 얻고 내방쳐 두었지. 그러다가 무작정 덤벼든 거지.
어제부터 열 일을 젖혀두고 파이프를 자르고 용접기를 들고 달려들었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흥화에 전화를 걸어 물어 보고....
그러나 말로만으로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지.
델 뻔도 하고, 그라인더로 손도 다치고, 조금 오래 대고 있으면 파이프에 구멍이 뻥뻥 나고, 간신히 때워 놓으면 또 떨어지고, 계속 지져대면 누더기가 되고.... 시간은 또 왜 그리 빨리 가는지.... 마냥 쇳덩이와 씨름하는 거지.
장모님께선 ‘정말 저 걸 만들 수 있을래나 ? 왜 저리 헛 고셍 하나’ 하셨지.
안사람은 “당신 손재주 없잖아. 그만 둬요” 몇 번씩이다.
그래도 첫날 배은 게 하나 있었다. 용접 불꽃이 일어나지 않을 땐 용접봉 끝을 세게 바닥에 때리면 똥이 떨어져 나가면서 불꽃이 일더라.
그 터득을 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그런데 오늘은 구세주가 나타났지. 성겸이가 지나가다 보고는 안스러운지 달려든다. “제가 1년 동안 직업학교에 다닐 때 용접을 배웠어요. 지금은 다 잊었지만.... 용접 한 것이 떨어져서 재용접을 할 때는요. 망치로 용접한 곳을 때리는 거예요. 이거 봐요 용접똥이 떨어져 나가지요. 그런 다음에 다시 용접을 해야 붙어요. 한 번 해보세요” ‘허 그거였구나. 망치....’
“그리고 용접봉을 비스듬히 대고 천천히 한 번 지나가면 한 번에 때워져요. 많이 연습을 해보셔야 돼요” 이 얼마나 고마운 가르침인가.
그 다음부터는 작업 속도가 조금은 빨라졌지. 저녁 때까지 옆부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내일은 제일 어려운 바탕에다 세워서 용접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으려나 ?’ 고민이 깊어진다.
‘해보는 거지 뭐. 다 만들면 트럭에 싣고 정산면소재지로 카 퍼레이드를 한 번 하는 거지. 뭐’
첫댓글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