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은 가셨다. 혼자 훌쩍 떠나셨다. 모든 걸 뒤로 하고 저세상으로 멀리 건너가셨다. 일년 삼백예순날 자식들 이름대며 새벽 기도 하셨는데, 이제 누가 나서서 그 기도를 대신해 주실까. 자상하시던 그 모습 언제 어디서 다시 뵈올 수 있을 것인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주 못가 뵈었던 내가 밉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장모님을 찾아 뵈었을 때는 링거주사를 팔에 꽂고 병상에 누워 주무시고 계셨다. 음식을 하나도 못삼키시니 호스에서 떨어지는 링거액 방울만이 당신의 생명방울인 셈이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새 링거팩으로 갈아 끼우면서 숨이 답답하시냐고 물어도 반응이 없으셨다. 더 큰 소리로 산소 마스크를 끼워드릴까요 하니까 그제서야 괜찮다고 힘없이 고개를 흔드신다. 손발은 부어서 불룩해졌다. 이 쇠약한 당신의 육체에서 영혼이 가고나면 이제는 무엇이 남는 것인가. 어렵게 잠깐 눈을 뜨셨다. 당신의 오른쪽 발굼치가 호스를 눌러 링거액이 흐름을 멈추고 안 떨어진다. 이걸 발견한 당신은 그 호스를 누르고 있던 자기 오른발을 얼른 치우시는 거였다. 링거액은 다시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아직도 당신께 남아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시구나.
그렇게 병상에 누워 계시던 장모님이 그저께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오늘 당신은 노무현대통령이 들어갔던 이 연화장에서 그와 똑같이 죽음 뒤의 과정을 치루고 있다. 당신의 관이 우리 눈 앞에서 소각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보니 가슴이 철렁한다. 당장 세상의 유채색이 몽땅 사라지는 것 같다. 세상이 모두 검정 천지라는 환각이 나를 엄습하고 또 엄습한다. 유리창 너머 6월의 녹음도 온통 허상처럼 보인다. 허망하다. 인생의 종착역은 누구나 언제나 이렇게 귀결되는 것인가?
당신의 육신이 불에 타고 있을 때 우리는 화장장 구내식당에서 태연하게 점심을 먹고 있다. 돼지고기볶음과 김치를 반찬으로 모두 평상시처럼 먹어 치운다. 산자와 죽은자의 차이가 이런 것인가. 산자들의 식사 시간에 한 주검은 소리없이 재로 변하고 있으니. 이렇게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뭘 더 가지려고 속이고, 빼앗고, 울리고들 한단 말인가. 죽음은 혼자 떠나는 거고, 모든 걸 남겨두고 간다. 우리는 갖고 가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다가 허송세월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마지막을 잠깐만 생각해도 그런 삶을 살지 않을텐데도 말이다. 내 죽음 후의 광경이 떠오른다. 내가 죽더라도 세상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겠지. 내 죽음이 우주에서 가장 큰 변고라고 여기는 사람은 나 혼자말고 또 누가 있을까. 한 번도 안 가본 죽음이 두렵긴 하다. 그러나 내가 죽어갈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고, 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당신의 죽음 앞에 서니 대충 가늠이 된다. 더 늦기 전에 철들게 해주신 당신 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점심을 끝내고 상주 대기실로 돌아와 전면 전광판에 나타나는 글자들을 응시하고 있다. 당신의 이름 '서순예' 오른쪽으로 '완료'란 빨간 글자가 나타났다. 이제 당신은 완전히 한 줌의 재로 변한 것이다. 조금 지나 "서순예씨 맞죠?" 하면서 하얀옷을 입은 화장장 사내가 나와서 우리를 힐끗 째려 본다. 꼭 저승사자를 담았다. 참 보기 싫다. 그는 당신의 유골가루를 유골함에 극히 사무적으로 털어 넣는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그 동작은 그에겐 무의미한 일상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슬픔을 넘어 처절한 아픔이란 걸 그는 알고나 있을까.
화장장 정원에는 시인들의 시구절들이 화강암 시비에 새겨져 있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간다는 이도 있고,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영원한 쉼표라고 노래한 이도 있다. 그 중 '살아도 조금씩 내가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읍니다.'라는 이해인의 시 구절이 자꾸 가슴을 때린다.
첫댓글 장모님을 편히보내면서 내 삶을 반주해보는 그대 인제 道人이 다 됐수다. 우리네 느탱이들이 다 그리 생각을 하고 '남은여생'을 아웅다웅 하지말고 순리대로 살다가지유 얼마 안남았어유 길어야 30년이유 흐
30년이 아니라 55년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자연은 모든이에게 그 능력에 관계없이 평등(?)하다! 감사
극히 가깝고, 고마왔던 분들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을 접합니다. 나이를 더 해 가면서 우리 주위에 그런 일들이 종종 더 해 갑니다. 안타까운 일을 당 할때마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남아 있는 자들의 새삼스런 몫을 생각케 되지요. 허나, 잠시뿐, 도로 제자리에서 허우적대며, 그 꼴인 자신을 봅니다. 저(당신) 만한 사위도 흔치 않으리란 믿음을 보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분은 다정 다감한 사위분을 두셨었군요, 시시떄때로 엄습해 오는 두려움이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 그 무엇이 정리해야지 하는 급한 마음만 있지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런지 피할수도 없고 뒤숭숭하네요.
고마운 분 보내는 마음과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를 돌아 보고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