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삼십년도 더 전인 86년 2월에 히말라야 등반훈련차 한라산에 간 후, 그 후 몇 번 제주도에 간 적은 있지만 좀체 한라산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야 닿았으니...
지난 화요일, 마침 제주에 근거를 두고 계신 다우리님 및 2년 후의 그랑 파라디소 참가분들 몇몇 분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제주에 갔습니다.
첫날, 공항까지 마중 나온 다우리님과 쵸코맘님의 환대를 받고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기국수로 근사하게 요기를 하고 곧장 남동쪽으로 달려간 곳, 대록산 즉 큰 사슴 봉으로 가 넘실대는 억새의 물결을 보며 봉우리를 한 바퀴 돌아 오르내렸습니다. 작은 산이었지만 주변 오름들이 한눈에 시원스럽게, 그리고 한라산이 구름에 살짝 가려 있었지만 그 위용을 지켜볼 수 있었죠.
그리고선 다우리님의 친절한 동선 스케쥴에 따라, 어찌 저의 마음을 알았던지 그곳서 멀지 않은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로 안내해주셨는데, 이번엔 꼭 가봐야지 했던 참이었습니다. 저보다 그리 많지 않은 연배의 사진가, 제주의 바람과 오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 그의 일생을 익히 알던 터라, 더구나 저 또한 알프스에서 십여 년 파노라마 판형의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그에 대한 서너 권의 책을 읽으면서 동병상련이랄까, 사진 찍는 이의 고충을 공감한 터라 두모악 갤러리는 저에겐 특별했다고나 할까요. 책에서 익히 본 사진들이었지만 큰 판형으로 전시된 작품들에선 더 크고 세찬 제주의 바람이 느껴졌는데, 그가 없어 더 그랬던 간에 늦가을의 쓸쓸함도 묻어있더군요.
저녁엔 수아님, 산유화님, 아이거님을 반갑게 만났는데, 속칭 작가와 만남의 장을 깔아놓으신 그들과 함께 그랑 파라디소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꽃도 피웠으며.....
다음날 한라산 산행에 나섰는데, 성판악에서 출발해 정상을 거쳐 관음사로 하산하는 코스로서 제주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관목숲, 차츰 고도를 높일수록 등 뒤 저 멀리 바다가 보였으며 정상부위에 스쳐가는 구름 사이로 백록담도, 그리고 하산시의 상고대와 단풍 등 한라산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멋진 하루였습니다. 단숨에 한라산을 오르내린 것만으로도 다들 그랑 파라디소 트레킹 1차 관문은 통과할 정도의 체력은 입증되었던 셈이죠.
아울러 차량을 위해 정상서 성판악으로 홀로 하산하신 다우리님의 노고에 편하게 한라산을 오르내릴 수 있었으니...
다음날은 아내와 둘이서 용눈이 오름에 찾아갔습니다.
다우리님이 빌려준 차로 쉽게 찾아간 오름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습니다. 김영갑 사진의 주 무대답게 오름에서 보이는 풍경이 좋더군요.
바람을 피해 동쪽 비탈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제주, 바다, 바람, 김영갑, 사진, 돌담, 제주의 밭농사, 유체밭, 관광, 4.3사건, 등등....
이어 우리는 성산일출봉 쪽으로 하여 바닷가를 한 바퀴 둘러봤는데, 어느 한 어촌 바닷가 저 멀리까지도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다풍경을 즐기고서 서귀포 못미처 한라산의 허리길을 넘어 제주시로 돌아왔는데, 해질녘엔 이호해변으로 가 늦가을의 단풍보다 붉은 노을을 보기도 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한라산도 볼 수 있었으며...
다음날은 이틀 전에 수아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준 절물자연휴양림에 갔습니다.
나무데크로 편하게 산허리길을 걸을 수 있게 해두어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길을 걸었으며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편백숲도 둘러봤는데,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대여섯 시간의 산책이 한라산 산행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그 피곤함을 마지막 구간에서 마주친 수노루 한 마리와 새끼 노루가 씻어주더군요.
어둠이 내릴 무렵에야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온 다음, 동문시장의 야시장과 주변을 둘러보며 제주의 또 다른 모습도 일별했습니다.
그리고선 마지막 날인 어제, 그냥 떠나오긴 아쉬워 무작정 시내버스를 탔는데, 마침 문예회관이 있어 내려 보니 젊은 작가들의 전시 작품들 중에 한라산이나 제주의 풍경을 그린 것들도 꽤 있더군요. 한 번 더 제주의 풍광을 접하는 호사를 누렸으니...
그리고 뒤편의 민속사 박물관에도 들러 제주민의 역사뿐 아니라 동식물 및 지질 전시관을 둘러본 다음 제주의 기운을 한 몸 가득 안고 섬을 떠나왔습니다.
사박오일의 길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제주의 다양함을 느껴볼 수 있었기에 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으며 아울러 다우리님의 배려와 초코맘 수아 산유화 아이거님을 만나 뵐 수 있어 더 즐거웠던 제주행이었습니다. 다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첫댓글 쌤 안내를 못해 아쉬움과 죄송함이 있었는데 그래도 두분 알차게 보내신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언제든 두분 또 제주에서 뵙기를 기대합니다
겨울 한라산 산행도 하셔야지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상의 안내였습니다.^^
별말씀을요. 덕분에 편안하고 즐겁게 제주여행하고 왔습니다. 예, 한라산 설경 산행도 꼭 계획해보겠습니다.
참, 오름옆 돌담 사이로 드넓게 펼쳐진 밭에 난 야채가 뭔가 싶어 봤는데, 무우더군요. 제주의 바람 때문에 육지 것과는 달리 무우청이 그리 키가 작았나 싶어 신기하다군요. 다음엔 제주의 무우맛도 실컷 봐야겠습니다.
@허긍열 제주 무 정말 맛납니다ㆍ
특히 밭에서 뽑아드셔야 한다는~~
@수 아 아... 모모님께서 무서리를 맛있게 했다는 풍문을 들었던 터라 저도 꼭 해봐야겠지만 그런 건 저같은 관광객이 아닌 로컬에게만 허한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용눈이 오름에 같이 앉아 있었는데 생각을 많이 했군요. 난 간식 먹은 생각 밖에 안나는디? 모자 사이즈가 XL이다보니 생각도 많았구려. ㅎㅎ
대갈장군이라 하여 어찌 무뇌한이랴~~~~
두분댓글에 빵~~
김영갑씨가 두분개그에 배꼽찾으러 오시는거 아닐지~~ㅎㅎ
함께넘은 한라산 관음사코스ᆢ
대장님덕분에 완주할수있었습니다ㆍ
별말씀을요. 다들 체력과 의욕이 대단하시어 그 높은 한라산도 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제껏 도보코스에서 발휘하신 인내심만으로도 알프스든 어디든 충분하시리라 봅니다.
다양하고 알찬 여행 하셨네요ㅎ.담에 제주 가시면 용눈이오름 일몰을 꼭 보러 가보세요.
아....용눈이오름에서 일몰까지 보셨다니 (부귀)영화를 누리고 계시는군요. 그러게요. 왠만하면 일몰뿐 아니라 일출도 다음에는 꼭 지켜봐야겠습니다. 용의 눈이 튀어오르는지 두 눈 부릅뜨고... 멋진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대장님 지대로 가출하셧네요~~ㅋㅋ
대장님 글을 보니 제가 다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집나가면 고생이라 했건만 편하게 잘 다녀와 종종 가출해야겠더군요.
잘다녀오셨군요.
여행은 역시 즐겁죠^^
강원도에도 낙엽송이 노랗게 물들었어요.
가을 낙엽송이 멋집니다.
예,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올레길은 못 걸어봤지만 제주가 좋더군요.
몽블랑의 인연이 한라산에서 계속되고 있었군요. 두분의 여행길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초코맘님의 셀카는 여전하시고...ㅎ
아해님 반갑습니다. 언제 한번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빕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쵸코맘님의 '놀면 뭐해' 사진찍법은 가히 신공에 가까워졌습니다. 특히 셀카공법이 최상이더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