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중앙군인 오위(五衛)를 지휘 감독한 최고 군령기관(最高軍令機關).
조선시대의 중앙군 통제기구는 고려 말 이성계가 병권(兵權)을 장악하기 위하여 설치한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1393년(태조 2)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고쳐 10위(衛)를 3군(軍)으로 나누어 귀속시키고 자체의 감독권은 물론 지휘권도 갖는 강력한 중앙군사체제를 갖춘 데서 비롯하였다. 그 뒤 중앙군은 10사(司) ·12사 ·5사 ·5위(衛)로 개편됨에 따라 통제기구도 승추부(承樞府) ·3군도총제부 ·3군진무소(三軍鎭撫所) ·5위진무소 등으로 개편되었다가 1466년(세조 12)에 오위도총부로 개칭되었다. 그 때부터 오위도총부는 중위(中衛)인 의흥위(義興衛), 좌위(左衛)인 용양위(龍驤衛), 우위(右衛)인 호분위(虎賁衛), 전위(前衛)인 충좌위(忠佐衛), 후위(後衛)인 충무위(忠武衛)를 귀속시켜 이를 지휘 ·감독하였다. 이 기구는 《경국대전》에 병조(兵曹)의 속아문(屬衙門)으로 되어 있으나, 병조는 군정(軍政), 오위도총부는 군령(軍令)을 각각 관장함으로써 상하관계가 아니라 횡적(橫的) 협조체제를 이루었다.
관원으로는 정2품의 도총관(都摠管) 5명, 종2품의 부총관(副摠管) 5명이 각 위에 1명씩 배속되었고, 행정 실무를 맡은 경력(經歷:종4품) 6명, 도사(都事:종5품) 6명이 있었으며, 이속(吏屬)으로는 서리(書吏) 13명, 사령(使令) 20명이 있었는데 도총관 ·부총관은 부마(駙馬)를 비롯한 종실(宗室)의 척신(戚臣)이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 오위도총부나 오위는 상위직을 무관이 아닌 문관이 차지하여 지도체제에 취약점을 지닌 데다 군정의 문란 등으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그 체질상의 무력함이 드러나 훈련도감(訓練都監) ·어영청(御營廳) 등 오위에 대체되는 중앙 군영이 설치됨에 따라 유명무실화되어 궁성의 숙위(宿衛)를 맡는 기관으로 명목을 유지해 오다가 1882년(고종 19)에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