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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셨으니
우리는 이제 걱정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사순절 3)
느 9:35-36
(35)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3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지난 주(사순절 둘째 주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죄가 없으시며, 그 어떤 존재보다 강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일부러 약함을 선택해주심으로
모든 이가 경험하기 싫어하는 엄청난 수난들을 묵묵히 당해주셨으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에 푹 빠져 있는 우리를 위해
죄를 홀로 짊어지신 채 십자가에서 대신 죽임을 당해주셨고,
결국 구원의 완성과 부활의 승리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강한 능력을 온 세상에 증명하셨다는
‘약함이 강한 것이고, 강함이 약한 것이라는 역설의 진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예수님의 그 엄청난 사랑과 은혜와 공로에 감격하면서
진심어린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토록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와 공로를 찬송하십시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았고,
매일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다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롬 12:11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군요!
우리의 영적 문제를 전부 해결해주셨다니
고생 많으셨을 예수님께 정말로 감사를 드리고, 행복합니다.
그럼... 중요한 부분이 해결된 것 같으니 이젠 마음 놓고 저만의 인생을,
인생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기에
하나님은 제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종류의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속으로 은근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날 꽤나 많고,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돈과 세상 쾌락을 더 사랑할수록 그 수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가치관의 순위,
말과 행동을 보면 마음의 진의가 다 드러나기 때문에
자기는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핏 보기에도 그 속마음이 다 보이는데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한 터럭도 숨길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장마철에 태풍으로 물난리가 나서
가정집에 물이 다 들어와 버린 침수피해를 당했을 때
도와주러 와준 자원봉사자들 앞에서 집주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저는 근처 호텔에 가서 쉬고 있을 테니까 다 끝나면 이 번호로 연락을 주세요.
물론 저도 같이 하고 싶긴 한데 이렇게 힘들고, 더러운 일을 저는 못하니까(하기 싫으니까)
선한 일을 잘 하시는 여러분들이 수고 좀 해주세요.
기왕 좋은 일 해주시는 거 도배랑, 장판이랑, 싱크대 교체랑,
화장실 타일교체 등 인테리어도 싹 다 해주시면 좋겠고요.
아참! 중요한 거 깜빡할 뻔 했네요. 주방은 꼭 아일랜드 식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방송국에서 기부금도 모았다던데 그 돈으로 저희 집 고장 난 가전제품들
새 걸로 부탁드립니다. 구형 말고 이번에 출시한 23년 신제품들로 꼭 좀 부탁드려요~
싱크대에 음식물쓰레기 모아 둔 게 있는데 먼저 그거부터 버려주세요. 오래된 거라 냄새나거든요.
나중에 댓글 좋게 달아 드릴게요. 그럼 수고들 하세요.
다 끝나면 캔 커피 하나씩 돌릴 게요~^^“
이런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염치없는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그 엄청난 은혜는 물론이고,
삶속에서도 매일 놀라운 은혜들을 잔뜩 누리고 있으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불순종과
세상과 쾌락을 향한 욕심만으로 가득한 인생은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면 그 때부터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힘써야 하는데 도저히 하기가 싫고,
자기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까지 예수님께서 또 짊어져 주시라고 미루는 자들은
예수님께 사랑을 받을 줄만 알고 사랑을 할 줄은 모르며,
은혜에 보답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즉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일부러 당해주신 그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싫어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톱으로 썰어서 수레에 싣고
어떻게든 쉽게 가려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시대입니다.
그 무엇보다 돈을 최고로 사랑하고,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기기만 하면 여행 계획과 쇼핑에 몰두하고,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먹고 마시면서 즐기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은 행복하고 화려한 인생,
혹은 훌륭하고 거룩한 인생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애써 포장된 모습만을 드러내고 허세를 부리며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스스로 차버리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을 실족시키며 예수님의 이름에 거하게 먹칠을 하고,
악한 영에 쉽게 미혹되어 분별을 하지 못하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개독 소리를 듣게 만드는 것입니다.
눅 18:8 하
(8)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순종이 아니라 세상적인 쾌락을 선택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
인내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얼간이로 취급당하는 세상,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소개하는 자들이 알면서도, 혹은 자신도 모르게
돈과 쾌락을 주님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의 시대인 것입니다.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미리 경고해주신
예수님의 그 말씀이 어느 때 보다도 잘 어울리는 세대입니다.
유일한 신,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부분에 대해 엄중하게 말씀하시길
이제는 죄와 쾌락에서 떠나, 세상의 가치관에서 떠나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의의 종으로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크신 은혜와 사랑을 거저 받은 자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다 맡기고선 정작 자신은 마음 편히 세상과 쾌락의 종이 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눈먼 자들이 오늘날 너무나도 많다고 경고해 주셨습니다.
롬 12:9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말씀에 기록된 바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선에 속하지 않으며, 악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죄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사랑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거라면서 예수님보다도 죄와 돈과 쾌락을 더 사랑하면
그 사람은 거짓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고마워하고 있는 것일 뿐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예수님을 위한 인생을 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들을 다 짊어져 주셨다니까 이제부터 나는 행복하게 지내도 돼.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래. 정말로 감사하다.
예수님께서 나의 지난 죄들,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다 해결해주셨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평안하게 살아야지. 염려하는 것도 죄라잖아?
나는 앞으로 또 죄를 지을 거고, 계속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겠지만
너무나도 다행이야. 해결사, 예수님이 계시잖아?‘ 하면서
여전히 죄를 상대로 피 흘리기까지 싸울 생각이 없고,
멍하게 죄의 종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도무지 십자가의 길을 걷기가 싫은 것이고,
자신의 삶에 고난, 영적 훈련이 찾아왔을 때
빨리 그 싫은 것들을 치워달라고만 징징대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로지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인생,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만 하는 인생,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실족을 하게 만드는 인생에는
마지막 날에 아무 열매도 없을 것입니다.
사 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대신 찔려주셨고, 대신 상함을 받아주셨으며,
징계도 대신 받아주셨고, 채찍에도 대신 맞아주셨기에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나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즉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죄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다며 자기 마음대로 마구 죄를 지으면서
(범죄와 회개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자,
예수님을 닮아갈 생각 없이 자기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까지
예수님께서 다 짊어져 주시라고 하는 염치없는 자에게 구원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무료로 엄청난 선물을 이미 받은 우리는
이제부터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삶속에서 자기를 부인하여 약한 것을 선택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조금씩이라도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구원의 길입니다.
눅 14:27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강조하여 말씀해주신 것처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돈과 세상을 가장 사랑하는
죄의 종, 쾌락의 종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에게 구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눅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해주셨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적당히 세상을 즐기면서 살다가
어느 중요한 시점이 되거든 그 때 예수님을 따르는 선택을 하라.’가 아니라
날마다, 즉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선 저와 여러분들에게
“자, 이렇게 하는 거란다. 내가 직접 보여줬으니 이제 너희도 내 발자취를 따라서 오렴.
그리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단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동행해줄게.
그 길의 끝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신 것이지
“자, 잘 봤지? 내가 이렇게 너희 몫까지 다 해버렸으니까 이제 그다지 할 것이 없어.
이제 너희는 돈과 세상 쾌락과 출세를 향해 성공의 피라미드를 올라가면 된단다.
그리고 올라가선 나를 잊지 말고 헌금을 많이 해라(?).“가 전혀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크게 힘든 일 없이
그저 편하게 살고 싶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고,
부유하게 모두에게 칭찬과 부러움을 받으면서 아무 고난 없이 지내고 싶다면,
솔직히 마음속의 중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싶은 것이라면,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예물을 올리고, 연보와 구제도 하고 있는 거라면
주소를 크게 잘못 찾아온 겁니다.
예수님께선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시 66:9-12
(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잠 11:8
(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형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의 내려 보면
‘세상에서 출세하고자 도모하는 일이 다 순조롭고, 부와 명예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은을 단련함과 같이 우리의 영혼이 단련되는 것’ 입니다.
우리가 방금 말씀을 통해서 확인한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아래에서
그물에 걸리고, 어려운 짐이 허리에 매이고,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해주심으로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여 단련된 후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어내주셔서
풍부한 곳, 즉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시는 것이 바로 정확한 의미의 형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정말로 많이 사랑하셔서 이 형통을 주고 계시며,
최종적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짧은 인생을 마친 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진짜 인생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형통을 지극히 싫어합니다.
마음이 뜨거워 미칠 것만 같은 이 고난에서 제발 빨리 벗어나게 해달라고 아우성만 칩니다.
자기를 부인하여 내려놓고 약함을 선택하는 것은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죽기보다 싫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감당하는 것도 너무나 싫고,
그저 자신이 지금 하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더 건강하게 해달라고,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유명함과 인정받음과 명예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주변 사람들과 목회자들에게 중보기도 부탁을 합니다.
그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것 같으면 자신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며 더더욱 교만한 모습이 되고,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도 저주하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면서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 사람의 생사, 그리고 인생의 성패가 돈과 세상적인 성공에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힘들어야 성장을 하는 존재이기에 고난이 힘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과 지기 싫어하는 사람의 차이점은
‘힘든 그 순간에 시선이 어디로 향하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의도를) 아는 사람은 이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로서
단련이며, 형통이며,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솔직히 힘들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하면서 끝까지 인내로 순종하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알면서도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도 역시 알지 못하기에
그저 불평과 원망 가운데 육신적인 평안과 세상적인 형통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음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았으면,
예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기를 힘써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자기 어깨에 짊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했으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답게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설교를 읽을 때에는 ‘맞아! 그게 맞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근데 솔직히 나는 그런 사람에 가깝긴 하지.’ 해놓고
일상 속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는 자도 아니고, 깨달은 자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만을 사랑하는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롬 12:12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예수님 덕분에 우리 인생에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있기에 즐거워하면서 환난 중에도 서로 위로하며 인내를 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다 해주셨다면서 자기는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는 마음이 없다면
모든 짐을 예수님께만 지우려는 비겁하고, 염치없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톱으로 잘게 잘라서, 아니 이제 아예 톱밥으로 만들어
포장하여 택배로 보내는 방법으로 가장 편한 것만 추구하다보니,
즉 눈앞에 있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하나님께 어서 빨리 치워달라고만 요구할 뿐
자기 자신이 변화되고 성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못하여
성장을 위한 고난과 고통의 몸부림과 잠깐의 휴식 이후에
또 동일한 문제를 무한반복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형통, 즉 고난들이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두렵게도 형통의 시간과 기회는 영원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고난도 없어지고 오직 심판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둬야 할 것은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가 반드시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으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것들이 내부에 있을 때,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자기의 십자가인 경우에 많이 당황하면서 힘들어 진다는 점입니다.
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지난 주일에 함께 깊이 묵상한 것처럼
무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강함을 내려놓으시고 약함을 선택하셔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반드시 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제발 겪기 싫다면서 발버둥치는 것을 이젠 멈추고,
순한 양이 주인에게 복종하여 털을 깎으러 얌전히 들어가는 것과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을 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닮아가는 인생을 꼭 살아야만 합니다. 싫어도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싫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온전히 순종하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비와 긍휼을 구하면서 한 가지씩 차분하게 순종해보십시다.
어느새 세상으로 향해 있는 나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고,
한 쪽 발을 세상에 걸쳐놓은 채 간보고 있던 그 발도 다시 가지런히 모아 하나님께로 향하고,
겸손히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코를 바닥에 대면서 납작하게 엎드려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부디 우리에게 나타내주시기를 간구 드리십시다.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말씀의 내용도 저와 여러분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우리 자신이 자기를 부인하여 모두 비운 후에 임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대하 25:2
(2)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더불어서 순종의 행동은 물론이고, 온전한 마음이 꼭 함께 있어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진정한 순종이라는 사실도 늘 잊지 마십시다.
호 10:2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약 4:8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또한 마음이 있긴 있지만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은
마음의 중심까지도 다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두려운 사실도 항상 기억하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는 늘 숨기는 것 없이 겸손하고, 정직하게 나아가십시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자신이 지고 가야할 십자가를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불평과 원망 가운데 영적으로 어두워지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싫어하여
편하게 예수님께서 다 해주시기를 원하면서 기도와 간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사순절 셋째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들 모두, 각자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오로지 예수님께서 가신 길만을 선택하기로 굳게 다짐하십시다.
우리가 각오를 하고 이 인생을 살아가면
어떤 일이 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잠시 넘어졌다 해도 즉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지독하게 싫어하면서 계속 거부만 하면서 살아가면
어떤 일 앞에서 쉽게 평정심을 잃게 되며,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날 힘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또 다시 죄와 가까워져버립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예수님께서 미리 언급해주신 것처럼
참으로 험하고, 좁고, 협착한 길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힘들어서 포기해버리면 결국 넓은 길을 갈 수 밖에 없어지는데
그 넓은 길의 끝에는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고, 벌레도 죽지 않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돈을 사랑하고, 돈을 주님으로 섬기는 자들의 인생과는 다르게
편안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고난과 괴로움의 연속인 인생이라는 사실,
그 고난과 괴로움의 중심에서 놀랍게도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소망과 기쁨을 발견하여
예수님 덕분에 행복해지는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인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 인생에도 휴식과 평안의 시간을 허락해주시며,
또한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피할 길을 풍성히 공급해주시기에
우리가 그것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게 있고,
예수님께서 지금도 항상 우리와 동행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늘 안심하며,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힘든 십자가의 길 위에서도 이렇게 소망과 기쁨이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께선 그저 말씀 한 마디로 1초 만에
그 거대한 방주를 뚝딱 만들어주실 수도 있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방주를 제작하는 방법을 노아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했던 노아는 오랜 세월 동안 순종으로서 그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한 순간에 뚝딱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는 진실한 사랑과
경외와 순종이라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 다른 말로 표현하면 힘든 고난의 시간에 최대한 많이 힘들어하십시다.
힘들고 지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땐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다 말씀드리십시다.
우리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또 우리를 꼭 안아주시며,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셨다고 하니 이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구나.
이제는 평안히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겨보자!‘ 하는 우상숭배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순종으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로 굳게 다짐하면서
또한 무엇보다 이 길을 다 가기 전까지 예수님의 손을 결코 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서
끝까지 좁은 문과 협착한 길, 구원과 생명의 길을 걸어 나아가기를 확정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 119:2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3.03.12.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513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고
1.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아침해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2.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3. 네가 맡은 일 성실히 행할 때에 주님 앞에서 상 받으리
주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너 십자가 지고 가라
[후렴]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첫댓글 아멘! 기쁨으로 제게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좁은길을 걸어 나가겠습니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시기에
늘 기쁘게 순종하시며 끝까지 생명의 길을 걸어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