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과 평안을
빌던 ‘지역 축제’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마을 또는 지역 축제로 줄다리기가 행해졌다. 농사가 주업이었던 과거에는 풍년이나 마을의 안녕을
비는 행사로 줄다리기를 하는 지역이 많았다. 줄다리기를 하기 수십일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줄다리기에 쓰일 줄을 꼬고 마을의 신들에게 평안을
빌거나 액을 막아달라는 제사를 지냈다. 풍물로 하나 된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어울리며 줄다리기를 즐겼다. 줄을 꼬고 준비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재정과 인원이 필요하나,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비용을 나눠 내고 또 즐겁게 맡은 바 일을 행했다. 줄다리기는 마을이나 지역민들이
편을 갈라서 당긴다. 편은 동부·서부로 나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로 나눠 당기기도 한다.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관습이 있어 대개 여자
편이 이기도록 하나, 실제로 경쟁이기 때문에 일부러 져 주지는 않는다. 전북 부안에서 하는 줄다리기는 남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할때 할머니들이
나무 회초리를 가지고 남자들의 등을 때려 줄을 못 당기게 훼방을 놓아 여자 편이 이기도록 한다. 경기 중에는 자기편이 이기도록 치열하게 당기지만
사실 이기고 지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다. 온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참여해서 만족하고 즐기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줄다리기를 함으로써 주민들이
하나 됨을 만끽하고 안녕과 풍년을 비는 축제인 것이다.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재로 지정·보호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마을마다 행해지던 줄다리기가 대부분 사라지게 되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국가 또는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줄다리기는 영산줄다리기(창녕), 기지시줄다리기(당진), 삼척기줄다리기, 감내게줄당기기(밀양), 의령큰줄땡기기, 남해선구줄끗기 등이다.
줄다리기는 국내 문화재 지정을 넘어 유네스코의 문을 두드렸다. 유네스코에서는 2001년부터 전 세계 각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등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각국이 등재후보 신청을 하면 심사하여 대표목록으로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를 시작으로
2003년 판소리, 2005년 강릉단오제, 2012년 아리랑, 2013년 김장 문화, 2014년 농악 등 17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등재시켰다.
이들 17개의 무형유산은 우리나라 단독으로 등재한 것이다. 2015년에는 한국·캄보디아·필리핀·베트남 4개국의 줄다리기가 공동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의 대표목록으로 등재하는 데는 한 국가의 무형유산을 단독 등재하거나 다수의 국가가 공통된 유산을 공동 등재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줄다리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국가 간 공동 등재란 점에 가치가 있다.
끊임없는 소통과 이해를 통해 이룬
‘공동 등재’ 문화재청은 2012년 공동 등재 의향을 알아보기 위해 무형유산을 가진 지자체에 의견을 보냈고, 기지시줄다리기를 보유하고
있던 당진시가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보내왔다. 그 후 쌀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줄다리기 공동 등재 참여 의견을
타진하였고, 캄보디아와 필리핀, 베트남이 참여 의사를 표명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네 나라가 공동 등재 작업을 하게 됐다. 공동 등재 작업은 한국의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진행됐다. 우선 네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등재 신청서의 내용을 토론하고 문안을 작성하였는데 이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의 모임을 통해 조율되었다. 이는 줄다리기가 대체적인 모습은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상이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줄다리기 명칭을 Tugging rituals and games로 정한 것 역시 오랜 논의 과정을 거쳐 나왔다. 대체로
줄다리기를 Tug of war로 번역하는데 이는 서구의 이기고 지는 경쟁 개념이 부각된 번역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화합과 안녕을 중시하는
아시아적 개념을 담기 위해 Tugging rituals and games라고 명시하게 된 것이다. 네 나라의 서로 상이한 줄다리기 양상과
현상을 이해하는 과정이 수반된 만큼 공동 등재는 더욱 값진 경험이었다. 줄다리기의 다국적 공동 등재는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진행했지만, 등재
신청서에는 네 나라의 지면을 공평히 할애하는 등 다른 나라의 줄다리기보다 우리 것을 더욱 부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태도에 대해 다른 세 나라의 대표들은 매우 만족하고 고마워했다. 줄다리기는 우리나라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여러 국가와 공동으로 등재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줄다리기가 공동유산으로 잘 보호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