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17:13
어이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17장에서 13절이 가장 어이없는 구절로 느껴집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하나님 복 주시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돈을 훔치고 다시 돌려준 아들을 야단치며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며 어머니가 참 이상한 기준점을 알려줍니다.
훗날 자녀들이 내 어머니의 기준점은 하나님이셨다고 회상하는 삶이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신상,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라고 말합니다.
역겹다는 단어는 이럴 때 써야겠다 싶습니다.
생계를 위해 떠도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온 레위 청년.
연봉 은 열, 의복 한 벌, 먹을 것에 자신을 팔았습니다.
연봉에 목매어 세상 종처럼 살아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성공의 기준 삼는 것은 아닌가?…..
생각의 축을 주님께 온전히 박고 싶습니다.
성공하여 자만하는 삶이 잘못된 것처럼,
실패하여 생각이 쪼그라드는 삶도 잘못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두 모습 다 하나님의 부재이니까요.
고민하는 시간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고민이라는 에봇을 만들고 두려움이라는 드라빔을 만드는 인생이 아니라 고민을 기도로 바꿀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 자녀의 인생이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 생각의 축, 기준점이 하나님 되시는 복을 간구합니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5~6)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을 어린 시절 꽤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합당치 않은 말이 아니지 싶습니다.
나의 위로를 삼고자 섬기는 하나님!
얼마전 끝난 성경공부에서 처음 교회를 나오신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계신 분인데 왜 이렇게 되도록 두시나요?'
어쩌면 나에게도 마음 깊숙한 곳에 나를 위해계신 분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이 말은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는 말이겠지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매일 필사하며 묵상한다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의가 앞서게 되는 것은 아닌지
매 순간 점검하는 자리에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
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17:13)
착각하고 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내 행위로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음을, 모든 것이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오늘도 그 은혜로 살게하시고, 거룩하고 성별 된 삶을 드리고자 노력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은 일천일백세겔(현 시세 4억이 넘는 돈)을 훔친 아들 미가. 도둑을 저주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그 저주가 두려워 자백하는 그.
아들을 책망하기보다 그를 축복하며 아들을 위해 신상을 만드는 어머니.
미가는 신당을 만들어 제사장이 입는 에봇과 수호신 드라빔을 두고, 제사규례와 맞지 않는 자신을 위한 제사장을 집에 두는 콩가루 같은 일을 감행합니다.
그는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여호와
께서 내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취급하고, 구별된 삶도 살지 않았는데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니까 복 받을 것이라는 착각.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6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기복에 빠진 어리석은 신앙이 되지 않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영이 온전히 지배하셔서 하나님만 제 삶에 주인 되시는 삶이, 오늘 하루가 되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삿 17:2] ~보십시오. 그 은을 제가 갖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가져갔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야훼께 복을 받을 것이다!"
도통 알수 없는 말들입니다.
엄마는 차라리 남이 아닌 아들이 가졌갔다는 말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어쨌든 한식구니 까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결국은 그 돈으로 신상을 만듭니다.
알 수 없는 모자입니다...ㅠㅠ.
부모의 자리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지고 제 뜻이 관철이 안 되는 한계에 더 자주 부딪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에 섭섭해지는 점도 많아지고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맘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섭섭한 마음은 하나님께 이르고, 그래도 인간적으로 다친 감정은 혼자 다스리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결국.. 또 내가 키웠다는 착각.
부모맘을 몰라주는 자녀들에게 섭섭함.
순종치 않는 자녀의 버거움.
이런 부모, 자녀관계가 하나님과 내 모습으로 투영되고. 맘이 어수선 심란한 밤이었습니다.
그 맘 그대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도의 자리로 불러주신 주님만 바라봅니다.
참부모 되신 주님께 소명, 주아를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미가는 은돈 천백 개를 어머니께 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 은돈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드리겠다. 그것으로 너를 위해 조각한 우상과 녹여 만든 우상을 만들겠다. 그래서 네가 이것들을 도로 차지하게 하겠다."
13
그때, 미가는 "레위 사람을 내 제사장으로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겠지!" 하고 말했습니다.
미가는 아들을 위한, 자신의 복을 위한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상을 만들고 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은돈을 바친 것도 그 아들의 잘못에 대한 회개와 용서를 구하기 위한 섬김이 아니었고
레위사람을 품고 섬긴 것도 그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복을 위한 섬김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의 초점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길을 잃을 때가 종종 있곤 합니다.
그러나 미가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함은 나의 유익과 이익을 위한 섬김과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끔 확인시켜주셨습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나의 복을 위해, 나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기 원하며,
나의 부족함과 필요를 채워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하며 기뻐 찬양하는 믿음 생활을 하는 이가 되기 원합니다.
나의 기쁨과 나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 위해 그 나라에 유익함이 되는 선하신 주의 백성되길 소망합니다.
17장 전체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소견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인본주의적인 이들의 행동들이 황당하면서도 마음이 아픕니다.
다들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에 나오지만 많은 교인들의 모습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것을 봅니다.
코로나 이후에 더 마음이 흩어지고 병든 교인들을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목숨을 다해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교인들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교인들을 보며 한숨 나고 답답했던 부정적인 마음들 모두 하나님께 쏟아 놓습니다.
그들의 지금 모습은 아무 소망 없어 보이지만 성령님의 강권적인 일하심을 사모하며 기도합니다.
긍휼히 여겨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