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가신토(國家神道)

일본은 신토를 “신사(神社)의 종교 혹은
신사에서 행해지는 의례적 행위 내지 마츠리(祭)의 종교”로 규정하는 정의를 내세웠다.
신토를 어떻게 정의 내리든 일본인의
일상생활 속에 엄연한 실체로 존재하는 신사와 마츠리의 풍경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신사 앞에는 어김 없이 도리이(鳥居)라는 것이 신사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데, 불경한
곳(속세)과 신성한 곳을 구분 짓는 경계라고 한다. 도리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불분명한데, 어떤 이론에서는 ‘닭이 머무르는 자리’를 의미하는 계거(鶏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솟대에서 유래 했다던가’통과해 들어가다’ 라는 뜻의 ‘通り入る(도리이루)’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일단 이를 제켜두고 계거(鶏居) 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쫓는 다면 이것은 신토(神道)에서 닭을 신의 전령이라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닭에서
전래 했다면 신라인의 닭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삼국사기(三國史記)의 김알지(金斡智)
탄생 설에 의하면, “신라왕이 어느 날
밤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
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알아보게 하니 금빛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궤를 가져와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이 아이가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즉, 신라 시조의 탄생을 알린 것이 흰 닭이었으므로 이를 토대로
해서 계림(鷄林)이
신라의 국호가 되었으며, 신라에서는 아침을 열고, 신라의
건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닭을 신성시 했다.
신라의 사당과 신궁이 일본의 신사 신궁으로 발전되었음을 상기한다면 도리이의 유래는 신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라시대에 시조(始祖)를 제사하던 성소(聖所) 신궁(神宮)의 설치연대는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일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던 ‘신토(神道)’란 일본의 토착종교를 가리킨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읽어 ‘신도’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발음 대로 ‘신토’라 하겠다. 신토는 모든 자연물에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신앙을 시작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현재까지도 신토의 핵심적인 요소로 남아 있다.
이처럼 원래
토착적인 애니미즘 종교였던 신토를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종교의 껍질을 벗겨내고 자신들의 중앙정부에 충성하도록 이를 괴이한 물건으로 탈바꿈 시켰다. 여기서 '종교의 껍질을 벗겨내고'라고 표현한 것은 메이지 정부나 당대 일본 지식인들이 국가신토를 종교가 아니라 야마토의 문화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인식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의 영향으로 지금도 신토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있다.
메이지 정부에서 국가신토를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 데는 법률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메이지
헌법은 서양국가들을 모방하여 제정분리를 표방했는데 만일 국가신토를 종교라고 주장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헌법을 대놓고 어기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종교가 아니라고 함으로써 헌법과도 어긋나지 않고, 또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개개인이 따르는 종교와 상관없이 (당시 그들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일본인들에게 국가신토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면을 보더라도 당시 일인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위선적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국가신토를 종교를 넘어서는 초종교(超宗敎)라고 주장하며, 신앙을 이유로 국가신토를 거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도 당시 국민학교라
불렀던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정문 안 쪽 한 구석에 세워진 조그만 사당을 향하여 절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당시 부끄럽게도 일본신민(臣民)의 한 사람이었다.
모든 자연물에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신앙은 현재까지도 신토의 핵심적인 요소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들이 야마토의 유물이라고 말할 때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실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야마토 문화란 즉 한국이세 도래한 한국인의 문화라는 말이다.
이런 국가신토는 2차 대전 패망과 함께 당연히 폐지됐다. 다만 신토 자체는 군국주의의 산물이 아닌 일본 토착종교이기에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인은 신토의 신(神)을 ‘카미’라고 부른다. 일본
신토에서는 ‘8백만의 카미(야오요로즈노카미)’가 있다고 말해지는데, '팔백만위의 제신(祭神)'을 모시는 종교로
그려진다.
이 수많은 카미들의 기원은 주로 조령(祖靈), 즉 조상신이라
할 수 있다. 조상신이라? 어디서 들어 보던 소리 같지 않은가? 그렇다.
불교문화가 전수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단절 되고 말았지만 이를 가지고 일본으로 간 도래인들은 일본에서 우리의 조상신 신앙 문화를 더욱
발전 시켜 나갔던 것이다.
예부터 일본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사령(死靈)이 가족과 촌락을
수호하는 카미가 된다고 생각하여 숭경해 왔다. 이와 같은 조상 숭배의 관념에서 이른바 씨족신 ‘우지카미’(氏神)라는 촌락공동체의
수호신 관념이 형성되었고, 이 우지카미를 중심으로 하여 신사(神社)가 발전된 것이다.
한편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본 고래의 조상 숭배 관념이 불교와 결합되었다.
예컨대 현대 일본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보면 ‘불단’(佛壇)이 모셔져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불상 대신 조상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또 사찰 안에 신사가 함께 있는 곳도 많다.
도래인들은
일본 각지에 모여 살다가 거기서 호족이나 씨족이 갈라져 나가는데, 흩어질 때마다 새로운 곳에 자신들의
조신(祖神) 또는 씨족신(氏族神)을 모시는 신사, 신궁을 만들어 나갔다. 따라서 일본에는 수 많은 시라기(新羅)신사, 구다라(百濟)신사, 고마(許麻, 高麗)신사 등이 버젓이 한국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악명 높은 야수쿠니 신사는 일본 도쿄 도 지요다 구 황궁 북쪽에 있는 신사로, 주변국 침략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신(영령)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야수쿠니 신사는 1869년(메이지 2년), 침략 앞잡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도쿄 초혼사가 그 전신인데, 지금의 이름인 ‘야스쿠니(靖國)’라는
이름은 ‘나라를 안정케 한다’는 뜻으로, `좌씨춘추(左氏春秋)'의 `吾以靖國也'에서 따왔다고 한다. 1879년 메이지(明治)왕에 의해 개명됐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병사
이외에 전범으로 사형을 당한 도조 히데키 수상
등의 A급 전범들이 안치되어 있어 대한민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는 야스쿠니 신사와 그곳에 참배하는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신사, 신궁과 관련해서는
하츠모우데(初詣)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정초에
신사참배를 하면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신사가 있는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새해맞이
풍습이다.
하츠모우데란 무사히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게 된데 감사하고, 앞으로
맞이할 신년 동안 무사(無事), 평안(平安)을 기원하는 것이다.
원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하츠모우데는 한 집안의 가장이 가정의 평안을 위해 12월 31일 밤부터 다음 해 1월 1일
아침에 걸쳐 그 고장의 수호신께 참배를 드리던 습관이었다. 그러다가 메이지 이후부터는 고장의 수호신이나
주변 사찰과는 관계없이 유명한 신사에 참배를 드리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이는 메이지시대(1868~1912年) 중기
때부터 정착한 습관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메이지, 이세, 우사신궁
등 유명한 신궁을 찾기도 하지만 요즈음에는 동네 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또, 첫 번 참배를 하는 신사나 절은 굳이 정해져 있지 않다. 자신이 평소 마음에 들었던 신사나 절에 가서 참배하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치고산(일본어: 七五三, しちごさん)은 일본의 전통 명절로, 남자 아이가
3살·5살, 여자 아이가 3살·7살 되는 해의 11월 15일에 아이의 무사한 성장을
신사 등에서
감사하고 축하하는 행사다.
시치고산 참배는 지금까지
무사히 자라난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하는 축제다.

어쨌든 이런 하츠모우데는 현재까지도 일본의 국민적 행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황 중인데 그게 바로
국가신토의 영향이다.
그래서 이세신궁(伊勢神宮)이나 메이지신궁(明治神宮)과 같은 저명한 신사에는 정초 사흘 동안에만 수백만 명이 참배하는 등, 매년 일본 국민의 70% 이상이 하츠모우데에 참여한다고 한다. 나아가 세츠분(節分)이라는 입춘
전날에도 사람들은 액풀이를 위해 신사참배를 한다.
이밖에 오늘날 일본에서 장례식은 통상 불교식으로 하지만, 성인식과
결혼식은 신토식으로 거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인생의 중요한 매듭을 풀어야 할 때마다 신사참배를 한다고
한다. 가령 아이가 태어나면 일정기간(통상 남아는 32일, 여아는 33일)이 지난 다음 모친과 조모가 아기를 안고 신사를 참배하여 건강한 발육과 행복을 기원한다. 이를 ‘오미야마이리(御宮參)’라 한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는 ‘7살까지는 신의 손 안에 있다’는 말이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은 아직 이 세상에 그 생명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치고산(七五三)’ 축하연 외에 성인이 된 다음 남자 25세와 42세 때, 그리고 여자 19세와 33세 때 액땜을 위해 신사를 참배하는 민속적 신토 신앙도 아직 널리 행해지고 있다. 나이 많은 일본인 가정에는 신단(神棚, 카미다나)이 설치되어 있고, 거기에는 통상 각 신사에서 배포하는 오후다(御札)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오후다의 정식명칭은 신푸(神府)인데
신사에서 발행하는 부적(符籍)을 말한다, 오마모리(御守)는
휴대용 오후다 이다. 몸에 걸거나 가죽가방, 휴대폰, 차안 등에 걸어놓는다. 각자 자신에 필요한 오후다를 사서 몸에 지니거나
혹은 집안의 신단에 안치하거나 문 입구나 기둥에 붙여 놓기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