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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라(겔 47:1-12)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지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암울한 시대에 포로중 한 사람인 에스겔선지자가 바벨론의 그발강가에서 민족의 앞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 성전의 동쪽 바깥문 밑으로 흘러나와 점점 깊어지면서 계속 동쪽으로 흘러 황무지인 아라바골짜기를 거쳐 죽음의 바다인 사해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물이 가는 곳마다 살려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황무지가 옥토로 바뀌고 죽음의 바다인 사해까지 살아나 물고기가 뛰어노는 생명력이 넘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는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죽은 것을 살리는 생명수라는 것을 증거하여 줍니다. 이 생명수는 흘러가는 곳마다 옥토로 만들어 각종 과일나무를 자라게 하며 그 잎이 시들지 않게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달마다 새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는 우리가 읽기만 해도 소망스런 환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오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가 예수를 믿는 우리 심령속에 흐르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림으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사해 골짜기와 같은 이 세상을 향하여 생명수를 흘려보냄으로 이 세상을 소생케 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속에 생수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수가 나를 통해 이웃에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생수가 닿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거기에 소망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교회가 생수의 강이 되어 세상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겠습니까?
1. 성전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는 무엇입니까?(1-2)
(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실 은혜의 보혈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나라의 계시를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1,2절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및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강이 흐르는 곳에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고 열두 가지 실과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생시키는 약재로 쓰이더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보혈이 흘러 죄악에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함을 얻고 용서함을 얻고 생명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며 하신 약속입니다. 내가 가면 너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성령강림이 오순절 강림사건입니다. 이 땅에 성령께서 오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가운데서 새로운 회복과 치유의 삶을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서 보혈의 강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성령의 강이 이 땅에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앞에 나아와 보혈을 마셔야 된다고 합니다. 예수의 보혈로 내 몸을 덮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혈로 내 모든 죄를 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보혈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 대속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그 성령의 역사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넘쳐흐를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절망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참 생명을 줄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통해 생수의 강을 흐르면 그 순간부터 메마른 삶이 아닙니다. 절망적인 삶이 아닙니다. 낙심에 빠진 삶이 아닙니다. 사막과 같은 삶이 아닙니다. 풍성한 오아시스와 같은 삶으로 변화됩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보혜사 성령으로 하여금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해주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참석한 저와 여러분도 우리안에 있는 생수의 강이 흐르는 역사가 일어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생수의 강은 흘러갈수록 더 깊어졌습니다(3-5).
본문을 보면 성소로 들어가는 문에서 시작하여 바깥 동문 밑으로 스며 나온 물은 계속 동쪽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물은 흐를수록 그 깊이가 점점 더하여 가며 강이 되었습니다. 이는 천사가 손에 줄자를 가지고 물줄기를 척량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사는 일천 척씩 척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척은 다른 말로 규빗입니다. 1규빗은 손끝에서 팔굽치까지인데 이것이 대략 50cm입니다. 그러니까 1천척이면 약 500m 되는 것입니다.
1천척씩 나아가서 재는 데 처음에는 그 깊이가 발목에 오르는 정도였고(3절), 그 다음은 무릎에 오르는 정도였으며(4절), 세 번째는 허리에 오르고(4절), 마지막에는 헤엄쳐야 할 정도의 수심이었습니다(5절).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이 강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은혜를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령의 은혜는 갈수록 더하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받은 자는 이 은혜의 강물을 따라, 성령이 인도하심을 따라 계속해서 동쪽으로 해뜨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품고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비전은 가슴에 품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그일을 이루기 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내안에 있는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롳 축원합니다. 이 생수의 강이 흐를수록 점점 깊어지는 은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1)발목의 은혜- 여러분, 3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주의 전에 출입하는 은혜, 사모하여 성전에 출입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롬 10:15에서 "복음을 들고 산과 강을 넘는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는 성전을 모이기를 힘씁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행 2:46)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그러므로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자주 모이는 것입니다. 교회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대충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일주일에 한번정도 교회를 드나들었다면 이제는 주일오후예배에도 참석하고 주일오후예배 참석하시던 분들은 수요일까지 참석하고 이처럼 영적인 성숙은 자주 교회당을 밟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를 처음 등록하면서부터 새벽기도를 나오십니다. 1년만 다니면 주일날 6-7년을 다닌 사람과 비슷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속에 진정한 은혜가 깊어가기를 원하시는 성도,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생활이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예배생활이 회복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무릎의 은혜- 여러분, 4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일천척을 나아갔는 데 발목에 오르던 물이 이제는 무릎까지 물이 찼다는 겁니다. 강물이 더 깊어졌습니다. 신앙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깊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 봉사를 할지라도 신앙이 깊어져야 영적권세가 생깁니다.
영적권세는 시간이 가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행함이 있어야 확신과 함께 영적권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릎의 은혜는 기도생활을 의미합니다. 무릎의 은혜를 체험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자기를 내려놓고 인간의 한계 상황을 깨닫고 하나님께 무릎꿇는 신앙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이 말을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시킬 때 지금까지는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앞에 무릎을 꿇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결단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가장 열심히 해야 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단계입니다. 열심히 예배에 출석하던 사람이 점점 더 은혜를 받더니 기도에 열심하기 시작합니다. 기도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기도가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혼자 저녁시간에도 나와서 지하예배실에서 기도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은혜와 기도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은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속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잠8:17 "나를 간절히 찾는 자는 나를 만날 것이니라"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라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무릎의 은혜를 받아서 그 주신 열심으로 간절히 구함으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받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우리가 신앙의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허리의 은혜- 4절 하반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라고 했습니다. 허리의 은혜란 힘써 충성하는 단계입니다. 허리는 힘을 쓰는 곳입니다. 아무리 힘이 강한 운동선수라도 허리를 다치면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단계에서 이제는 주님말씀을 따라 순종하므로 한 단계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처럼 섬기는 단계입니다. 이전에는 섬김을 받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섬기고 싶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바로 섬김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나를 희생하면서 이웃을 살리고 이웃을 세우는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영적 기쁨을 얻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긴 달란트, 직책이 무엇입니까?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그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 또 일상생활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상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크든 작든 주님을 위해 충성하며 섬김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헤엄치는 은혜- 5절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했습니다. 이제 물이 점점 깊어져서 온 몸이 잠기게 되니 헤엄치게 되었습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입니다. 이 큰 은혜는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깊은 은혜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강에서 헤엄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여기를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 저기를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니 절로 감사의 찬양이 나올 수 밖에 더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넘칩니다. 넘치는 은혜로 인해서 우리는 먼저 감사합니다. 그리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온몸을 적십니다. 발과 발목, 무릎, 가슴, 머리까지 전인적으로 주님의 은혜의 강물에 젖어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는 곳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6-10).
(8,9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되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치료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사해바다로 물이 흘러가는데 그 물이 사해로 흘러가니까 그 사해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사해는 염해입니다. 소금 바다입니다. 소금의 염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리상으로 보면 사해는 해수면이 해발 약 400m나 낮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유입된 물을 다른 곳으로 내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에는 염류들이 많이 녹아 있게 되고 그 물이 왕성하게 증발하면서 물의 염도는 극도로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사해가 죽음의 바다가 된 것은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낼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 (11절)에도 그런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진펄과 개펄은 사해 주변에 산재하여 있는 진흙 구덩이들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우기에 물이 고인 후에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니까 곧 수분이 증발하게 되면서 염분만이 남게 된 상태입니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마침내 아무런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흘러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흘러보내지 않고 내 안에 가두어 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넘치는 바다에서 죽음을 웅덩이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깊이 체험하면서 풍성한 은혜 가운데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치 못하고 더 깊은 데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 흘러보내지 못하면 결국 진펄과 개펄처럼 죽은 웅덩이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기 사해보다는 아주 작은 호수가 하나있습니다. 그런데 이 호수는 여기저기서 받아서 흘러보내는 호수입니다. 바로 갈릴리 호수입니다. 그런데 이 호수는 사해와 마찬가지로 많은 염류가 포함된 물이 흘러들어오고 또 왕성하게 증발 현상도 일어나지만 사해와는 달리 염도가 거의 없는 완전한 민물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호수에는 생명력이 넘칩니다. 왜 갈릴리 호수와 사해는 같은 물을 공급받고 같은 지역에 위치하여 같은 자연적 조건하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렀겠습니까?
그것은 갈릴리 호수는 위로 받아들인 물을 아래로 내보내는 반면 사해는 받아들이기만 할 뿐 전혀 내보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무엇이든 받아 들이기만 하고 베풀 줄을 모르는 것, 나눌 줄을 모르는 것은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큰 문제가 됩니다. 들어가면 반드시 나와야 정상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먹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병이 생길 겁니다.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배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만하고 받은 은혜를 나누지 않으면 영적으로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심각할 경우 영적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또한 나누어야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으면 자기에게도 해롭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지만 받아들인 것을 또한 나누게 되면 자기에게도 유익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그런즉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또한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사해와 같은 인생이 아니라 갈릴리 호수와 같은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생수의 강물이 흘러가니까 죽었던 사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치유받는 것입니다. 그곳에 어마어마한 물고기 때가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어부들이 배를 타고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강변에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치유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마다 영혼이 치유 받고 심령이 치유 받고 육신이 치료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4장 2절에 보면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라고 했습니다.
(출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으니”라고 마태복음 8장 1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입니다.
성전문에서 흐르기 시작한 생명수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사해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이 닿는 곳마다 살아났습니다. 적막하던 그곳에 생물이 살아나고 또 물고기가 심히 많아졌습니다. 사막과 같이 죽은 땅에 생명수가 들어가자 옥토가 되었으며, 죽음의 바다 사해는 풍요로운 생명의 바다로 변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흘러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죽음의 바다와 같은 곳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의롭게 보일려고 해도 인간은 스스로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교회는 거룩한 곳이니까 우리는 우리끼리만 잘 지내자 하는 것은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지만 우리의 삶의 현장은 저 세상입니다. 저 세상속에 우리의 사역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교지가 있습니다. 빛은 빛가운데 있으면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빛이라도 어둠속에 있으면 밝게 드러납니다. 희망을 던져주고 따뜻함을 던져줍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해줍니다.
이것이 빛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할 곳은 교회안 만이 아니라 교회 밖입니다. 교회밖에 할 일 있습니다. 12절.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생명수가 흐르는 좌우강변에는 각종 과일나무의 실과가 자랐습니다. 생명수로 인하여 그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실과를 맺었습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죄를 범하여 타락하기 이전에 살던 에덴동산과 같고 장차 성도가 들어가 살게 될 새 예루살렘과도 같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도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발원하여 길 가운데로 흐르며, 그 좌우에 생명나무와 열두 가지 실과를 맺게 하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게 하며 그 나무 잎사귀는 만국을 소생케 합니다(계 22:1,2). 본문에도 달마다 맺히는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병든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는 육적 기갈과 질병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측면까지도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는 여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찢기고 상처입은 영혼의 아픔을 치유하는 잎사귀를 내며 그들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영적 실과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바로 알고 바로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받기만 하고 흘러보내지 못하는 사해바다가 아니라 갈릴리 바다처럼 흘러보냄으로 생수의 강의 사명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수의 강이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에 푹 젖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발목의 은혜, 무릎으로 기도하는 은혜, 허리로 섬김을 실천하는 은혜. 그래서 병든 사람, 어둔 세상을 살리는 고치는 이 귀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는 성도, 주님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