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 여인은 누구실까?”] 묵시록의 여인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 레지오 단원들에게 참으로 친숙한 까떼나의 첫 구절입니다. 이 기도문은 특별히 요한 묵시록 12장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성찰하고 있습니다.
묵시록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묵시 12,1)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묵시 12,2)고, “아들을 낳았”으며, “그 사내아이는 …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묵시 12,5)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어머니인 겁니다.
뒤이어 여인에게 맞서는 자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그는 “크고 붉은 용”(묵시 12,3),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묵시 12,9)입니다. 창세기 3장, 하와를 유혹하여 죄짓게 한 바로 그 뱀을 말하는 겁니다. 주 하느님께서 유혹자 뱀에게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여인에게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신비를 통해 악을 이겨내시며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묵시록은 구원 사건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여인과 용의 투쟁을 이야기합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묵시 12,4) 얼마나 무서운 장면입니까? 아이를 삼키려는 그 증오심, 악은 증오 자체입니다. 여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용은 그를 삼키지 못했고, 여인의 아들은 하느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윽고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천사들이 용에 맞서 싸웠고, 용과 그의 부하들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늘에는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묵시 12,10)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으로 악은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그렇다고 악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땅으로 떨어진 겁니다. “용은 자기가 땅으로 떨어진 것을 알고, 그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쫓아갔습니다.”(묵시 12,3) 여인은 그 뱀을 피해 광야로 날아가 하느님의 보호하심에 의지합니다. 뱀은 여인을 휩쓸어 버리려 했지만 여인은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묵시록의 여인은 메시아의 어머니 또는 교회를 말해
영적 투쟁입니다. 주님을 굳게 믿으며 광야를 순례하는 여인은 ‘교회’의 표상입니다. 교회는 환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믿고 바라며 악을 이겨내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묵시록의 여인은 메시아의 어머니를 말하기도 하고 교회를 말하기도 합니다.
요한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니를 “여인”이라고 부르시는 장면이 두 번 나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여인”이라 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호세아 예언자 이래 성경은 계약의 신비를 혼인 관계로 여겼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신부처럼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여인’으로 여겨졌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혼인 계약처럼 간주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인’이라 하신 것은 당신 어머니를 새 계약에 충실히 응답하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시나이 계약이 체결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탈출 19,8; 24,3.7)하고 세 번씩이나 답변하며 결의해야 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 역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하고 권고하며, 모든 이가 하느님 아드님께 전적인 순종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마리아는 새로운 계약에 사랑으로 응답한 여인, 하느님께 충실한 거룩한 백성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며 ‘여인’이라 하신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새 계약이 맺어지는 순간, 마리아는 하느님께 믿음과 사랑을 드리고 당신 아드님과 마음으로 일치하여 사랑의 새 계약을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는 계약의 여인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악의 위협과 죄를 이겨내도록 우리를 돌보아 주셔
십자가 곁에 묵묵히 서 있던 마리아는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 공동체에 영적인 모성을 전할 새로운 사명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이, 은총이 가득한 이, 믿음과 사랑의 응답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이는 하느님에게서 받는 생명과 사랑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습니다. 여인 마리아는 하느님의 생명을 이웃과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받으며 우리 모두를 위한 영적인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태양을 입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하기에 하느님의 영광을 옷처럼 입은 겁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발밑에 달을 두고” 있습니다. 시간을 측정하는 빛 물체인 달 위에 서서 온 세상이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도록 북돋우시는 겁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대표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우리 또한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악의 위협과 죄를 이겨내도록 우리를 돌보아 줍니다. 까떼나는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하고 기도하며 이 모습을 그려냅니다. 악은 교회를 끊임없이 위협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능력만 믿고 살면 하와처럼 금방 유혹에 빠질 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고 어머니와 함께 하느님께 의탁한다면, 악의 속임수와 위협을 모두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선포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이사 61,10)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주님을 믿고 바랄 때 우리도 같은 영적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 사랑의 완성이 용서인 이유
한국인의 화와 화병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을 보며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평소 길거리에서 만나는 한국인 중에는 화난 얼굴을 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길거리를 오가다 보면 화난 것처럼 보이는 얼굴을 한 사람이 자주 보이기에, 그런 말이 이해됩니다. 왜 한국인은 늘 화가 난 것처럼 보일까요?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화가 난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늘 빨리빨리 뭔가 해치워야 하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내가 먼저 참으면 손해를 보거나 바보처럼 취급받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남들보다 먼저 화를 내지 않으면 내가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착각이 무의식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 화가 난 사람이 많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화병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화병’(火病)'은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한스러운 일을 겪으며 쌓인 화를 삭이지 못해 생긴 몸과 마음의 질병입니다. 즉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해서 생긴 병입니다.
이처럼 화가 많은데, 정작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참 이해하기 쉽지 않고, 여러모로 바람직한 상태도 아닙니다. 평소 화가 나는 이유와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게 되고, 그래서 누군가 미워하게 되며, 결국엔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해서 화가 나고,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해서 화병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화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입니다. 즉 자신에 대한 용서와 타인을 향한 용서입니다. 하지만 용서의 실천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
용서는 누구에게나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용서의 필요성과 동시에 어려움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당시 유대교 율법은 3번 용서의 의무를 강조했으나, 베드로는 이를 넘어 자랑스럽게(?) 7번의 용서를 제시했지만, 예수님은 놀랍게도 77번, 즉 ‘완전한 용서’를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용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나 잘 압니다. 특히 큰 상처를 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이전에 참된 용서를 실천해 본 사람은 잘 압니다. 내게 상처 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거나 혹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은 나만큼 힘들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억울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서로를 미워하는 두 염소가 있었는데, 이 둘은 서로가 너무나 미워서 가장 뜨거운 여름엔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상대를 철저히 괴롭히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추운 겨울엔 서로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려 멀리 떨어져 살다가 결국 각각 얼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를 죽게 합니다. 그리고 용서할 때 우리는 모두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용서가 필요하고 중요하며 가장 큰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용서를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원망이란 내가 독을 마시는 것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원망이란 내가 독을 마시고 상대방이 죽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워하기는 쉽지만 용서하기는 참 힘듭니다. 용서하는 것이 때로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용서란 내 마음에서 독을 빼내는 수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가 근본적으로 상대방이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토록 어려운 용서를 실천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은 더 클 것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루카 11,4)라는 기도처럼,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5)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용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물론 아직 용서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데 용서에 대한 강박이 심해서 준비되지 않은 채 용서한다면 이는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기 위해 너무 서두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합니다. 용서받아야 할 상대방의 뻔뻔한 태도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보게 됩니다. 용서는 충분한 준비가 됐을 때 해야 합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주님의 기도처럼,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는 언제나 기도와 참된 회개를 전제합니다. 용서하기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참된 회개는 우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모든 인간의 죄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함께하심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회개의 출발점이고, 신앙의 시작점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깊게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것을 봉헌하고, 더 큰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저는 믿나이다] (41) 성 유스티노
그리스도교 윤리·보편성 설파한 호교 교부 유스티노
사도 교부 시대가 끝나고 2세기 중반부터 ‘호교 교부들’(Patres Apologetae)이 등장합니다. 당시 복음 선포와 선교를 통해 로마 제국 여러 지역으로 확산한 그리스도교는 다양한 계층의 견제 대상이 되고, 박해도 심화됐습니다. 그 시절 로마 제국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근친상간하고,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소문이 파다했지요. 호교 교부들은 박해자들 특히 로마 제국 안에 퍼진 그리스도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그리스도인들의 결백을 제시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윤리 도덕적 삶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호교 교부들의 첫째 임무는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다신교 사회인 로마 제국 안에서 유일하신 하느님을 증거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호교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근거로 다신교의 우상 숭배를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호교 교부들의 둘째 임무는 그리스도교 교의를 체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당시 헬레니즘 철학자를 비롯한 지성인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저술을 통해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호교 교부들 대부분은 철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교부들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투박하지만, 이론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하면서 신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제일 잘 아는 철학 지식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가 아닌 ‘철학의 그리스도교화’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호교 교부의 대표 인물이 성 유스티노(100?~165년)입니다. 130년께 에페소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로고스’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힘인 로고스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안에 세상을 위한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드러나고 육화되신 로고스는 모든 실재와 그 이전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게 해주는 원리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곧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는 창조·구원·종말에 이르기까지 전 구세사에 함께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로고스를 우주론적 원리이며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그는 후대 로고스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았습니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29쪽 참조)
더불어 그는 자신의 그리스도론을 증명하기 위해 창세기와 예언서 등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수난과 부활을 미리 알렸다며 그 예형들을 찾아 풀이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르는 신약이야말로 구약의 완성이며, 구약보다 우월하다고 합니다.
유스티노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가르침과 예식의 우월성을 강조해,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며 하느님의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제시해 그리스도교를 선대 역사의 계승자이며 앞으로 오게 될 역사를 비추는 종교로 제시합니다.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유다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배웠으며, 그분을 제2위에, 예언하시는 성령을 제3위로 모시면서 합당하게 공경한다는 것을 우리는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세상의 창조주 하느님 다음 제2위에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인간을 놓는다고 거듭 말하면서 우리가 어리석다고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신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며, 성년에 이르러, 모든 질병과 질환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이며, 그분이 미움을 받고 오해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시며,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갈 것이고,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려지며, 이 메시지를 전하는 몇몇 사람들이 그로부터 모든 민족에게 파견될 것이고, 이방 민족의 사람들이 그를 더 믿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이 예언자들의 책에 미리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육화하시어 우리 구원을 위하여 살과 피를 취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자신의 말씀이 담긴 기도로 축성되고 또한 우리의 피와 살에 자양분이 되어 주는 그 음식은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배웠습니다.”(유스티노, 「첫째 호교론」 중에서, 안소근 역)
두 편의 「호교론」과 「트리폰과의 대화」를 저술한 유스티노는 165년 다른 6명의 동료와 함께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