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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거두는 삶
성경본문 : 시편 126:1~6(6절) / 찬송 : 260장-새벽부터 우리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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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기쁨으로 거두는 삶(126:1-6)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 후 감격과 현실적인 절망을 극복해가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크리스천들에게 현실적인 상황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배우게 합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의 삶의 터전은 황량한 사막과 같았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생활의 조건보다도 더 열악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간직했습니다. 비록 그들의 현실적인 상황은 열악했어도 하나님께서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을 생각하니 꿈꾸는 것 같았고,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였고, 혀에는 찬양이 차고 넘쳤습니다(2절). 하나님께서 행하신 포로 귀환은 대사(大事)였으므로 온 국민적이고 공동체적인 기쁨이었습니다(3절). 이러한 기쁨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쉽게 무너지는 것은 그 문제가 커서라기보다는 내적 대처 능력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큰 내적 능력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해방 받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매를 기대하며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실제적인 모습을 5, 6절에서 노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위로와 소망이 되는 표현인지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 할 상황, 울며 씨를 뿌려야 할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삶의 터전으로 나가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묵혀진 척박한 땅을 일구어야 할 현실이었고, 씨를 뿌리는 자체가 힘든 일이었지만, 열매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들이 농사일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열매가 있기 때문이며, 직장인들이 힘든 업무를 감당하는 것은 봉급이 있기 때문이며, 학생들이 힘들게 공부하는 것은 좋은 성적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며, 복음의 사역자들이 자기부인을 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7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해줍니다. 우리는 무엇을 거둘 것인지를 생각하며 심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씨를 뿌리며 수고할 때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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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지옥은 죄의 열매 거두는 곳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분리의 장소입니다.지옥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을 의미합니다.지옥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입니다.사람들은 세상에서 고통을 받지만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지옥은 그 어떤 곳보다 가장 깊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어떤 분은 아마도 『지옥에는 문자 그대로 불이 있는 곳입니까』라고 질문할 지 모릅니다.예수님은 가장 적당한 용어로 말씀하시기를 「불붙은 지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지옥의 고통은 영원하고 끝이없는 고통입니다.지옥에는 소망이라곤 전혀 없습니다.고통,고통,고통이 계속되지만 그것을 피할 소망이란 전혀 없는 곳입니다.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영원이란 길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백두산만한 화강암 돌산이 있는데 독수리 한마리가 백년에 한번씩 그 날개 끝으로 살짝 건드리고 가곤 하는데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지려면 몇억만년이나 걸릴까요.그러나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져도 영원에 비하면 시작밖에 안됩니다.지옥은 죄의 열매를 거두는 곳입니다.『그들이 슬피울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사람들은 죄악된 생활을 한 것에 대해서 열매를 거두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한테 이를 갈며 부르짖기를 『아버지,아버지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교회갈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예수님을 제쳐놓고 평생 살았잖아.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죄를 지으며 살다가 결국 아버지 때문에 이 지옥으로 왔어』하며 원망할 것입니다.어떤 딸은 어머니를 향해 이를 갈며 부르짖기를 『엄마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엄마는 모든 시간을 세상만 위해 써 버렸어.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전혀 시간을 안 드렸잖아.나는 엄마의 뒤를 따르다가 엄마 때문에 이곳 까지 왔어!』하며 원망할 것입니다.
지옥은 기억나는 장소입니다.만일 여러분중에 지옥가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날 것입니다.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말을 들었던 것도 생각날 것입니다.그러나 이미 그때는 늦은 때입니다.영원히 기억하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럼 누가 지옥에 갑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하나님의 독생자를 짖밟는 죄가 제일 큰 죄입니다.혹시 『나는 술도 안마셨고 저주 하지도 않았고 간음죄도 안지었어』할는지 모릅니다.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기를 거절했다면 바로 지옥갈 죄인입니다.『나는 세상에서 너무 바쁘게 사느라고 예수 믿을 시간이 없었습니다』라고 핑계댈지 모르지만 죽음의 시간은 올 것이고 구원의 유일한 길을 거절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김홍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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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시인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감격을 어떻게 표현하였으며(1~3절), 아직 남아 있는 포로들을 위한 기도가 어떠합니까(4절)?
2. 포로귀환 후 새 출발을 위한 각오와 확신이 어떠합니까(5, 6절)?
3. 당신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며, 어떤 열매를 위하여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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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
나를 홀로 그대로 두시면 흙 한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나의 마음에 믿음으로 씨를 뿌리사 열매 맺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시고 변화되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을 맺게 하소서
나를 홀로 두시면 미련한 모순 덩어리 우둔함에 불과하오니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시사
지혜롭게 하여 주소서
불같은 열정으로 주님 앞에 바로 서서 최선을 다하여
최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로 나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맛보게 하시고 새로운 삶을 허락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비록 삶의 현장이 척박하고 힘들어도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을 기대하며
씨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용 해 원 -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진정한 광복 : 허태성 목사
(시 126:1-6)
이번 금요일에 우리는 광복 63주년 건국 60주년을 맞이한다.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일제로부터의 민족 해방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격정적이며 직설적으로 노래한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 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이어질 듯하거든 /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시를 쓴 시인 심훈은 그러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6년 9월 16일에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마 시인은 조국의 광복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말 그런 날이 실제로 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죽어 갔을지도 모른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한 시인의 기쁨이 시로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고 말한다. 흘러간 노래에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라는 표현이 있다. 아마도 북에 고향을 두고 남하한 분들은 그 느낌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분들이 있다. '귀국선'이라는 노래 가사에 그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그렸던가 태극 깃발을...'
그 해방의 기쁨을 시편 기자는 "그 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찾었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열방도 그렇게 고백했고 이스라엘도 고백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이스라엘에게 해방의 기쁨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해방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전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제의 통치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지 며칠 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대사를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감사드리자.
그러나 시편 기자의 기쁨은 곧 간절한 기도로 바뀐다. 왜냐하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포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 아직도 포로로 잡혀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저 북한 땅에 있는 동포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북한 땅에 남아있는 동포들의 현실은 어느 시대보다도 가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인 자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을 연장할 기초적인 식량마저도 절대 부족한 형편이다.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끼니는 해결해야 해방의 날을 볼 터인데 그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크로싱'을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은 꼭 보시기를 권한다. 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폐쇄된 북한 내부를 보지 못하기에 마음도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해 놓고도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북한 정권과 어떤 회담을 한들 통일과 해방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시편기자는 해방이 자기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동포들이 저 억압된 정권으로부터 풀려나는 길은 우리의 힘이나 지혜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셨던 것처럼 북한 동포들을 해방시켜 주셔야 한다. 이 시인에게는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나만 잘살고 잘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오늘날처럼 팽배했던 때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을 위한 간절한 소원이 있는가? 자신이 먹는 소고기는 30개월이 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때문에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소고기는 고사하고 쥐라도 잡아먹고자 해도 먹지 못하는 북한의 동족들을 위하여 촛불을 켜고 간절히 기도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 시위를 하느라고 입힌 손실이 수백, 수천 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무엇이 정말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인가? 시편 기자처럼 눈물을 흘리며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한다. 울면서 기도의 씨를 뿌리러 나아가야 한다. 아직도 자유의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포로로 잡혀있는 자들을 위해서 울어야 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찌 북한 동포들만 포로로 잡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육신으로는 포로가 아니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사탄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육신은 밝으나 영은 어둡고 육신은 부하나 영은 헐벗었고 육신은 건강하나 영은 병들어 죽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또 하나의 해방이요 광복인 것이다. 이 일도 역시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이다. 하나님이 하셔야 된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진정한 광복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선물이다. 북한 동포들에게 이 선물이 임하도록 기도하자. 국내외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이 선물이 임하도록 기도하며 복음의 씨를 뿌리자.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은 일이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꿈에나 가능할 일을 하나님은 현실로 만드신다.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고 바라보자. 그리고 완전한 광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재림 때에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 종노릇할 때가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재림의 날은 완전한 광복의 날이 될 것이다. 북한 동포들에게 자유가 임하는 날과 우리가 아는 이웃들이 구원받는 날과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며 씨뿌리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