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월) 불행의 원인은 방법(謗法)에서-(3) 배경 ☞음성으로듣기☜
한편 1260년 7월 대성인님은 『입정안국론』을 쓰셨습니다. 여기에서, 일본은 염불의 사교로 인해 온 나라가 대방법이 되었기에 각종 천재지변이 일어나 민중이 괴로워하니 속히 사법을 버리고 정법에 귀의하지 않으면 일본은 곧 반드시 타국침핍과 자계반역의 두 난(難)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과연 대성인님 말씀대로 1272년 「2월 소동(騷動)」이라 불리는 호죠도키스케(北条時輔)의 반란이 일어났고 집권자였던 도키무네(時宗)는 형 도키스케(時輔)를 비롯, 나고에(名越)의 도키아키라(時章)·노리도키(教時) 형제 등 일족을 주륙(誅戮)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계반역난」의 모습 그 자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1274년 10월에는 일본 정복을 꾀하던 몽고의 대군이 이키(壱岐)·쓰시마(対馬)에 들이닥쳐 『입정안국론』의 예언 중 남은 1개의 난인 「타국침핍난」도 마침내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분에이(文永) 전쟁에서 돌연 큰 태풍으로 원나라 군함이 궤멸하여 간신히 일본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1275년 4월 다시 방문한 원(元)나라 사자를 호죠도키무네(北条時宗)가 다쓰노구치(竜口)에서 참수해 버려 몽고의 재침략은 피할 수 없는 정세가 되었습니다.
본초를 술작하신 것은 이처럼 일본 전국이 호넨(法然) · 료칸(良観)등 제종의 방법으로 인해 실로 국가 멸망의 위기에 직면해 있던 때였습니다.
첫댓글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
1260년 7월 16일, 니치렌 대성인이 가마쿠라 막부의 사실상 최고 권력자인 호조 도키요리에게 제출한 간효서(諫曉書)이다. 표제는 ‘정법(正法)을 세워 나라를 안정시키는 원리’라는 의미로, 올바른 법(사상, 철학)을 확립하는 일이야말로 평화로운 사회와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근본 길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자계반역난·타국침핍난(自界叛逆難·他國侵逼難)
약사경(藥師經)의 칠난(七難) 중〈입정안국론〉집필 당시에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두 가지 난. 자계반역난은 자기편 끼리의 다툼이나 내란 등의 난이고, 타국침핍난은 타국의 침략을 받아 일어난 난을 말한다. 니치렌 대성인은 안국론에서 사법(邪法)을 이용하여 정법을 비방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면, 이 두 난까지도 일어난다고 예언하며 경고하였다.
***호넨(法然)
1133~1212년. 호넨 보겐쿠를 말함. 천태종의 승려였으나 중국 정토종의 선도(善導)사상에 심취하여 다른 모든 수행을 배제하고 오로지 염불구칭(念佛口)을 행하는 전수염불(專修念佛)을 창시했다. 그는 대표작인《선택집》에서 법화경을 포함한 모든 경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오로지 염불을 부름으로써 왕생할 수 있다는 결코 올바르지 않는 사설(邪說)을 설했다. 호넨의 전수염불은 처음에는 섭정과 관백을 역임한 구조 가네자네를 비롯한 많은 유력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윽고 당시의 여러 종파가 반론하고 조정과 막부도 금지 명령을 내려, 1207년 호넨은 유죄에 처해졌고 호넨의 제자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 후에도 금비하는 압력을 받았지만 염불은 계속해서 넓혀졌다.
***고쿠라쿠사료칸(極樂寺良觀)
1217년(건보(建保)5년(年)) ~ 1303년(가원원년(嘉元元年)) 가마쿠라(鎌倉)시대의 진언율종(眞言律宗)의 승(僧). 이름은 닌쇼(忍性). 료칸(良觀)은 자호(字號). 야마토지방(大和地方)(나라현(奈良縣))시키군(磯城郡)의 출신. 10세때 시기산(信貴山)에 입산수도(入山修道)하고, 24세 때 에이손(叡尊)에 사사(師事)하여 수계(受戒), 남도계율부흥(南都戒律復興)에 진력(盡力)했다. 1252년(건장(建長)4년(年))에 간토(關東)로 내려가, 1261년 홍장원년(弘長元年) 가마쿠라(鎌倉)에 들어가서 율종(律宗)을 홍교(弘敎)했다. 호죠도키요리(北條時頼)는 고센사(光泉寺)를 창건하여 료칸(良觀)을 개산(開山)으로 하고, 나가토키(長時)는 고쿠라쿠사(極樂寺)에 료칸(良觀)을 초빙해서 개산(開山)으로 했다. 그로부터, 가마쿠라(鎌倉)의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큰 세력을 확보했다. 난민구제(難民救濟), 의료시설(醫療施設)의 충실 등 사회사업에 노력했다.
또한 료칸(良觀)은 1271년(문영(文永)8년(年))에 니치렌(日蓮)대성인과 기우(祈雨)를 다투다 패하고부터, 대성인을 참언하여 사죄(死罪)에 처하려고 공작해서, 다쓰노구치법난(龍口法難), 사도유죄(佐渡流罪)를 야기시켰다. 1275년(건치원년(建治元年))에 고쿠라쿠사(極樂寺)에서 불이나 당탑(堂塔)이 전소(全燒)됐다. 대성인에게 시종 적대(敵對)하고, 대성인 문하(門下)에 온갖 박해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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