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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제5강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말씀 / 잠언 10,11장
요절 /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그 사람의 행실로 나타나고, 또 그 추구하는 바가 그 사람의 인생의 열매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잠언에 나오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권면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어 지혜롭게 사는 사람과, 여전히 자기 악한 본성을 따라 사는 미련한 사람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특히 재물과 말(언어)에 대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재물과 말에 대해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10장 2절을 보십시오.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주신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불의한 재물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일단 돈은 많이 벌고 볼 일이다’ 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습니다. 일확천금을 노려 사기를 치기도 하고 뇌물을 받기도 하고 사람을 속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일주일만 일해도 최대 5백만 원을 벌 수 있다’라는 고수익 해외 채용 광고를 내서 해외 취업의 꿈을 안고 찾아온 청년들을 감금하고 범행에 가담시켜 수백억 원을 끌어 모은 사기 일당이 잡혔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어 넓고 좋은 집과 승차감 대신 내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 쳐다본다는 최고의 하차감을 가진 자동차를 사며 인생의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때 그 재물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불의한 재물이 올무가 되어 파멸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경에도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탐냅니다. 그런데 나봇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포도원을 팔지 않겠다고 하자,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누명을 씌워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그 포도원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아버립니다. 아합 왕은 그 포도원에서 나오는 좋은 포도로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 먹게 되었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 다 멸할 것이요(왕상21:20,21)” 아합 왕이 양심을 팔아 남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불의의 재물은 시간의 간극은 있을지 몰라도 멸망을 자초합니다. 11장 1절을 보면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가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보응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좀 힘들지라도 공평한 추를 사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런 삶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또 ‘공의가 죽음에서 건진다’ 했습니다. ‘공의’는 정직하고 올바른 삶입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 자기와 가족들을 돌보고 이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그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줍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건짐 받게 됩니다.
10장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의인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또 ‘의인의 영혼’은 원문을 직역하면 ‘의인의 목구멍’입니다. 우리는 공의를 따라 의롭게만 살다 보면 굶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직하고 올바르게만 산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 줄 알아야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그의 목구멍이 굶주리지 않게 하십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필요한 재물도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이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6:26,28-30)?”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을 친히 돌봐주십니다. 반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는 악인들은 의지할 것이 없기에 많은 욕심을 냅니다. 또 악인이 욕심내는 것들은 다 악한 것들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악인들의 소망과 욕심은 이루어지지 않게 물리쳐 내치십니다.
10장 15,16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재물은 어떻게 모으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견고한 성이 됩니다. 재난이나 질병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도 물질은 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선한 일들도 실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느 정도 재물이 있어야 삶이 안정되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 행복한 것만도 아니지만 재물이 있으므로 인해 윤택함을 누리며 기쁨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라고 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물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물질이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궁핍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가난이 게으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가난이 좋은 것이니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의인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을 해서 먹을 것, 입을 것, 재물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 준비한 양식으로 자신도 먹고 가족도 먹이고 어려운 이웃과도 함께 나눕니다. 그래서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못된 간계를 꾸미고 남을 속이고 짓누르고 착취해 소득을 얻기 때문에 악인의 소득은 죄악에 빠지게 합니다. 재물에 대한 성경적 지혜는 개미처럼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해서 재물을 모아 자기와 가족들을 돌보고 어려운 이웃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자신도 윤택함을 누리고 이웃도 함께 윤택함을 누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되돌아와서 10장 4절을 보십시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무료하게 시간만 축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마음을 담지 않고 대충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은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해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열심히 성실하게 해냅니다. 그러므로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목구멍이 굶주리지 않게 하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의인의 성실과 부지런함을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겨울 우기가 지난, 여름이 추수기입니다. 여름 추수 때에 맞춰 손을 열심히 놀려서 성실하게 부지런히 자기 먹을 것을 거두어 곳간에 쌓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10:5)? 자식이 충분히 자립적인 인생을 살 준비가 된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할 것입니다. 반면, 추수 때인데도 잠만 자는 대책 없는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게으른 자식으로 인해 곡식은 들에서 썩고 과일은 땅에 떨어져 못 먹게 될 것입니다. 그의 게으름으로 인해 자기뿐만 아니라, 온 집안사람들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도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10장 26절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을 일꾼으로 쓰게 된 사람은 무슨 일을 시켜도 성실하게 하지 않고 때를 놓치는 게으름 때문에 속이 터집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은 그를 일꾼으로 쓰는 사람에게 있어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습니다. 식초는 치아를 녹여 시리고 아프게 하다가 이가 흔들리고 빠지게 합니다. 또 매운 연기를 쐐본 적이 있습니까? 연기가 눈에 들어가면 눈물이 펑펑 날 정도로 맵고 고통스럽습니다. 이처럼 게으른 사람은 고용주에게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는 존재입니다. 오늘날도 회사에서 일은 하지 않고 화장실에 짱 박혀 게임이나 코인이나 주식을 하거나 시간만 때우며 월급만 축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식초처럼, 연기처럼 고용주를 아프게 하고 눈물 나게 하며 월급이나 축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려고 하면 길이 보이고, 안 하려고 하면 핑계가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 살고자 한다면 할 일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려고 하면 많은 핑계거리, 변명거리가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부지런하게 일해서 일한 대가의 소출을 얻어 윤택한 삶, 생명력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신 복입니다. 우리가 손이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해 많은 소출을 얻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부지런히 일해 얻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쓸 수 있습니다. 또 11장 24,25절을 읽겠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어떤 사람은 자신이 고생해 번 돈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쓰고자 합니다.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그러나 과도하게 아껴도 가난하게 될 수 있습니다. 11장 28절에 보면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패망한다고 했습니다. 또 11장 30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가 사람을 얻는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6장 9절에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는데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나의 물질을 베풀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섬기면 하나님이 여러 배로 채워주십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남을 윤택하게 하면 자신도 윤택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구제하는 사람을 더욱 복주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9장 17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할 뿐만 아니라 이웃과 나누는 삶을 통해 윤택해지고 생명력 넘치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말(언어)입니다. 잠언에는 말에 관한 말씀이 몇 번쯤 나올까요? 150번 나온다고 합니다. 그만큼 말하는 것이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10장 6,11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의인의 머리에 하나님의 복이 임할까요? ‘의인의 머리에 복이 임하는 것’과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은 것’이 대조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의인의 머리에 복이 임하는 이유는 그의 말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10장 11절에서 ‘샘’은 신선하고 원기를 돋우는 생수의 원천입니다. 의인의 입은 심령이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에 힘과 용기와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의 말로 인해 상처받은 내면이 치유됩니다. 뒤틀린 마음이 바르게 됩니다. 낙심한 마음이 큰 위로를 얻고 눌린 마음이 용기를 얻어 담대해집니다. 의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인생을 사는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삶의 의욕과 소망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아나고 연약한 사람들이 강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집니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습니다. 독이 숨어있다는 말입니다. 그 독은 평소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 미움과 시기, 탐심과 이기심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마구 쏟아놓지만, 그 말들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로 인해 사람들은 상처받고 고통을 겪습니다. 낙심하게 되고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말로 인해 자신도 망하고 듣는 사람도 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회개함으로 마음의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쏘리한 마음, 사람들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에 대한 주권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에 힘써야겠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10:12)” 했습니다. 사랑은 허물이 있더라도 들추지 않고 덮어줍니다. 용서해 줍니다. 나의 추한 죄들을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 마음에 원망과 정죄와 미움의 독이 사라지고 사랑이 샘솟게 됩니다.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감사와 찬송과 용서와 생명의 말들을 하게 됩니다.
10장 8절을 보십시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살리는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는지 비결을 알려줍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지혜를 담고 있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 지혜는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알고 이 지혜를 따라 살아갈 때 생명이 길어지고 많은 열매를 맺고 삶이 윤택해지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된다고 잠언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부모나 스승이나 목자가 전해주는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지혜를 얻습니다. 얻은 지혜를 마음에 품고 사랑하며 그 지혜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입이 미련한 사람’은 마음에 지혜가 없어 어리석게 음담패설이나 떠들어 댑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의 미련한 말로 인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수치를 당합니다. 책임질 수 없는 말로 큰 곤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10장 19절을 보십시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사람은 말로 가장 많은 죄를 짓습니다. 말은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입술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수도원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 침묵입니다. 말을 절제하는 훈련입니다. 그런데 입이 미련한 사람은 말을 절제할 줄 모릅니다. 말로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다고 했습니다(10:20). ‘순은’은 용광로에서 연단 되고 정제되어 불순물이 없는 상태의 은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순은은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순은처럼 우리의 혀도 훈련 되어져 정제된 말을 해야 합니다.
10장 21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연단 되고 훈련된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합니다. ‘여러 사람을 교육한다’라는 말씀의 원문을 직역하면 ‘많은 사람을 먹인다’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양들을 먹이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이킵니다.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을 지혜의 말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의인의 입술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이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배우고 배운 말씀을 영혼들에게 가르치는 목자의 인생이 바로 이와 같은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11장 9-11절은 의인과 악인이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을 말해 줍니다. 악인은 악한 말과 독설과 지혜롭지 못한 말, 경건하지 않은 말들로 이웃을 망하게 합니다.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그가 속한 사회 공동체도 파괴합니다. 그러나 의인의 삶은 의인의 형통을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고, 의인이 받게 되는 축복으로 인해 공동체도 함께 성장 발전하게 됩니다. 의인으로 인해 공동체가 평안함과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의인은 생명의 샘물, 사랑의 샘물을 내므로 공동체 안에 생명과 사랑의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그러면 의인과 악인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10장 25,27-29절을 보십시오.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회오리바람이 인생에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악인은 사라져도 의인은 영원히 견고한 기초를 가지고 있어 날아가지 않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의인들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모든 일에 형통하지만,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라고 했습니다(시1:3,4). 악인들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흔들리고 두려워 요동하다가 중심이 없어 바람에 나는 겨처럼 날려 갑니다. 반면, 의인은 비바람과 폭풍우 앞에서도 반석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산성이 되어 올바른 행실을 하도록 지켜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고 생명을 누리며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기에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11장 30,31절을 읽겠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여러분! 의인의 열매가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그 반대의 보응은 징계와 심판과 죽음과 멸망입니다. 우리가 공의의 재물을 얻기 위해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하고 이웃과 나누는 삶을 통해 윤택한 삶, 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 사랑의 말, 지혜의 말을 통해 나와 공동체가 진흥하게 되고 즐거움과 생명이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런 의인의 열매들을 맺어가므로 하나님께도 기쁨이요, 풍성한 생명력과 기쁨이 충만한 우리네 인생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