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 모음 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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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신달자
아마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잘 됐으면,
일이 잘 됐으면, 자녀들이 잘 됐으면,
내 앞으로의 일들이 잘 됐으면...
좋아 졌으면,
안 좋아졌던 모든 것이 다 좋아 졌으면,
내 신앙이 좋아졌으면, 우리 식구들의 믿음이 좋아졌으면,
우리 교회가 날마다 부흥함으로 좋아졌으면....
육신은 건강했으면,
아픈 몸이 건강했으면, 건강한 몸은 더 건강했으면,
심령에는 은혜가 넘쳤으면,
그리하여 감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는 것이 신나고 즐겁고 행복했으면..
한 마디로 `복 있는 자`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읽었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복 있는 자`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절에 있는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헛되지 않고 하는 것에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열심히 일했더니 수고의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렸더니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했더니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또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해야 합니다.
은혜가 마르지 아니해야 합니다.
물질이 마르지 아니해야 합니다.
하는 일이 마르지 아니해야 합니다.
건강이 마르지 아니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즉 우리의 영, 육간이 날마다 강건함을 입는 자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날마다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날마다 승리하며 이기는 자 되어야 합니다.
나누어주고 꾸어주고도 남는 물질의 복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멀리는 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하고 몰려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복 있는 자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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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를 보면 동전을 찾는다
신달자
공중전화를 보면
동전을 찾는다
그냥 무심히
그 앞을 지나갈 수가 없다.
해가 진다
어두워 오는 마음에
불을 켠 듯한 이름 하나 없을까
사각의 공중전화 박스 속에서
수첩을 뒤적이지만
가을 억새가 나부끼는
빈 들판에 나는 서 있고
이런 마음을 들켜도 좋을
편안한 이름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공중전화를 보면
그래도 동전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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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신달자
네 그림자를 밟는
거리쯤에서
오래 너를 바라보고 싶다!
팔을 들어
네 속닢께 손이 닿는
그 거리쯤에서
오래 오래 서 있으면
거리도 없이
너는 내 마음에 와 닿아
아직 터지지 않는 꽃망울하나
무량하게 피어올라
나는 네 앞에서
발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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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을 부르면
신달자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에
울음을 참아 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름을 부르면
이름을 부를수록
너는 멀리 있고
내 울음은 깊어만 간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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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눈뜨는 새벽에
신달자
네가 눈뜨는 새벽
숲은 밤새 품었던 새를 날려
내 이마에
빛을 물어다 놓는다
우리 꿈을 지키던
뜰에 나무들 바람과 속삭여
내 귀에 맑은 종소리 울리니
네가 눈뜨는 시각을 내가 안다
그리고 나에게 아침이 오지
어디서 우리가 잠들더라도
너는 내 꿈의 중심에
거리도 없이 다가와서
눈뜨는 새벽의 눈물겨움
다 어루만지니
모두 태양이 뜨기 전의 일이다
네가 잠들면
나의 천국은 꿈꾸는 풀로
드러눕고
푸른 초원에 내리는
어둠의 고른 숨결로
먼데 짐승도 고요히 발걸음 죽이니
네가 잠드는 시각을 내가 안다
그리고 나에게 밤이 오지
어디서 우리가 잠들더라도
너는 내 하루의 끝에 와
심지를 내리고
내 꿈의 빗장을 먼저 열고 들어서니
나의 잠은
또 하나의 시작
모두 자정이 넘는 그 시각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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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신달자
어둠이 내리면서
나의 섬은 밝아 왔다
어둠이 내리면서 나의 꿈은
별빛으로 내리고
하루의 심지를 끈 자리에
깨어나는 섬
가장 진실된 나무 하나 자라고 있는
나의 섬에 나는 돌아와 있었다.
돌아와 있는 이 하나의 사실
눈이 찔리는 저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고 바라보는 신세계
나의 두 발은 초원 위를 걷고 있었다
꿈의 마른 잎을 따내면
안식의 꽃 한 송이 피어나고
순한 불빛이 영원처럼
섬을 둘러 왔다
돌아와 있는 이 하나의 현실
가슴 깊이 키운 새 한 마리
창공을 난다
몸 하나로
무한 공간을 받쳐 든
나의 섬
서서히 어둠이 가고
어둠 따라 섬은 떠나고
하늘로 이어진 수천의 층계도 내려앉는다
섬이 지워지고
어제와 같이 아침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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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사막
신달자
주저앉지 마라 주저앉지 마라
저기 저 사막끝
푸른 목소리가 있으리니
왼손이 오른손에게
오른손이 왼손에게
타이르고 다시 타이르는
마지막 한순간의 절대의지
발가락이 타들어가는
죽음의 전선을 건너
오직 닿아야 할 곳은
그대 두손이 잡히는 곳
떠나지 마라 떠나지 마라
내 몸의 절판이 모랫벌에 묻힌들
그대 앞에 당도하는
이 생명은 꺼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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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의 노래
신달자
우리는 무엇을 나누었는가
시간을 붙들고 얼굴을 마주하던
몇 년의 세월에도
꼭 같은 거리쯤에 서 있는
우리들 사이로
눈보라가 날린다
시대의 찬비 뿌리고 간다.
내 마흔의 혁명은
먼 바다 고도에서 울고 있고
나의 절망은 암초에 걸려
다시 허리가 꺾이니
결코 좁혀질수 없는
먼먼 거리에
떫은 바람만 머뭇거리고
이름도 없는 별 두 개가
제각기 제 빛을 거두어 들인다
그대여
사람과 사람이
어디까지 가까울 수 있느냐
친할 수 있다고 하더냐
어제도 마지막 골목에서 돌아서고
오늘은 그 좁은 골목마저 간 곳이 없구나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길 우리의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노을이 지는 거리에 서서
불 켜지는 집들을 바라볼 때
어둠은 차라리 우리들 마음에
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하는 황무지
무명 찢어지는
비명만 외치던 곳에
온화한 미소로 들어앉은 그대여
오늘은 신사동 하늘에
낮게 먹구름이 덮히고
다락방에 숨어 들어가
젖은 마음을 구름에 부치니
그대여 두어 방울 떨어지는 어깨의 비
그것은 비가 아니다
그대 옷 속을 파고드는 비
그것은 비가 아니다
호올로 내가 키우는
눈물의 눈물
심장이 뛰는 살아 있는 핏덩이
진실로 그대에게 전해야 할
미망의 잠꼬대를 들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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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하나
신달자
막 떨어진 나뭇잎 하나
밟을 수 없다
그것에도 온기 남았다면
그 스러져 가는 미량의 따스함 앞에
이마 땅에 대고 이 목숨 굽히오니
내 아버지 호올로 가시는
낯설고 무서운 저승길
내 손닿지 않는 먼 길
비오니
그 따스함 한가닥 빛이라도
될 수 있을까 몰라
울 아버지
동행길의 미등이 될 수 있을까 몰라
막 떨어진 나뭇잎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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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신달자
초등학교 때 내 희망은
교회첨탑의 높이
새로 난 시멘트 다리의 폭이었다.
그렇게 높게 그렇게 넓게…
서울 바람을 먹고
대학 시절 방학에 내려가 본
내 희망은
주머니에 넣어도 모자랄
그 높이 그 넓이였다.
지금은
다시 그 교회첨탑은 높기만 하고
다리의 폭은 넓기만 한데
거품 같은 세월은 나쁘지만 않아
탐(貪)을 버리고 진(眞)을 찾는데
손가락쯤 닳아도 아프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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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신달자
때는 새벽
1월의 시간이여 걸어 오라
문 밖에 놓인 냉수 한 그릇에
발 담그고 들어오면
포옥 삶아 깨끗한
새 수건으로
네 발 씻어 주련다
자세는 무릎을 꿇고
이마엔
송글송글 땀방울도
환히 미소 지어리니
나의 두 손은 잠시
가슴에 묻은 채 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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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꽃
신달자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
와르르 몰려
숨 넘어가듯
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철쭉들
저 집합의 무리는
그저 꽃이 아니다
우루루 몰려 몰려
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듯이
그래 좋다 한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
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
잠시 이승에 불러 모아
한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
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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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꽃 핀다
신달자
바람 부는 3월
진회색 개나리 가지들 속에서
노오란 머리 비집고 나오는
신생아들
순금의 애기부처들이
지난해 못다 준 말씀들
세상에 와르르 쏟아내고 계시다
온 몸으로 순금의 등을 켜고
거리에 순금의 자비를 내리신다
화가 잔뜩 난 사람들 여기를 봐라
하늘의 선물로 내린 빛의 아기들
세상을 순화 시키려고
거리마다 신생아실을 짓는다
절하라
거기가 어디든 모두 법당 안이다
아기부처들을 태운 황금마차가
세상의 거리를 달려간다
3월 설법으로
개나리꽃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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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신달자
찾아낼 수 없구나
문닫힌 방안에
정히 빗은 내 머리를
헝클어 놓는 이는
뼈속 깊이깊이 잠든 바람도
이밤 깨어나
마른 가지를 흔들어 댄다
우주를 돌다돌다
내 살갗 밑에서 이는 바람
오늘밤 저 폭풍은
누구의 미친 그리움인가
아 누구인가
꽁꽁 묶어 감추었던
열길 그 속마음까지 열게하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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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연인이 되기 위해
신달자
네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너의 연인이 되기 위해
오늘 나는 꽃 이름 하나를 더 왼다
달빛 잠기는 강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구를 욀때
내 눈은 더 깊어지고 그 만큼 세상을
더 안아들이면
너는 성큼 내 앞에 다가서게 될까
네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너의 연인이 되기 위해
오늘 나는 별 이름 하나를 더 왼다
바람부는 숲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내가 마음으로 노래 부르면
내 발 앞에 꿈꾸던 낙원이 열리고
그 만큼 평화로운 세상 안아들이면
너는 성큼 내 앞에 다가서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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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하여
신달자
그를 애타게 기다린 적이 있었다.
스무 살 때는 열손가락 활활 타는 불꽃 때문에
임종에 가까운 그를 기다렸고
내 나이 농익은 삼십대에는
생살을 좍 찢는 고통 때문에
나는 마술처럼 하얗게 늙고 싶었다
욕망의 잔고는 모두 반납하라
하늘의 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지면
네 네 엎드리며
있는 피는 모조리 짜 주고 싶었다
피의 속성은 뜨거운 것인지
그 캄캄한 세월 속에도
실수로 흘린 내 피는 놀랍도록 붉었었다
나의 정열을 소각하라 전소하라
말끔히 잿가루도 씻어내려라
미루지 마라
나의 항의 나의 절규는
전달이 늦었다
20년 내내 전갈을 보냈으나
이제 겨우 떠났다는 소식이 당도했다
이젠 마음을 바꾸려는
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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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에
신달자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풀이 죽어
마음으로
너의 웃음을 불러들여
길을 밝히지만
너는 너무 멀리 있구나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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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신달자
외로울 적에
마음 답답할 적에
뒷산에 올라가 마음을 벗는다
나무마다 하나씩 마음을 걸어 두고
노을을 받으며 드러눕는 그림자
돌아갈 것이 없는 빈 몸이다.
뒷산은 뒷산은 내 몸이다.
무겁게 끌어 온 신발의 진흙덩이
서리 감겨 살을 에는 하루의 바람
모두 모두 부려놓는
울먹이는 내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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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푸른 여자
신달자
바다를 건너왔지
바다에서 바다로 청남빛 갈매속살에 짓이겨지면서
그 푸른 광야를 헤엄쳐 왔지
허연 이빨 앙다문 파도가 아주 내 등에서 살고 있었어
성깔 사나운 바다였다
내 이빨 손톱 발톱을 다 바다에 풀어 주었다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단단한 것을 버리고
바다와 몸 섞지 않으면 안 된다
유순하게 물을 따르기만 했는데 팔뚝 굵어진 여자
망망대해의 질긴 심줄이 등으로 시퍼렇게 몰렸다
드디어
암벽화처럼 푸른 지도가 내 등 위에 그려지고 말았어
배 등에 세상의 바다가 다 올려져 있더군
몇 만 겹줄을 벗겨내도 꼼짝 않는 바다
바다를 건너와서도 내려지지 않았다
시퍼렇게 시퍼렇게 바다를 걷어내어
지상의 돛으로나 우뚝 세우고 싶은
내 몸에 파고 든 저 진초록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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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신달자
언제나
시작에서
길을 잃는다.
일보의 앞도
보이지 않는 길
방황하며 더듬거리며
내 마음 같은 곳을 찾아서
걸어간다.
내 마음 같은
갈래갈래 엇갈린 길
길 머리에서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으려 한다.
한올의 실도 쓰일모 없는
퇴색한 천연색 실오리를
나는 정결히 고르고 섰다.
동행도 없는
밤의 숲
머리카락 곤두서는
아득한 무섬증
가도가도
그 자리
엉거주춤 서성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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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사
신달자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도
후 하고 입김만 불어도
두려운 명령처럼 잎을 접는 미모사
열세 살 적 민감한 반응을 네게서 본다
햇살이 닿아도 어둠이 닿아도
주르르 피가 아래로 몰려
흔들리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에
그는 잘 길들여져
상처받지 않으려는 운명적 순응이
열세 살 순수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오늘
너의 순종은 굴종으로 보인다
작은 외압에도 몸 사리며
돌돌돌 몸을 접어 엎드리는
너의 연약함에 분통이 터진다
칼이 닿아도 당당히 잎을 펴는
뎅겅 목이 달아나도 좌악 가슴을 펴는
시대적 고집이 너는 아쉽다
쯧쯧 혀를 차다가 그렇지 그래
누군가를 닮아서 더 화가 저미는
멍청하게만 보이는
딱한 미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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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애인
신달자
나에게는 백치애인이 있다
그 바보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별볼일 없이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날까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 서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다방에서 다방 문이 열릴때마다
불길같은 애수의 눈물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또는 시장 속에서 행여 어떤 곳에서도
네가 나타날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서
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
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는
아무것도 볼수없는 장님이며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며
한 마디도 하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다
바보애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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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신달자
선물을 싼 줄은
절대로 가위로
싹둑 자르지 마라
고를 찾아
서서히 손끝을 떨며
풀어내야지
온몸이 끌려가는
집중력으로
그 가슴을 열어가면
따뜻한 줄 하나
언 땅 밑에서
조용조용 끌려 나오려니
우주의 하체가 손끝에
움찔 닿으리
곧 선물의 정체가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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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금기사항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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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신달자
가내(家內)
붙일 곳 없는
마음.
흔들리는 물속에
옷을 담그다.
비누를 풀면
안개 자욱한 역두(驛頭)에서
손이 시린 여자(女子)
옷을 주무르면
쓸쓸한 해로(偕老)에
잠겨있는 문(門)이 보인다.
방망이를 두드린다.
출렁이는 물속에
가셔지는 때
가셔지지 않는 때를
비벼 문지르면
조금씩 열리는 문(門)
물에 헹구면
다시 닫혀진다.
물을 짠다.
꼬우며 물을 빼는
불타는 인내(忍耐)
십자가를 지듯
태양(太陽) 아래 몸을 말리는
옷속으로
돌아오는 여자(女子)
빨래줄에 걸쳐진
그녀의 방황(彷徨)은
증발(蒸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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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찾기
신달자
둘러봐도 늘 없다
너무 가까이 내 안에 있음일까
이 우주안에 너 살고 있음
나 분명 알아
내가 알고있는 가장 높은 지식
너 찾다 눈감는 일
가장 아름다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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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찾기
신달자
둘러봐도 늘 없다
너무 가까이 내 안에 있음일까
이 우주안에 너 살고 있음
나 분명 알아
내가 알고있는 가장 높은 지식
너 찾다 눈감는 일
가장 아름다운 길
★☆★☆★☆★☆★☆★☆★☆★☆★☆★☆
손톱
신달자
한번쯤은 할켜서 앙칼진 여자의
성껄머리 보여 주고 싶었다.
가라 가라 몸 안에서 떠 밀려
드디어 손 끝에 다달아
세상 앞에 드러난
세상을 향한 나의 저항
그러나 체질적으로
저항은 조금만 길어도 불편해
가위를 들여 대 잘라 버린다.
그것도 잘 다듬으면
날카로운 펜촉으로 도약
몸 안에 오래 고인 진한 울화 배어나
이 세상 어느 벽보판에 붉은 글씨 하나
남길 수 있거나
중심없이 흔들리는 세상을 겨냥한
화살촉으로 키워도 좋으련만
시원하게 입 한 번 떼지 못하고
묵묵히 고요히 목이 잘린다.
콕 찍어 피 한 번 내지 못하고
으윽하고 소리 한 번 치지 못한 채
유순한 침묵으로 굳어 잘리고 마는
그러나 미지의 세상을 향해
멈추지 않고 자라나는
여자의 숨은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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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신달자
슬픔을 가지고 논다.
분칠을 벗긴 슬픔
마알갛게 씻은
슬픔은 예쁘다.
다정한 슬픔
소리없는 슬픔
빈 주머니 속에서도
만지작거리며 가지고 노는 슬픔
양식보다 더 풍성히 쌓여
슬픔은 부족하지 아니하다.
나는 슬픔에게 교태를 부린다.
슬픔은 나를 기르며 지배한다.
늙지도 않고
새로운 힘으로 태어나는 슬픔
눈물도 아닌
철망도 아닌
치욕도 아닌
오늘 슬픔은 예쁘다
슬픔을 갖고 놀며
슬픔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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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사막
신달자
주저앉지 마라 주저앉지 마라
저기 저 사막끝
푸른 목소리가 있으리니
왼손이 오른손에게
오른손이 왼손에게
타이르고 다시 타이르는
마지막 한순간의 절대의지
발가락이 타들어가는
죽음의 전선을 건너
오직 닿아야 할 곳은
그대 두손이 잡히는 곳
떠나지 마라 떠나지 마라
내 몸의 절판이 모랫벌에 묻힌들
그대 앞에 당도하는
이 생명은 꺼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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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말하는 사이
신달자
너와 나의 깊은 왕래를 말로 해왔다
오래 말 주고받았지만
아직 목이 마르고
오늘도 우리의 말은 지붕을 지나 바다를 지나
바람 속을 오가며 진행 중이다
종일 말 주고 준 만큼 더 말을 받는다
말과 말이 섞여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때때로 계절 없이 눈 내리기도 한다
말로 살림을 차린 우리
말로 고층 집을 지은 우리
말로 예닐곱 아이를 낳은 우리
그럼에도 우리 사이 왠지 너무 가볍고 헐렁하다
가슴에선 가끔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말할수록 간절한 것들
뭉쳐 돌이 되어 서로 부딪친다
돌밭 넓다
살은 달아나고 뼈는 우두둑 일어서는
우리들의 고단한 대화
허방을 꽉 메우는 진정한 말의
비밀 번호를 우리는 서로 모른다
진정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은폐의 늪 그 위에
침묵의 연꽃 개화를 볼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만 피게 할 수 있을까
단 한마디의 독을 마시고
나란히 누울 수 있을까
★☆★☆★☆★☆★☆★☆★☆★☆★☆★☆
커피를 마시며
신달자
견디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신다.
남보기에라도
수평을 지키게 보이려고
지금도 나는
다섯번째
커피 잔을 든다.
실은
안으로
수평은커녕
몇번의 붕괴가
살갗을 찢었지만
남 보이는 일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해서
배가 아픈데
아픈데
깡소주를
들이키는 심정으로
아니
사약(死藥)처럼
커피를 마신다.
★☆★☆★☆★☆★☆★☆★☆★☆★☆★☆
허수아비 1
신달자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세월 견뎌왔느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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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가
신달자
사랑하느냐고
한마디 던져 놓고
천길 벼랑을 기어오른다
오르면 오를수록
높아지는
아스라한 절벽 그 끝에
너의 응답이 숨어 핀다는
꽃, 그 황홀을 찾아
목숨을 주어야
손이 닿는다는
그 도도한 성역
나 오로지 번뜩이는
소멸의 집중으로
다가가려 하네
육신을 풀어 풀어
한 올 회오리로 솟아올라
하늘도 아찔하여 눈감아버리는
캄캄한 순간
나 시퍼렇게 살아나는
눈맞춤으로
그 꽃을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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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신달자
속이 비었나봐
화장이 진해지는 오늘이다.
결국은 지워 버릴 속기(俗氣)이지만
마음이 비어서 흔들리는
가장 낮은 곳에 누운 바람이
붉은 연지로
꽃이 핀다
아이섀도의 파아란
물새로 날아 오른다
안으로 안으로 삭이고만 살던
여자의 분냄새
여자의 살냄새
대문 밖을 철철 흘러나가
삽시간 온 마을 소문의 홍수로
잠길지라도
진해버려
진해버려
쥐 잡아 먹은 듯
그 입술에 불을 놓아 버려
결국은
색과 향이 있는
대담한 사생활은
그저 이것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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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마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잘 됐으면,
일이 잘 됐으면, 자녀들이 잘 됐으면,
내 앞으로의 일들이 잘 됐으면...
좋아 졌으면,
안 좋아졌던 모든 것이 다 좋아 졌으면,
내 신앙이 좋아졌으면, 우리 식구들의 믿음이 좋아졌으면,
우리 교회가 날마다 부흥함으로 좋아졌으면....
육신은 건강했으면,
아픈 몸이 건강했으면, 건강한 몸은 더 건강했으면,
심령에는 은혜가 넘쳤으면,
그리하여 감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는 것이 신나고 즐겁고 행복했으면..
한 마디로 `복 있는 자`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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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님의
좋은시
향기에 젖어보네요
진해버려
진해버려
쥐 잡아 먹은 듯
그 입술에 불을 놓아 버려
결국은
색과 향이 있는
대담한 사생활은
그저 이것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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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시향에
매료되어
봅니다
시이님 덕분에
좋은 시
즐감했어요
이호정님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으로 꽉 채우는 주말 되세요.
공중전화를 보면 동전을 찾는다
신달자
공중전화를 보면
동전을 찾는다
그냥 무심히
그 앞을 지나갈 수가 없다.
해가 진다
어두워 오는 마음에
불을 켠 듯한 이름 하나 없을까
공중전화 앞서
기다리던
일도 한참 전이네요 ㅎ
신달자 시인님의
좋은글
즐탐독입니다
향기를 내뿜고 있는 수많은 봄꽃처럼
정미화님 함께하시는 분들에게
향기로운 사랑 나누어 드리는 주말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