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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인생 명품신앙
(베드로전서 2 장 )
성경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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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예수님께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된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소망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죄에서 건져주실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죄에서 건짐 받는 것이야 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보다 더 큰 은혜임을 아는 것이 새롭게 된 마음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할 수 없이 진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에
마음이 끌리고 그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성령에 의해 마음이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세상이 소망 두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두게 된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전혀
반대로 흘러갑니다. 가난한 열 가정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교회에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자 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교회에 지장이 많겠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야 말로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것을 쓸모없다고 버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지 않고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라면
세상이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라고 해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지체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명품 인생 명품 신앙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1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라.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베드로전서 2 :1)
성도들은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옛사람의 상징들이며 마귀적인 성질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이런 죄성들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이런 악들에 떨어질 수
있으나. 그러나 성도들은 마땅히 이런 악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 :2)
갓난아이들이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입니다.
아기들은 이렇게 엄마의 젖을 잘 먹을 때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됩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는 말은 '거짓 없는, 순수한 말씀의 젖'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단 사설들, 인본주의적 생각들이나 말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흥미만을 위주한 예화나 이야기들과 구별시킨 말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의 바른 교훈을 늘 읽고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할 이유는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 4 :13)
우리는 주 안에서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 성장의 정상적 방법은 순수한 성경 말씀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 :16-17)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다 장차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잔사 2 :3)
'주의 인자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은혜와 인자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진대 우리는 실제적으로도 의로운 자,
죄 없는 자, 도덕적으로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마땅한 것입니다.
2. 거룩한 제사장.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베드로전서 2 :4)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의로운 자로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시고 인정하시고 사랑하시고 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보배이십니다.
또한 그는 보배로운 산 돌이십니다. '산 돌'이란 그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심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 :5)
우리도 산 돌같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신령한
집'이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모여 한 교회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를 돌들로 지은 건물에 비유한 것이다. '신령한' 집이라는
말씀은 교회가 단순히 물질적인 건물이나 육체들의 집합체가
아니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집, 곧 성령의 전인 것을 나타냅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는 성도들의 연합 속에 성령께서 거하시는 신령한 집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 2 :21-22)
신약 교회는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온 세계의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교회입니다.
지금도 이 영적 교회의 건축 소리가 온 세계 곳곳에서 들려집니다.
이 영적 건축, 한 명의 영혼 구원을 통해
벽돌 한 장이 쌓여가는 이 건축은 물질적
예배당 건축보다 수천배 더 큰 의미가 있고 더 중요한 건축입니다.
우리 모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이 영적 건축, 곧 전도의 일을 크게 여기고 이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들을 드려야 합니다. 그 신령한
제사란 우리의 의롭고 착하고 거룩한 삶, 헌신과 봉사의 삶입니다.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 2 :6-8)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버린 돌,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되십니다. 많은 이들이 그 돌에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열심히 전하고
가르치고 권면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이중적입니다.
그가 창세 전에 어떤 이들을
영생으로 선택하셨으나, 다른 이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 버려두셔서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정하셨습니다.
죄 가운데서 멸망받을 자들도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3. 불러내신 뜻.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 :9)
그러나 우리에게는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받은 것은 인생에게 가장 큰 복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족속이 되었고. 선택받은 증거는 진실한 믿음과 회개와 순종입니다.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성도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를 섬기는 높은 특권이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부정과 불법으로 가득한 나라,
속이고 속으며 죽이고 죽는 나라, 음란하고 부도덕한 나라,
슬픔과 탄식과 고통이 가득한 나라, 죽음과 절망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
진리의 나라,사랑의 나라, 평강의 나라, 기쁨의 나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입니다. 성도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셨던지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귀한 보배들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것은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이 안전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그 기이한 은혜와 사랑과 의와
지혜와 능력을 마땅히 찬송하며 증거하고 선전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 :10)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도 얻지 못했었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얻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의롭게
살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찬송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사랑하는 자들아.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 2 :11)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은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하나님 앞에서 선악 간에
판단을 받아 내세에서 천국 혹은 지옥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 길이고 인간에게는 돌아갈 영원한 처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생은 내세를 준비할 것이다. 내세의
준비는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죄 가운데 정신 없이 살지 않고
죄를 회개하고 죄를 버리고 믿는 자답게, 성도답게 사는 것입니다.
육신적 욕망들은 바로 죄악된
욕망들입니다. 거기에서 음란과 방탕이 나온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짓지 않고 바르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 :12)
성도들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선하게 살아 감으로써 그들에게 바른 깨달음을 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악한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면 그것이 세상에 빛이
되어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날 그들이 깨닫고
성도들에게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 :16).
5. 믿는 자들과 세상.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
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 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베드로전서 2 :13-14)
이 세상에서 성도들의
선한 삶은 여러 면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왕과 그의 보낸 방백들
즉 관리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세속 사회의 질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뜻 때문에 인간의 제도들에 순종해야 합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2 :15)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성도들을 비난하기를
좋아하지만, 성도가 범사에 선하게 처신하므로 세상 사람들이
성도에게 아무런 바난할 말이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 :16)
성도는 죄와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율법의 완전한 의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귀한 자유를 악을 가리우는 일, 즉 악을 변명하고
정당화시키는 일에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해야합니다.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베드로전서 2 :17)
성도들의 선한 삶은 세상에서의 인간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해야 할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주께서 피흘려 사신 자들이 누구인지 우리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라 할지라도, 만일 주께서 그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셨다면, 우리는 그를 얼마나 존중해야 하겠습니까?
또 베드로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공경하라고 교훈했습니다.
왕을 공경하라는 교훈은 사실상 10계명 중 제5계명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 속에는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공경 뿐 아니라, 교회에서 장로들에 대한 존경, 노인들에
대한 공경,학교에서 선생들에 대한 존경, 직장에서 상사들에
대한 존경,나라에서 대통령이나 관리들에 대한 존경 등을 포함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베드로전서 2 :18)
베드로는 구원받은 종들에게도 선한 삶을 교훈합니다.
주인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종들은 주인들을 조금 두려워
하지 말고 범사에 두려워하고 온전히 두려워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종들은 또한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에게만
순종할 것이 아니고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전서 2 :19-20)
베드로는 말하기를, 종이 어떤 잘못이
있어서 주인에게 매를 맞으면 칭찬받을 것이 없지만,
그가 선하게 행함에도 불구하고 애매히 고난을 받고 그 고난과
슬픔을 잘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라는 말은 '
이렇게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하나님께서 나의 고난과 슬픔을
다 보고 계시고 다 판단하고 계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6. 돌아온 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 :21)
성도들은 이런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런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면서도
고난을 당하는 삶--그것이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가야 할 길입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 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 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전서 2 :22-24)
우리 구주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고
그 입에 거짓이 없으셨으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않으셨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
하지 않으셨고 오직 공의의 심판자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대속(代贖)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영원히
고칠 수 없는 죄의 병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삶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베드로전서 2 :25)
우리는 과거에 길 잃은 양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방황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와 감독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인도, 그의 간섭, 그의 보호,그의 돌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오직 하나님 중심의 삶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 진리의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모든 악독과 거짓과
외식하는 행위와 남을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거룩한 신앙 인격이 자라도록
힘쓰는 우리들의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장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나를 돌아보고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 가를 살피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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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2.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