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장님은 회식 장소를 매번 신발벗고 들어가는 식당으로 정할까
[인터비즈] 연말 송년회와 인사이동 이후 첫 회식 어디서 했는지 떠올려 보자. 혹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양반다리로 불편하게 먹는 장소는 아니었나? 양반다리로 혹사당한 무릎과 허리에게 '수고했어 오늘도♬'를 불러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왜 부장님은 매번 회식 장소로 좌식 식당을 선호하는지 궁금해진다.
'보통 친구들이랑 저녁먹을 땐 늘 의자에 앉아서 먹지 않나... 부장님은 친구가 없는 걸까...하긴... '
온갖 못된 생각이 들 때 부장님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회식장소를 좌식 식당으로 정하는 건 한국 음식문화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우리 부장님을 탓하느니 조상님을 탓하라구요!! (죄송합니다 조상님 ㅠㅠ 지금 회사예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외국인을 고문하는 법
1911년 독일인 신부 로브레르트 베버는 선교 활동을 위해 식민지 조선을 방문했다. 당시 경기 안성의 카톨릭 교우촌에서 환대 속에 식사를 받아든 베버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빛이 스친다.
'이렇게 낮은 식탁을 주면 밥을 어떻게 먹으라는 걸까?'
두루미 집에 식사초대를 받은 여우의 심정이 이랬을까.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할지 모르던 이들은 양반다리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한국인은 참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밥을 먹는구나.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양반다리로 앉는다. 다리엔 쥐가 날 것 같고, 도무지 밥을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에겐 힘든 자세였다. 당시 이들의 회고에 따르면, 다음 일정이 있어서 여기 더 못 머무는 게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참고 : 노르베르트 베버 저 '고요한 아침의 나라' 분도출판사)
한국식당을 찾는 외국인들 중 상당수는 신발을 벗는 좌식 문화에 당혹감을 나타낸다. 심지어 우리와 비슷한 문화권이라고 생각이 드는 중국인들도 좌식 식당으로 초대하는 건 실례로 여겨질 정도다. 외국인을 초대해 한국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TV예능 프로그램에도 좌식문화를 불편해하는 외국인 사례들이 소개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의자와 입식문화가 익숙한 외국인들에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되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한 장면 캡쳐. 양반다리에 익숙치 않은 독일인이 한국 식당에서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0대 이상 한국인들은 한식당 하면 좌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야 편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음식문화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 따르면 이는 온돌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한옥구조와 여기서 파생된 한식당 문화에 따른 것이다. 그는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방에 앉아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 양반 남성은 대체로 사랑방이나 대청마루에 앉아 식사를 했다. 잔치 등 많은 방문객이 몰릴 때에는 마당에 자리를 폈는데, 이때도 상석은 사랑방이나 마루였다. 방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 양반이고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인 한옥은 온돌방 구조로 신발을 신는 것보다 발을 내놓는 것이 더 따뜻하게 몸을 데울 수 있는 형태다. 여기에 ㄱ이나 ㄷ자 형태의 꺾음집 구조로 실내 어디를 가더라도 이어지기 때문에 굳이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다. 방이 상석이고, 방에선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식사장소에 대한 인식은 근대화 물결이 밀려오던 20세기 초 근대 도시의 식당가에도 반영이 됐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마치 살림집의 사랑채나 안방처럼 꾸며진 방에서 식사를 해야 손님들은 제대로 대접받는다고 여겼다. 이런 고급 조선 요리옥은 대저택에 방불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중저급 음식점에서는 방을 따로 두는 대신 주방을 터서 그 앞에 긴 식탁을 두고 장의자를 설치하여 손님들을 앉도록 했다 (주영하 저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
KBS 만화영화 옛날옛적에 캡쳐. 우렁이 색시 편. 한량이 뜻밖의 마루에 올라온 식사를 받아들고 '내가 제대로 대접을 받는가부다' 감동한 표정이다. 하지만 우렁이는 이런 고생이 또 없지...어디든 소반만 올리면 식당이 되는 전통적인 한옥 구조는 여성들의 가사 피로도를 높이는 원인이기도 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수집이나 사냥을 하는 경우 자리에 동물 가죽들을 깔고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문명권에서 식사자리는 좌식이 기본형이란 뜻이다. 서양에선 산업혁명 이후 다이닝룸이 일반 가정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면서 의자와 식탁을 놓고 생활하게 됐다. 중국 또한 실크로드 개척 전까진 의자 없이 식사를 했다. 서역과 교류가 시작되면서 식사를 할 때 의자(앉은뱅이 의자)를 이용하는 아랍권 문화가 차츰 유입됐다. 명나라 땐 지배층 한족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네 채의 건물을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한 사합원이라는 주택형태가 보편화됐는데, 건물을 이동할 때 신발을 신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별도의 식당으로 신발을 신고 이동해야 하는 만큼 식탁과 의자를 사용하게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옥의 전통적인 꺾음형 구조는 다른 문명권에선 누수 등의 위험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우수한 건축 기술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온돌의 지혜를 발휘한 덕분에 계속해서 좌식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유교 성리학에선 가부좌나 무릎 꿇고 앉기가 공부할 때 앉는 자세라는 주자의 '궤좌설' 때문에 이와 같이 앉는 자세야 말로 양반의 옳은 자세라는 인식이 커졌다. 앉은뱅이 의자를 쓰는 유목민 문화는 청나라에선 보편적이었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를 오랑캐 문화라고 경멸해 의자 문화가 들어오질 못했다.
조선시대에 <양반다리+방 문화+의자 거부> 3가지가 사람을 제대로 대접하는 미덕으로 굳어진 것. 이는 고급 한식당의 뿐만 아니라 장례식장 등 손님을 극진하게 맞이하는 자리의 기본이 됐다. 오래 앉아야 하는 자리는 신발을 벗기고 방에서 대접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관절 건강에 치명적인 '양반다리 회식'
아파트 생활이 몸에 밴 현대인들은 좌식 회식문화에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기껏 잘 대접하겠다고 회식자리를 신발 벗고 들어가는 방으로 잡았더니만... 부장님 과장님 마음 다르고, 사원 마음이 또 다를 수밖에 없다.
건강 문제만 놓고보면, 좌식은 관절에 큰 부담을 주는 자세라 피해야 한다.
온돌생활에 익숙한 한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장시간 좌식으로 밥을 먹는 행위는 몸에 무리가 된다. 무릎 관절을 꺾어서 압박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김용범 순천향대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차라리 쪼그려 앉는 게 무릎건강에 더 좋을 정도"라고 말했다. 쪼그려 앉을 경우도 무릎 관절의 압력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무릎 관절의 내측과 외측에 대칭적으로 압력이 가해지는 반면 양반다리의 경우 비대칭적으로 압력이 가해지고 회전 에너지까지가해져서 관절 부하가 더 커진다. (그는 물론 쪼그려 앉기도 무릎에 하중이 실려 관절염을 유발하는 나쁜 자세라고 지적했다. 양반다리는 그보다 더 부담이 큰 문제 자세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게다가 양반다리는 양쪽 고관절이 바깥으로 벌어지면서 이른바 '오다리'를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여기에 상체를 굽히게 되는 자세여서, 허리 디스크에도 평소보다 3배 가량 부하가 더 가해진다. 온 관절이 망가지는 자세인 셈이다.
자 이제 양반다리가 안 좋은 건 알았다. 문제는 당신에겐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부장이 부득불 회식자리는 신발벗고 들어가는 방으로 잡아놨는데, 어쩔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그는 만병의 근원이다). 피할 수 없으니 부장님 앞에선 즐기는 척하고, 속으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요령을 배워보자.
도움말 주신 분 : 김용범 순천향대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 동아일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4번 깐족대는 멘트는 평소 인터비즈 임현석 기자 말투.
부득이 양반다리로 앉았다면 일어날 때에는 천천히 일어나야 한다. 동아일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는 "양반다리로 앉았다면 무릎 연골에 윤활액이 충분히 침투하지 못해 뻣뻣해질 수밖에 없고, 이때 갑자기 일어나면 무릎이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자료 도움 :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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