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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황야의 결투 ]
실제 인물인 와이어트 어프와 닥 할러데이 콤비가 주인공인 할리우드의 OK 목장 결투 영화 중에서는 <OK 목장의 결투>와 <OK 목장의 결투 2>, <닥>, <툼스톤> 그리고 <와이어트 어프>가 좀더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만 가장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것은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입니다.
아리조나의 툼스톤이라는 화약연기가 자욱한 살벌한 마을을 지나던 목축업자 와이어트(헨리 폰다)는 술 취한 한 인디언이 소란을 피울 때 유일하게 나서서 진압합니다. 그는 보안관을 맡아달라는 마을사람들의 청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가축도둑이 자기 동생을 죽이자 동생의 묘비와 대화를 나눈 후 보안관 배지를 가슴에 답니다. 범인은 클랜튼 일가의 짓임이 밝혀집니다. 곧 이어 OK 목장의 결투가 벌어집니다. 서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결투죠. 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짧고 굵은 며칠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포드의 서부극이 언제나 그렇듯 정교한 총격 액션의 긴장감에는 희극적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술주정꾼이 ‘사느냐 죽느냐’를 암송하다 잊어버리자 의사이자 도박사인 닥이 중간에 대사를 불러주고, 어프와 닥의 옛 애인 얌전한 여선생 같은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스)과의 로맨틱한 관계도 등장합니다.
줄거리 자체는 서부극의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개척 당시의 도시의 생활상과 바텐더 ·유랑극단 배우 ·이발사 등 거친 서부에 사는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게다가 황량한 풍경 속에 감도는 시정(詩情)이 이 영화의 매력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OK 목장에서의 최후의 총격전은 포드의 종군(從軍) 체험을 살려 박진감 있게 묘사되었습니다. 맥도날드가 촬영한 흑백화면의 널찍한 공간 표현과 구름의 아름다움 등도 특기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주제곡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의 멜로디도 매우 인상적인데,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후, 이 민요도 유명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6.25 전 해인 1949년에 상영되었습니다.
* 그 유명한 아리조나 주,모뉴멘트 게곡
잊지 못할 몇 장면.
와이어트와 클레멘타인이 팔짱을 끼고 교회로 향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옵니다. 클레멘타인의 스카프와 리본이 바람에 하늘하늘 날립니다. 맑은 하늘에는 구름 몇 점만이 있을 뿐입니다. 멀리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낭만이 함께 실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축 중인 지붕 없는 교회에서 벌인 어프와 클레멘타인의 스퀘어댄스의 광경도 잊혀질 수 없는 멋진 장면으로 손꼽힙니다.
역사의 전설인 OK 목장의 결투가 시작되는 것도 와이어트와 클랜튼 일가 사이에 마차가 지나가면서부터입니다. 역마차가 지나가면서 길에는 먼지가 뿌옇게 날립니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클랜튼 아들 하나가 와이어트의 총에 쓰러집니다.
그리고 총탄을 맞은 닥의 손에 흰 손수건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이렇게 먼지와 바람을 이용하는 걸 보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구로사와 역시 존 포드의 영화를 좋아했으니까요.
영화 중반에 클레멘타인을 멀리서 바라보던 와이어트는 술집 바텐더에게 묻습니다. “사랑해본 적 있어요?” “평생 바텐더로 살았는 걸요” 서부의 총잡이답지 않은 낭만적인 질문과 바텐더다운 쿨한 대답입니다. 이런 대사들이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다가가지 못할 사랑을 마음 속에 품은 와이어트의 심정을 통해서...
[ 간략한 줄거리 ]
와이어트, 모건, 버질, 제임스 4형제가 소떼를 몰고 캘리포니아로 향합니다. 그들은 거친 황야에서 클랜튼 악당 일가를 만납니다. 영웅과 악당의 숙명적인 조우. 멀리 보이는 도시는 툼스톤입니다. 서부에서도 가장 악명이 자자한 도시. 막내 제임스는 소떼를 지키고 삼형제는 툼스톤으로 갑니다. 그러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막내는 살해당하고 소떼는 사라지고 맙니다.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는 보안관 직을 수락합니다. 법보다는 총이 앞서는 동네입니다. 툼스톤에는 숙적이 있습니다. 가축 시장과 무법을 지배하는 클랜튼 영감(월터 브레넌)과 도박판을 지배하는 총잡이 닥 할러데이(빅터 마추어)입니다.
클랜튼 영감은 아들들을 채찍으로 때릴 정도로 무자비한 악당입니다. 닥 할러데이는 바람처럼 고독한 존재입니다. 폐병에 걸렸는데도 술을 달고 살면서 자신을 학대합니다. 동부 출신의 의사였던 닥은 죽음을 찾아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술집의 가수인 치와와(린다 다넬)는 그런 닥을 사랑합니다. 보스턴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닥을 찾아서 예전의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즈)이 찾아옵니다. 서부에 어울리지 않는 여인입니다. 아직 서부는 개척 중이고, 무법자와 소떼들, 야만이 녹아있는 곳입니다. 아직 법과 교회와 학교가 자리 잡기 이전입니다.
와이어트 어프는 합승마차에서 내리는 클레멘타인과 마주칩니다. 그 순간 와이어트는 사랑하는 감정을 갖게 됩니다.
와이어트는 먼 발치에서 친구 닥을 사랑하는 여인 클레멘타인을 연모합니다. 클레멘타인을 질투하면서 행패를 부리는 치와와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고 와이어트는 동생을 죽인 게 클랜튼 일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다른 동생 버질까지 클랜튼 영감의 총에 맞아 죽습니다. 클랜튼 일가의 총에 맞아 죽은 치와와를 위해서 닥도 총을 듭니다. 사나이들은 OK 목장을 향해 걸어갑니다. 결투가 벌어지기 직전 와이어트는 클랜턴에게 말합니다. 순순히 자수하면 받아줄 용의가 있다고... <황야의 결투>는 이제 법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개척의 상징인 것이죠.
숨 막히는 결투가 벌어집니다. 영감의 아들들은 모두 죽습니다. 기침을 해대던 닥도 총에 맞아서 죽고... 와이어트는 클랜튼 영감을 살려주려 합니다. 아들들을 잃은 자기 아버지와 같은 고통을 똑같이 느껴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말을 타던 클랜튼 영감은 비겁하게 총을 빼어듭니다. 이를 지켜보던 동생 모건 어프가 총을 쏩니다. 어프 형제와 클랜튼 일가의 대결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일반적인 멜로드라마라면 와이어트는 클레멘타인의 곁에 남아야 하겠지만 이곳은 서부입니다. 서부의 사나이들은 떠돌이라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언젠가 들리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만 남긴 채 와이어트 어프는 먼 지평선을 향해 떠나갑니다.
[ 와이어트 어프 이야기 ]
와이어트 어프는 1848년 3월 19일 일리노이주 먼머스에서 니콜라스 어프의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와이어트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미-멕시코 전쟁에서 기병대 대위로 복무하던 때 그의 부대장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고 합니다. 아이오와 주의 농장에서 자라다가 1864년 부모와 함께 캘리포니아 주 콜튼으로 이사했고 철도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1870년 그는 우릴라 서덜랜드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장티푸스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 후 그는 버펄로 사냥꾼과 역마차 마부가 되었습니다. 1873년 그는 캔사스로 이주하여 보안관 조수가 되었고 엘스워스에서 위험한 총잡이 벤 톰슨을 체포했습니다.
* 어머니 버지니아와...
1875년 이제 명사가 되어 캔사스 주 위치타에 도착한 그는 부보안관직을 수행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카우보이 조지 호이를 죽이는 사고를 친 바 있습니다.
1876년 그는 캔사스 주 다지 시티로 이주하여 정식 보안관이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의사이자 도박사 그리고 총잡이이기도 한 닥 할러데이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그는 여기서 보안관과 도박사로 명성을 쌓게 됩니다. 그는 셀리아 블레이록과 두 번째로 결혼합니다.
* 21살 때
그러나 곧 그녀와 헤어지고 1879년 아리조나 주의 신생 은광산 마을 툼스톤으로 가서 형제들과 친구 닥 할러데이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오리엔탈 살롱에서 도박장 면허를 취득한 후에 그곳에서 일은 하게 되었고 조시 새디 마거스와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클랜턴 패거리들과 이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고 그것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부 개척시대의 사건인 OK 목장의 결투로 이어집니다. 이후 1882년 동생인 모건 어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에게 살해당하자 분노한 형제들이 복수에 나서 클랜턴을 비롯한 네 명의 용의자를 모조리 살해합니다.
* 어프가 운영하던 술집
그 때문에 살인혐의로 기소가 되어 아내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샌디에고 등에 잠깐 잠깐 머물며 도박과 부동산 업무를 하던 와이어트 부부는 알래스카에 골드러시가 한창일 때인 1897년에 알래스카 주 놈(Nome)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도박장 겸 술집을 운영했습니다.
* 어프의 권총, 콜트 45
그 뒤에도 와이어트는 겨울에는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의 광산 개간지에서 일하고 여름에는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휴식을 보내며 노년을 보냈습니다.1907년경에 자신이 머물던 호텔에서 자서전 격의 이야기를 구술합니다. 그리고 1929년 1월 1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내인 조시가 곁을 지키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습니다.
* 알라스카에서...왼쪽 어프
노년에 할리우드에서 한참 영화 산업이 흥성하면서 서부 영화도 여러 편 만들어졌는데, 그때 나름 자문을 맡기도 했다고 합니다.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고 OK 목장의 결투의 전설로 남게 됩니다.
* 어프 부부 묘
[ 서부개척시대의 카우보이 ]
* 카우보이 초기시절
서부개척의 주역들 중의 하나인 Cowboy는 말 그대로 소치기입니다. 혹은 목동(牧童) 내지는 소몰이, 혹은 소몰이꾼 등으로 해석됩니다.
서부개척 당시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의 초지에는 텍사스 롱혼이라는 긴 뿔 육우가 수천만 마리나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이의 선조는 스페인의 토로스 종이라고 합니다. 서부개척 초기에 남부를 지배했던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온 소가 야생화한 것입니다. 이 소떼들을 붙잡아 오클라호마주를 거쳐 동북부 도시로 연결된 기차역으로 소떼를 운반하던 직업이 바로 원조 카우보이들이었습니다.
남북전쟁 후 서부에 방목 형태의 대규모 목축이 성행하게 된 것은 임자 없는 초지가 무한정 펼쳐져 있는 자연적 요소 외에 대륙횡단철도 건설 및 냉장열차의 개발로 서부에서 도축된 고기를 동부의 인구 밀집 지역으로 신속히 그리고 신선하게 운송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카우보이들은 이 소를 몰고 철도가 지나가는 중부까지 수천 마일을 올라와 철도 주변 대도시의 도축장에 팔아넘기고 여기서 도축된 고기는 열차에 실려 동부로 수송되었습니다.서부 영화를 보면 이런 카우보이들의 삶이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들이 겪었던 고생이란 낭만과는 거리가 퍽 먼 것이었습니다.
먹을 물과 풀을 찾아 광야를 며칠씩 헤매는 것은 보통이고 카우보이들끼리 좋은 초지와 물을 두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우보이의 낭만은 상업성을 지향하는 서부 영화가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미국인들의 향수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고 나아가 미국 역사 자체를 미화하는 데 큰 몫을 해 왔습니다.사실 카우보이의 세계가 무법천지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축업자들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초지와 물의 권리에 관한 상호협약을 맺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이 협약은 엄격히 준수되었습니다.
카우보이들에 의하여 운반된 소는 도축되어 동북부 도시에 식육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지역 신문에 카우보이라는 존재가 알려져서 카우보이에 대한 로망이나 전설이 후대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 진짜 카우보이들의 활동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존 웨인, 몽고메리 클리프트 주연의 <Red River>였습니다.
* 소떼의 이동
미국 중부평원에서의 축산업은 1886년, 미국 북부에서 고기와 가축 저장량이 바닥났다는 소식을 들은 텍사스 목장주들이 남아도는 소를 북부로 몰고 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소속 목장과 지역의 낙인이 찍혀있는 2,000 내지 3,000두 가량의 소떼들이 평원을 횡단하여, 서부로 가는 새 철도 옆에 생긴 길을 따라 다음 기착지까지 이동했습니다.
전형적인 소몰이꾼들은 수송대장(보통 소유주), 5~6명의 카우보이, 요리사, 예비용 말을 돌보는 한두명의 말 전문 카우보이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6~7 마리 중에서 골라 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소떼 수송대는 남부 텍사스에서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하는 이른 봄에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 대열의 앞에서 요리사가 보급품을 실은 마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들의 식량은 주로 토마토 통조림, 밀가루, 콩, 커피, 베이컨, 말린 과일 등이었고, 양파묶음과 식초단지, 당밀통도 가지고 갔습니다.
요리사가 탄 마차 뒤에는 목동이 말떼를 몰고 따라갔고 소떼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소떼들의 앞에 선 두명의 ‘포인트맨’, 양쪽에서 따라가는 몇 명의 ‘스윙맨’, 뒤쪽의 ‘드래그맨’들이 소를 몰면서 갔습니다. 폭풍이 몰아쳐서 소떼가 놀라 도망치거나 인디언들이 공격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느 소떼든지 강을 건널 때가 가장 걱정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소들은 양옆에서 말을 탄 카우보이의 지시를 받으면서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갔습니다.
이 여로의 종착지인 카우타운에서 카우보이들은 소를 우리에 가두어 두고 거래인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상인들은 그 소를 중서부로 보내거나 시카고나 밀워키에 있는 도살장과 쇠고기 포장공장으로 보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보수로 100달러 이상을 받았습니다.
* 영화에서...헨리 폰다와 빅터 마추어
그들은 보수를 받자마자 바나 살롱, 댄스홀, 도박장, 매춘굴로 달려갔습니다. 그 무렵, 어느 살롱(술집 겸 도박장)도 애벌린에 있는 ‘알라모’만큼 화려한 곳은 없었습니다. 알라모 살롱에는 삼중 유리문과 황동으로 장식한 긴 바, 펠트를 깐 도박 테이블, 그리고 장식이 붙어있는 거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는 비까 번쩍한 살롱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살롱은 허술하고 누추했습니다.
* 카우보이 중기 시절(방목 시절)
1870년대 중반, 텍사스에 철도가 들어와 종착역까지 2,400km나 되는 긴 여행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텍사스의 소는 계속 북쪽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북부의 평원에서 기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영화에서...
버펄로가 멸종되고 인디언들이 격리된 보호지역에 수용됨에 따라 북부지역에서 소를 기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목축업자들은 점차 서부 캔자스와 다코타 산맥을 지나 네브라스카, 콜로라도, 와이오밍, 몬타나로 진출했습니다.
목장주는 정부소유 토지에 불법이주하거나, 홈스테드법에 의해 미국정부가 서부 이주자들에게 불하했던 65 헥타르 규모의 자영농장에 거주했는데 그 위치는 주로 강가였습니다. 그들은 영구적인 주택을 짓기 앞서 움막이나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수백마리의 소를 방목을 하면서 운만 좋으면 그 숫자가 급속히 불어났습니다.
1880년대에는 동부와 유럽에서 서부산 소고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목장주들이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사업가들이 몰려들어 풍부한 자금으로 소를 사육하는 기업 형태의 목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군대막사 모양의 방 하나짜리 합숙소에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침상 위에서 잠을 자고 못에다 옷을 걸었습니다. 그곳에는 안장, 굴레, 박차 그리고 기타 장비가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원에 점점 더 많은 소가 몰려들어 오게되자 소값이 떨어졌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과도한 방목이었습니다.
목장주들은 자연산 목초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겨울에도 목초를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에이커당 소의 수가 일정한 수준을 넘자 목초공급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1866~7년 한파로 수만 마리의 소가 얼어 죽고, 자연 방목하던 시절도 거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 영화에서...이발소
* 방목 생활
원래 미국 서부는 농사지을 땅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방목식 목장을 만드는 거였고 이 목장을 운영하는 게 바로 카우보이라는 직업군이었습니다.'방목식 목장'이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별 거 없었습니다.
그냥 이동하기 편하게 마차 하나에다가 세간을 몽땅 때려넣고, 동물들 가둘 가설 울타리와 천막이나 조잡한 판자집을 짓고는 우물 파놓고 살면서 해당 지역의 풀이 거덜나면 마차 끌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식이었습니다.
이들의 식사도 늘 커피, 말린 과일, 콩, 말린 고기, 베이컨, 베이컨 기름에 튀긴 비스킷 정도였고, 그래서 읍내에 들르면 스테이크와 계란 후라이 그리고 술 한잔에 월급을 쏟아넣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허허벌판 사막에서 물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리를 깔고 눕기 전엔 전갈이 있는지 살펴야 했고, 추운 사막의 밤을 견디고 일어나 부츠에 발을 넣기 전에는 방울뱀이 없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선 하루 종일 말을 타고 뙤약볕을 견디며 모래먼지를 뒤집어 썼고 다시 형편없는 식사와 끔찍한 잠자리를 반복했습니다. 생활은 이런데 반해 카우보이들의 보수는 적었고 어떤 때는 대포살돈 조차 없었습니다. 마침 총도 있겠다해서 그냥 강도로 변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때론 카우보이들이 여럿 연합하여 강도단을 이루어 강도짓을 저지르다가도 보통 때는 평범한 카우보이로 위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인 <사라진 검은 독수리>에서도 이런 묘사가 자세하게 나옵니다.
수만 마리 소떼를 몰고 초원을 질주하는 카우보이의 장관도 1885년을 지나면서 보기 힘든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목축업자들은 소떼를 끌고 초원을 방황하기보다 울타리를 친 목장의 주인으로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 영화에서...
* 카우보이 말기 시절
세월이 흘러 카우보이들은 점차 소를 잡기 위해 로프를 던지기보다는 울타리를 수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고용 일꾼이 되었습니다. 가혹한 기후를 잘 견디는 양도 초원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카우보이 시대는 끝이 났지만 그들의 전설은 남아 있습니다.
* 영화에서...막내동생의 묘지
카우보이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게 로데오입니다. 야생의 말이나 소를 길들이는 기술의 일종입니다. 거친 말이나 소를 래리어트, 혹은 라소라고 불리는 올가미를 씌운 뒤 등에 올라타 계속 날뛰는 걸 버텨서 굴복시키는 고난이도 스킬입니다. 물론 이거 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카우보이도 많았습니다.
* 영화에서...모뉴멘트 계곡
의외로 카우보이 자체는 현재도 존재합니다. 미국의 경우 텍사스 쪽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세계적인 목축국가이자 소고기 수출국가인 호주에도 현대판 카우보이들이 있는데, 어마어마한 규모로 소를 치다 보니 여기서는 헬리콥터로 소몰이를 합니다.
물론 지상팀 지원도 받지만, 저고도로 비행하면서 소를 몰아대는 솜씨 탓에 헬기 조종사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늘의 카우보이인 셈입니다. 또한 세계적인 목축지역인 남미 아르헨티나 팜파스 평원에도 가우쵸라는 카우보이와 같은 직업군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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