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있는가
세상에 정의는 있는가? 정의는 한 인간의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것이라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정의라고 판단했다면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동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이때 속마음으로 하는 생각은 누구도 알 수 없어 명확한 정의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나의 마음이 바를 때는 정의가 있고, 바르지 못할 때는 정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회의 정의가 있고 없고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항상 변해서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뜻으로 본 정의(定意)는 바른 마음, 바른 의지다. 옳은 것으로 본 정의(正義)는 바른 도리, 의논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나의 정의는 바른 정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정의는 관념으로 설정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바른 정의는 내가 배제된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사실 나의 정의가 바른 것으로 판단할 때는 단지 나의 정의다. 이때 나의 정의가 바르다는 관념이 생기면 객관적인 정의를 바르지 못한 것이라고 부정하기 마련이다. 나의 정의는 정의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생긴 지혜로 본 정의라면 이는 객관성이 있는 바른 진리다.
무엇이 바른 정의인가? 불교에서 본 정의는 나의 정의가 아니다.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생긴 지혜로 본 객관성이 있는 정의가 바른 정의다. 이때 몸과 마음이라는 대상과 이것을 아는 마음만 있어 나의 주관적 견해가 작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드러난다. 이때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특성을 가진 바른 정의가 바로 무상, 고, 무아다.
빨리어로 본 바른 정의는 담마(Dhamma)다. 담마는 법(法)이라고 하지만, 대상과 진리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때의 대상은 몸과 마음이고 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을 때 세 가지 지혜가 나서 바른 도리를 깨치는 정의를 구현한다. 이 외에도 담마는 진리, 원리, 이치, 도(道), 도덕, 자연이라는 뜻이 있다. 담마는 세간의 정의와 출세간의 정의를 아우르는데 이것이 속제와 진제다.
또 다른 정의로 삼마(samma)가 있는데 올바른, 완전히, 원만히, 적절하게, 철저히, 라는 뜻이다. 이런 삼마는 여덟 가지로 실천하는데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이것이 계정혜며 팔정도다. 팔정도는 사성제의 도성제로 깨달음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서 최상의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