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즉사(生卽死)는 있어도 사즉생(死卽生)은 있을 수 없다 !!!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있는
▷필사즉생(必死則生)-죽기를 각오(覺悟)하면 살 것이요
▷필생즉사(必生則死)-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다
를 인용(引用)하여
생즉사(生卽死)-사는 것은 곧 죽는 것이며
사즉생(死卽生)-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글의 원전(原典)은 고대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병법가(兵法家)
“오자병법(吳子兵法)”에 나오는
▷必死卽生(필사즉생)-반드시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倖生卽死(행생즉사)-요행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죽는다
에서 파생(派生)된 말이다.
그만큼 목숨을 건 각오(覺悟)를 다짐한 말이다.
그런데 이말은 누구나 가볍게 가져와서 쓸 말이 아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나 오자병법(吳子兵法)에서는 목숨을 걸고 한말이다.
이재명 따위가 법을 어기고 검찰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거짓 단식(斷食)”을 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처절(悽絕)한 절규(絶叫)를 더러운 입에 담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명예(名譽)를 더럽히는 것이다.
생즉사(生卽死)는 있어도 사즉생(死卽生)은 있을 수 없다
필자가 이재명을 위하여 이 문구를 다시 해석하겠다
生而爲死(생이위사)-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반드시 죽기 위한 순서이다.
死了活不(사료활불)-죽으면 끝이다 다시 살 수 없다.
명색이 일국(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이 나라 역사의 영웅이
한말을 뜻도 모르고 경기도청 법인카드를 개인의 생활용품 사는데 사용하듯
함부로 사용하니 통탄할 일이다.
특히 이런 자의 이름을 환호(歡呼)하며
“바른길”과 “바르지 못한 길”을 구분 못하는 일부 국민들이 한심스럽다.
끝으로 필자가 이재명에게 책을 한권 권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책속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와 창녀 소냐의 삶을 읽어보고
이재명이야 말로 진정한 회개(悔改)로
남은 인생 부활(復活)의 은혜 받기를 바란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