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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예썰의 전당> [54회] 뉴욕의 하루, 에드워드 호퍼. 2022년 05월 27일 방송 다시보기
‘자화상’, 1925–30년경. 캔버스에 유채, 64.5x51.8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모든 해답은 캔버스 속에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
스튜디오의 에드워드 호퍼, 1950년, 사진 조지 플랫 라인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유화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수채화와 판화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었다. 주로 도시와 교외의 풍경과 소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호퍼의 풍경화들은 가장 미국적인 요소를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그의 풍경화가 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은 적막하고 외로운 현대 미국인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철길 옆의 집〉, 〈주유소〉,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등이 있다.
청년 시절은 생계를 위해 삽화가로 활동
'뉴욕 에디슨 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 1906-07년, 종이에 펜과 잉크,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26.7×19.4cm
'뉴욕 에디슨 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 1906-07년, 종이에 펜과 잉크,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26.7×19.7cm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드로잉에 재능을 보였으며 부모는 그의 재능을 키워 주려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다. 열세 살 때인 1895년에 첫 유화이자 처음으로 서명을 넣은 〈로키 코브의 보트〉를 그렸다. 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후에도 배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 상업 예술을 하라는 부모의 권유를 받아들여 뉴욕 미술 디자인 학교에서 6년간 응용 미술을 공부했다.
1906년 뉴욕의 광고 회사에 시간제 직원으로 취직했다. 광고 회사의 일을 싫어했으나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같은 해 유럽 미술을 공부하려고 파리로 가서 미술관과 전시회를 다니며 다양한 작품을 접했고 주로 야외에서 인상파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1년 후 뉴욕으로 돌아와 잡지와 소설의 삽화를 그렸다. 그는 훗날 이 시기의 작업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그림이다. - 사회의 변화를 담아낸 호퍼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차용한 ‘쓱 SSG’광고(2016)의 한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쓱(SSG) 광고의 한 장면(2016). [사진 SSG닷컴]
여름날 해안가의 집, 흰색 외벽 위로 오전의 햇살이 떨어진다. 뾰족한 두 지붕, 새하얀 건물과 푸른 자연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이 그림은 어딘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백발의 중년 여성과 난간에 걸터 앉은 젊은 금발 여인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둘은 무슨 관계일까. 에드워드 호퍼(Hopper·1882~1967)가 1960년 9월 완성한 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이층에 내리는 햇빛’이다. 호퍼는 “노란색을 거의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햇빛을 흰색만으로 그려보려고 시도한 작품”이라고 했다.
호퍼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건 2016년 그의 그림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쓱 SSG (신세계 온라인 쇼핑몰)’ 광고가 대박을 치면서였다. 호퍼의 그림들은 구도가 심플하면서 연극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고 크고 밝은 색면이 시원스러운 쾌감을 주기에 광고에 잘 녹아들었다. 사실 호퍼는 전업 화가가 되기 전에 광고·잡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 보는 이의 눈을 빠르게 휘어잡아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감각이 그의 과묵하고 고독한 그림에 은근히 살아있는 것이다. 호퍼 자신은 그 일을 무척 싫어했지만 말이다. 이번 ‘길 위에서’ 전시는 제7섹션(호퍼의 삶과 업)에서 그의 광고·잡지 삽화를 다수 보여준다. “훗날 그의 주요 작품에 나타나는 구도와 모티프를 이 삽화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전시를 기획한 이승아 학예연구사가 말한다. 비록 싫어하는 일이었지만 창작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 1942년.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위한 습작. 1942-1942년.
밤새 여는 다이너(Diner)의 으스스한 빛을 그린 작품. 이 작품을 통해 사람과 물건들을 공간 속에 고립시키는 빛을 독특하게 사용함으로써 고독함을 묘사했다. 호퍼의 Nighthawks는 1942년에 완성되었으며 도시 생활의 외로움의 역설을 포착한다. 호퍼의 걸작은 그 자체로 실존적 위기이다. 개인 그룹이 뉴욕시의 고립된 고요함의 희생양이 되는 곳. 이 작품은 20세기 미국 예술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그림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Artsper는 이 현대 걸작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깊이를 탐구한다.
에드워드 호퍼,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 1909년, 캔버스에 유채, 61×73.3cm
'철길의 석양' 1929년. 캔버스에 유채, 74.5×122.2cm, 휘트니 미국 뉴욕 미술관
‘철길 옆의 집’. 1925년, 오프셋 석판, 72.4×74.3cm
"나의 느낌을
캔버스 위에 영사한다"
- 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영화관' 1939년
‘아침의 태양’.
화려한 대도시 이면에 드리워진 고독과 불안을 사실적으로 그려온 화가다. 철길 옆에 우뚝 선 신호탑 뒤로 장관을 이루는 일몰을 묘사한 ‘철길의 석양’은 이번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대표작이다. 근대화의 산물인 철길이 지평선과 평행을 이루며 끝없이 달려가는 모습이 아련한 느낌을 준다. 기차 창문 너머로 목격한 장면 같지만, 실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이다.
1908년 그룹 전시회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했다. 1909년과 1910년에도 짧은 기간 파리를 방문했다. 이 이후로는 파리를 다시 방문하지 않았지만 평생 동안 프랑스 문학과 미술을 즐겼다. 1920년대까지 광고 일러스트나 영화 포스터를 그리면서 틈틈이 작품을 제작했다. 1913년 전시회에 〈항해〉를 출품하고 처음으로 작품을 판매했으나 이후 10년 동안은 회화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다. 반면 삽화가로서는 명성을 얻어 광고 포스터로 1등 상을 받기도 했다. 1920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으나 단 한 점의 작품도 팔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의 관심도 끌지 못해 크게 낙담했다.
'밤의 그림자', 1921년, 에칭, 24.4x27cm. 흑백의 극명한 대비가 관람객의 상상을 자극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1917–20년경. 종이에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50.2×37.6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심각하다. 깊게 들이킨 낭패의 쾌감이 진한 그림자로 얼굴에 남았다. 그를 주시하고 있는 남자의 불안감 때문일까. 뽀족한 구두를 신은 그를 마치 외줄 타기 하듯 직선에 올려놓았다. 빠른 붓터치로 드러난 남자는 세련된 패션 감각에 묻힐 그의 착잡한 심정까지 엿본 느낌이다.
‘열려있는 창문’, 1918–19년경. 에칭, 23.5×26.7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빛과 그림자는 호퍼의 작품을 설명하는 열쇳말. 도시를 밝히는 불빛과 텅 빈 거리, 극장과 식당, 우두커니 서 있거나 앉아있는 실내 인물을 관찰자적 시선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감춰진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일주일에 한두번씩 극장을 찾을 만큼 영화를 좋아했고,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둠이 깔린 도시, 내려다보듯 한 남성의 걸음을 쫓는 판화 ‘밤의 그림자’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릴 넘친다. 관음증적 시선, 고독과 우울의 정서가 실제 누아르 영화에 영향을 줬다. 알프레드 히치콕, 빔 벤더스, 데이비드 린치 같은 거장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영화관을 위한 습작', 1939년, 종이에 콩테, 목탄, 37.9×28.3cm
에드워드 호퍼, '독서하는 조 호퍼', 1935?40년경, 종이에 콩테, 목탄, 38.3×56.2cm
에드워드 호퍼, '카페에서', 1906-07년, 종이에 수채, 연필, 30.2×24.1cm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먼 집들〉, 1930–33. 캔버스에 유채, 74 ×109.5 cm.
2014년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 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두 점을 바라보고 있다. 아래 그림이 이번 전시에 나온 '벌리 콥의 집, 사우스 트루로'(1930~1933). /백악관
‘호텔 창문’, 1955년
‘철로 변 호텔(Hotel by a Railroad)’ 1952년/ ‘Hotel lobby’, 1943년.
‘밤의 사무실(Office at night)’, 1940년. - 애정?, 눈치?, 불만?
에드워드 호퍼, '통로의 두 사람', 1927년, 캔버스에 유채, 101.9×122.5cm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감정적으로 분리된 모습
'통로의 두 사람', 1927년
‘철학으로의 소품’, 1959년.
‘그랑오귀스탱 강둑’, 1909년. 캔버스에유채, 60.2×7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New York
호퍼의 초기 드로잉과 자화상을 담은 섹션인 ‘에드워드 호퍼’로 시작한 전시는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 등 총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이 장소들은 호퍼가 머물며 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1906~1910년 호퍼는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를 세 차례 방문했다. 파리에서 보았던 여러 풍경을 기억하며 야심차게 그린 ‘푸른 저녁’도 파리 섹션에서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호퍼 생전 한 번만 전시된 작품이다. 파리 센 강의 다리와 운하, 루브르 등 도시 풍경을 차분하게 그린 작품도 있다.
‘그라운드 스웰(Groundswell:먼 곳에서 일어난 폭풍으로 인해 생기는 큰 파도)’, 86.4x63.5cm
'맨해튼 다리', 1925-26년, 종이에 수채, 연필, 35.4×50.6cm
에드워드 호퍼, '석회암 채석장', 1926년, 종이에 수채, 연필, 35.2×50.6cm
에드워드 호퍼, '오건킷의 바다', 1914년, 캔버스에 유채, 61.8×74.3cm
에드워드 호퍼, '작은 배들, 오건킷', 1914년, 캔버스에 유채, 61.6×74.3cm
에드워드 호퍼, '블랙헤드' 몬헤건', 1916-19년, 나무에 유채, 24.1×33cm
전시는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작가가 선호한 장소를 따라 간다.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지평을 넓혀간 호퍼의 65년 화업을 돌아보는 여정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 걸고 감상했던 ‘벌리콥의 집, 사우스 트루로’도 볼 수 있다. 2014년 2월 휘트니미술관에서 대여한 호퍼 그림 두 점 중 하나다. 호퍼 부부는 1930년 여름, 케이프코드 남쪽 트루로에 방문해 우체국장 벌리 콥의 작은 집을 빌려 여름 휴가를 보냈다. 휘트니미술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호퍼 작품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이 그림을 골랐다”며 “작품을 백악관에 걸던 날, 집무실로 쏟아진 자연광이 호퍼 그림의 햇빛과 같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홈페이지에 올렸다.
‘햇빛 속의 여인’, 1961년. 린넨에 유채,101.9×152.9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New York.
호퍼는 주로 한 여성을 모델로 그렸다. 그의 아내 조세핀이다. ‘햇빛 속의 여인’에 등장하는 바로 그 여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여인이 방 한가운데 서 있다. 강렬하고 밝은 햇빛이 방 한가운데까지 넘어와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그림이다. 호퍼는 작품에서 빛을 즐겨 활용했다. 인공광은 도시의 고독을 드러내고, 자연의 빛은 현대의 낯선 감정을 다독이는 역할을 했다. 촉망 받는 화가였던 조세핀은 평생 호퍼의 모델이자 동반자, 매니저 역할을 했다. 둘은 성격 차로 자주 다퉜지만, 문학이나 영화, 연극 같은 취향을 공유하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호퍼는 그림 속에서 여인에게 끝없는 빛의 축복을 내린다. 도시의 인공광이 도시의 고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빛이라면 자연의 빛은 호퍼가 그린 여러 낯선 감정을 견딜 만하게 만들고, 그의 그림을 결정적으로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적인 요소이다. 그림 ‘햇빛 속의 여인’ 속 여인도 문득 햇빛을 향해서 일어섰다. 손에 들려 있는 타 들어간 담배는 그녀가 꽤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지체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햇빛이다. 빛이 강렬한 만큼 그녀의 뒤에 따르는 어둠도 깊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어쨌든 한 걸음 나갈 것 같다. 빛을 향해서 말이다.
빛은 너무 보편적인 해결책이어서 뾰족한 답은 아니겠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다. 21세기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종류와 크기는 호퍼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다. 고립감, 고독감, 소외감, 권태감, 불화, 좌절감, 슬픔, 분노 등등이 매일매일의 우리의 삶에서 위세를 떨친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절망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희망에는 사실 이유가 없다. 희망을 갖고자 하는 이는 작은 풀잎에서도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호퍼의 많은 그림들에서 인물들은 빛을 향한다. 그처럼 우리는 호퍼의 그림에 모여든다.
에드워드 호퍼, 조세핀 니비슨 호퍼, ‘작가의 장부 3권’, 1924–67년. 종이에 펜, 잉크, 콩테, 색연필, 31×19.4×1.9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부인 조세핀 호퍼(1883~1968)와 티격태격 불화도 많은 부부였지만 조세핀은 호퍼의 구세주다. 그의 전시 이력, 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힌 장부 관리를 30년 이상 지속하는 매니저 역할도 수행했다. 특히 호퍼의 사망 이후 거의 2500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미술관에 기증했다. 말수가 적은 편이던 호퍼가 언급하지 않았던 작품의 세부 사항들을 조세핀이 세세하게 기록한 덕분에 그의 작품과 생애가 담긴 낙서 같은 장부도 미술사료적 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 이번 전시가 메모 자료까지 풍성하게 전시된 배경이다.
1924년 미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조세핀 니비슨을 만나 결혼했다. 둘은 성격, 취향, 사상 등 모든 면에서 달랐지만 조세핀은 그의 경력과 인터뷰를 관리하고 작품의 모델도 되어주는 등 평생 동반자 역할을 했다. 이 시기 호퍼는 아내의 조언으로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수채화가 그에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안겨 주었다. 1924년 두 번째로 개최한 개인전에서는 출품한 모든 작품을 판매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1925년 아내와 함께 미국 전역을 여행하다가 본 풍경을 그린 〈철길 옆의 집〉은 지나간 시대를 은유하는 듯이 외롭게 서 있는 집을 그린 그림으로 뉴욕 현대 미술관(MoMA) 최초의 소장 작품이다.
1950년대 추상 표현주의가 떠오른 이후 예술계에서는 호퍼의 사실주의 스타일을 낡은 것으로 치부했으나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큰 사랑을 받았다. 그가 사망할 무렵에는 신사실주의 화가들에 의해 작품 세계가 재조명되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밤의 창문’, 1928년. 캔버스에 유채, 73.7×86.4cm. Museum of Modern Art (MoMA), New York, USA.
호텔 방 창문 너머 장면을 그린 ‘밤의 창문’(1928년). 호퍼는 거리에서 본 장면을 통해 고독, 욕망, 권태 등 현대인의 감정을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유화로 그린 '밤의 창문'이란 작품을 통해서도 대도시 건물 위주의 그림이 아닌, 창문 안 시민의 행동을 유심히 보여준다. 에드워드 호퍼를 흠모한 조너선 샌틀로퍼 작가는 '밤의 창문'을 놓고 성폭행 당한 동생의 복수를 감행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소설을 그리기도 했다.
‘밤의 창문’은 고가철도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싸구려 호텔 방 장면을 그렸다. 발터 베냐민은 19세기 말 인상주의 시대를 분석하면서 근대 사회의 모든 것이 ‘볼거리’가 되어간다고 했다. 20세기 초 호퍼의 시대에 대도시의 ‘볼거리’는 ‘욕망’이라는 감정과 밀접하게 엮여 들어간다.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은 쇼윈도 안에 있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들은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모든 것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방에 분홍색 속옷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이 얼핏 보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인의 뒷모습만 보고 느낀 욕망은 창문의 커튼처럼 가볍게 날린다. 속절없는 욕망과 좌절은 도시의 고독을 더 깊게 만든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판화와 수채화 등을 통해 문명과 자연, 문명과 인간의 조화를 이룬 작품들을 대거 내놓는다. 2층 전시실에는 그가 남긴 뉴욕의 풍경화들이 주를 이룬다.
'황혼의 집', 1935년. 캔버스에 유채, 92.1×127cm.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Richmond.
'극장의 고독한 인물'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뉴욕 등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 외로움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황혼의 집' 등으로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표현한 작품들도 돋보인다. 문명은 인간과 자연을 가두고 억압하는 게 아닌, 철저히 인간과 자연의 배경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작품 '황혼의 집'에서는 방안의 여성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숲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관람자로 하여금 도시의 사적인 영역을 상상하게 하고 그 안에 내포된 긴장감을 주고 있다.
‘도시의 지붕들’, 1932년. 캔버스에 유채, 90.6x72.9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관객이 가장 기대할 섹션인 ‘뉴욕’에서도 차가운 건물 풍경이 이어진다. ‘도시의 지붕들’(1932년)은 휘트니미술관의 최근 소장작이다. 킴 코너티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는 “북적이는 도시 환경 속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오전 7시', 1948년, 캔버스에 유채, 76.7×101.9cm
‘뉴잉글랜드’와 ‘케이프코드’ 섹션은 도시를 벗어난 호퍼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이곳의 해안과 어촌 마을, 섬을 방문하며 그렸던 스케치 소품, 호퍼 부부의 여름 별장이 있었던 케이프코드의 풍경이 펼쳐진다. 번잡한 뉴욕에서 벗어난 그는 ‘오전 7시’(1948년),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년) 등의 작품을 남겼다.
‘계단’, 1949년, 나무에 유채, 40.6x30.2cm
‘찹 수위(Chop Suey)', 1929년, 81.3×96.5cm - 심각한 얼굴의 두 사람
'아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에드워드 호퍼
이 장면은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여성을 배경으로 다른 커플을 묘사했다. 특히 자세히 보이는 유일한 특징은 페인트 칠한 여성의 얼굴, 그녀 위에 걸려 있는 코트, 동반자의 등, 배경에 있는 커플의 특징, 테이블 위의 차 주전자, 가면을 쓴 아래쪽 창 패널이다. , 레스토랑 간판 밖에 있다. 외부 조명의 윙윙거리는 소리, 배경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 코트의 질감, 차의 맛과 차의 냄새 등이 기억에 감각적 요소를 가져다줄 것이다. 담배 연기, 가려진 창문에서 나오는 흐릿한 빛. 호퍼의 작품은 내러티브 맥락보다는 고립과 자아 존재의 주제를 건드리는 사실적인 장면으로 유명하다.
‘자동판매기(Automat)’. 1927년.
이 그림은 밤에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 잔을 응시하는 외로운 여성을 묘사한다. 밤에 검게 물든 창문 너머로 일렬로 늘어선 전등의 반사광이 펼쳐진다. 호퍼의 아내인 Jo는 그림 속 여성의 모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호퍼는 그녀를 더 젊게 만들기 위해 얼굴을 바꿨다(Jo는 1927년에 44세였다). 그는 또한 그녀의 모습을 바꾸었다. 조는 몸집이 풍만하고 통통한 여성이었고, 한 평론가는 그림 속의 여성을 " '소년'"이라고 묘사했다.
‘케이프 코드의 아침’ 1950년, 스미스소니언 미술관 사라 로미 재단 기증
‘주유소(Gas)', 1940년, 캔버스에 유화, 66.7×102.2cm, 뉴욕 현대미술관
이 작품의 주제는 호퍼가 방문한 여러 주유소의 합성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에 따르면 주유소 모티브는 그가 오랫동안 그리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호퍼는 그림을 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전보다 더 느린 속도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릴 적절한 주유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펌프 위에 조명이 켜진 주유소를 칠하고 싶었지만 그의 지역에 있는 주유소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밖이 칠흑같이 어두울 때만 조명을 켰다고 한다.
‘길 위에서’
‘길 위에서’
‘소도시의 사무실(Office in a small city)', 1953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1953년 10월 말에 완성된 직후 이 그림을 입수했다. 여름에 케이프 코드에서 시작하여 뉴욕 시에서 완성되었으며, 그 해 호퍼가 제작한 유일한 유화였다. 그의 대표적인 주제 중 하나인 주변 환경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체적, 정서적으로 분리된 고독한 인물을 재현하는 것은 예술가의 아내에 의해 "콘크리트 벽 속의 남자"라고 묘사되었다.
에드워드 호퍼, '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 1930년경, 캔버스에 유채, 89.1×152.7cm
에드워드 호퍼, '퀸스버러 다리', 1913년, 캔버스에 유채, 65.7×96.8cm
에드워드 호퍼, '안개 속의 메인', 1926?29년, 캔버스에 유채, 88.9×151.3cm
조지 벨로우, '재떨이의 실망', 1882년
조지 럭스, '헤스터 스트리스', 1905년
‘브루클린의 방(room in brooklyn’, 1932년, 캔버스에 유채. 74x86cm
‘푸른 저녁’, 1914년, 캔버스에 유채, 91.8×182.7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식당, 카페, 상점, 가로등, 주유소, 기차역, 호텔 방 등이 연극무대처럼 보여진다. 도시적 고독함, 소외감, 외로움, 긴장감이 묻어난다고 평하고 있다. 작가가 굳이 그렇게 그렸다기 보다 그런 감성을 불러일으킨다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어쩌면 환등상(phantasmagoria)의 경험이라 하겠다. 자본주의 현실의 은폐, 동시대 유토피아를 향한 소망, 현실에 대한 각성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매혹과 우울의 이중성이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 실내, 1921년경, 캔버스에 유채, 61.8×74.6cm
그는 미국의 도시와 농촌 풍경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미국 최초의 미술가이자 사실주의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대공황 기간에도 휘트니 미술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주요 미술관들은 그의 작품을 고가에 구매할 정도였다. 호퍼는 주로 일상적인 풍경을 그렸지만 그가 그린 그림들에는 대공황과 세계 대전으로 지친 미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때문에 가장 미국적인 사실주의 화가로 손꼽히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나타난 팝 아트와 신사실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1967년 호퍼는 뉴욕의 작업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Blackwell의 섬, 1928년, 캔버스에 유채, 87.3×151.3cm
‘10월의 코드 케이프’, 1946년, 캔버스에 유채, 66.7×107.3cm
‘바닷가의 방’, 81.3×61cm
‘그늘의 거리’, 보드에 유채, 13.6×9.5cm
‘알타 힐스의 초상’, 약 1904-1914년, 캔버스에 오일, 61×50.8cm
‘글로스터 공장과 집’, 약 1924년, 종이에 수채화와 연필, 35.6×50.8cm
'이영화의 기장 중요한 목표는
호퍼의 작품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이였다'
-구스타프 도이취
‘뉴욕의 방(room in newyork)’, 1930년대, 73.7×61cm - 같은 공간 이지만 분리된 모습
‘뉴욕 사무소’, 66×83.8cm
그가 죽은 후 아내 조세핀은 그의 작품 삼천여 점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조세핀도 열 달 후 숨을 거두었다. 호퍼의 작품은 마크 로스코와 같은 화가뿐만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마틴 스콜세지 같은 영화계 거장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위호켄의 동풍‘, 1934, 캔버스에 유채, 86.4×127.6cm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 97위.
“오로지 풀만이 무성히 자란 죽은 풀만이 바람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준다.”
-에드워드 호퍼
이 그림은 미국 뉴저지의 위호켄이라는 지역을 그린 것으로, 전형적인 미국 동네의 모습이다. 널찍하고 반듯반듯한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마을. 하지만 사람 사는 소리와 냄새가 보이지 않는 뭔가 텅 빈 듯한 마을이다. 미국 중산층이 사는 전형적인 ‘큰 집’들이 모여 있는데, 사람들 모습은 화면 왼쪽 아래에 간신히 윤곽 정도만 보이고, 실제 여기에서 생활하고 있는 생생한 주민들이나 개, 꽃, 자동차 등 ‘살아 있는’ 소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집의 상징인 정원의 잔디는 오랫동안 깎지 않아 잡초처럼 무성하고,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팝니다(For Sale)’라는 집 매매 팻말이 희미한 글자로 쓰여 있어 더 쓸쓸해 보인다. 반듯한 집들만 늘어선 그림 안에 곡선이라고는 없기 때문에 더 딱딱하고 쓸쓸해 보인다. 그저 눈에 뻔히 보이는 당시의 풍경을 그렸지만 거기에 그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뻣뻣하고 휑한 풍경이 우연히 그리다 보니 나온 것이 아니라, 작가가 시대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처음부터 이런 딱딱한 구도와 선을 의도적으로 쓴 것이다.
당시 유행하던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을 습득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처한 미국의 현실에 더 관심을 갖고 그것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그려 낸 독창성 덕분에 호퍼는 20세기 초반의 미국 작가로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 미술계의 유행과는 동떨어져 있었지만 나 홀로 갈 길을 간 작가인 점이 오히려 더 가치를 빛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질서 정연한 현대 사회의 풍경 속에 설 자리가 없는 쓸쓸한 사람의 심경을 표현한 그의 그림은 1930년대 미국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호퍼를 좋아하는 애호가가 많다.
호퍼는 ‘애시캔 스쿨(Ashcan School)’의 대표적 작가인 헨리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며, 〈그로스 박사의 임상 수업〉을 그린 에이킨스를 존경했다고 한다. ‘애시캔 스쿨’은 뉴욕의 평범한 거리 풍경과 가난한 이웃의 생활 모습 등 주변의 하찮은 것을 소재로 그리던 1900년대와 1910년대 미국 작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애시캔 스쿨이나 에이킨스 모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던 평범한 소재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렸다는 특징이 있다.
호퍼 역시 자신이 살던 시대와 환경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렸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렸는데도 역설적으로 감정이 들어가 있다. 호퍼가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1930년대는 미국이 경제 대공황을 겪고 난 직후였다. 호퍼가 즐겨 그리던 당시 미국의 풍경은 이 그림에서 보듯 휑하다.
조세핀 니비슨, '자화상', 연도미상
'그와 대화하는 건
이따금 우물에 돌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세핀 니비슨 호퍼
에드워도 호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조', 1936년
'트루로 집에서 스케치하는 조', 1934-38년
히치콕 영화 ‘이창’(1954)의 한 장면. [사진 구글 캡처]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호퍼는 현대인이 마주한 일상과 고독감, 정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포착해 현대인들의 정서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호퍼의 작품은 히치콕 영화를 비롯한 소설, 광고 등 다양한 장르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번 전시 역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에드워드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해요"
-조세핀 니비슨 호퍼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 내면의 삶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 '조세핀 니비슨 호퍼 작가의 장부 1권', 1913-63년
✺ 오바마도 히치콕도 사랑한… 영화 같은 호퍼의 작품들이 서울에 왔다
◦ 전시명 :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길 위에서’
◦ 전시기간 : 2023년 4월 20일 ~ 8월 20일 (매주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 층
◦ 전시작품 : 뉴욕 휘트니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버지니아미술관, 톨레도 미술관 소장품
◦ 관람료 : 유료(사전 예약)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대거 한국에 왔다. ‘철길의 석양’ 한 점을 제외한 전 작품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작품을 그린 장소, 사용한 물감, 판매 기록까지 스케치와 함께 꼼꼼하게 기록한 장부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애덤 와인버그 휘트니미술관장은 “호퍼는 여러 장소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자신만의 기억과 상상력을 더해 자기만의 화풍을 발전시켰다”며 “현대인의 내면 풍경을 담은 그의 작품이 서울의 관람객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최대 소장처인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해 서소문본관 전 층에 걸쳐 개최되는 블록버스터 전시다. 회화·드로잉·판화 등 호퍼 작품 160점과 관련 아카이브 110여점을 소개한다.
미국 뉴욕휘트니미술관/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을 이끌어 온 애덤 와인버그 관장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54회] 뉴욕의 하루, 에드워드 호퍼,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정보, 동아일보 2023년 04월 20일, 영감 한 수푼(김민 기자), 조선일보 2023년 04월 20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규현, 알프레드),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무원 김명희 화가
아침내내 '호퍼'의 그림들을 감상했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토당 양명숙 교장
감사학니다. 덕분에 편하게 침대에서 미술관을 다녀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