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우체통에 다녀온 뒤로 마음 한구석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한구석에서는
자꾸 꺼림칙한 것이 자라나고 있었다. 갖고 싶은 것들이었다.
시작은 정말 별것 아니었다. 출근길에 신호를 기다리는데 새 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그냥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차 이름을 한 번 검색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휴대폰이 달라졌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뭔지는 몰랐지만 자동차 광고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비교 영상이 추천됐고, 시승 후기가 이어졌다. 화면을 넘길수록 더 비싼 차들이 나타났다.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휴대폰이 나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도 자동차 영상을 넘기고 있는데 처음 보는 추천 앱 하나가 화면 아래 나타났다.
'욕심의 거울'
작은 글씨가 함께 적혀 있었다. '이 거울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비춥니다.'
장난인 줄 알았다. 무심코 눌렀다.
앱은 별다른 설치 과정도 없이 바로 실행됐다. 화면 가운데에는 버튼 하나만 있었다.
'거울 보기'. 누르는 순간 검은 화면이 거울처럼 변했다.
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까 검색했던 그 자동차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게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건가?" 조금 신기했다.
다음 날 다시 열어 보았다. 이번에는 넓고 큰 아파트가 나타났다. 며칠 뒤에는 명품 시계가
보였다. 그다음에는 해외여행. 그다음에는 고급 오디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놀이 같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욕심은 하나를 채우면 끝나는 감정이 아니었다. 하나를 바라보는 순간,
그 뒤에 또 하나가 생겨났다.
욕심은 계단과 닮아 있었다. 올라서면 끝이 아니라, 바로 위의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원하면 집이 보였다. 집을 원하면 호화별장이 보였다. 끝이 없었다.
며칠 뒤 오랜만에 동창 단체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모두 웃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친구들 얼굴부터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시선은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다.
사진 뒤에 보이는 새 아파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 세워진 외제차도 보였다.
누군가 손목에 찬 시계도 보였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멈칫했다. 나는 친구를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친구가 가진 것들을 보고 있었던 걸까.
그날 밤 앱을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화면에 동생 이름이 떠 있었다. 며칠 전 승진한 바로
그 동생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차도 아니었다. 집도 아니었다.
이제는 가족의 행운까지 부러워하고 있었다. 며칠 뒤에는 친구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나타났다.
그다음에는 후배의 직급. 그다음에는 SNS에서 여행 사진을 올린 사람의 인생.
욕심은 물건에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사람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알 것 같았다.
욕심은 남과의 비교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 삶보다 남의 삶이 더 좋아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욕심도 함께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앱을 삭제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나타났다. 다시 삭제했다. 또 생겼다.
세 번째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첫 화면의 문장이 바뀌어 있었다. "욕심은 삭제되지 않습니다. 방향만 바뀔 뿐입니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나는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졌다. 화면이 번쩍 빛나더니 금이 간 것처럼 수십 개의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조각마다 다른 장면이 비쳤다. 첫 번째 조각에는 예전 아내가 새벽마다 조용히 도시락을 싸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 조각에는 퇴근한 나를 기다리며 현관에 놓인 낡은 슬리퍼가 보였다.
세 번째에는 부모님과 함께 웃으며 즐겁게 먹었던 오래전 저녁 식탁이 비쳤다. 네 번째에는
비 오는 날 우산 하나를 함께 쓰던 친구가 있었다.
조각은 모두 작았다. 그런데 그 작은 조각들 속에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들어 있었다.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조각나지 않았던 화면은 늘 남의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조각난 화면은 내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 날 휴대폰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욕심의 거울이라는 앱 아세요?"
직원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가끔 그 앱을 보셨다는 분들이 오십니다."
"삭제가 안 됩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렇습니다."
"방법이 없나요?" 직원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있습니다."
"뭔데요?" "이미 가진 것을 보기 시작하면 사라집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저녁이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갔고,
골목 어귀에서는 된장찌개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 평범한 풍경이 이상하게도 오래 눈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 욕심의 거울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광고 하나가 눈길을 붙잡을 때도 있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멋진 삶.
그럴 때마다 나는 문득 그 조각난 화면을 떠올린다. 욕심은 하나를 이루면 끝나는 감정이
아니었다. 더 큰 욕심을 불러왔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남의 행복이 내 행복보다 더 커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새 차도, 더 큰 집도 아니었다.
이미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이 평범한 하루를 잃지 않는 삶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거울 속이 아니라 내 손안에 있었다.
<오늘의 팝송> Happy Together / The Turtles
Happy Together는 미국의 록밴드 The Turtles가 부른 곡이다. 1967년 발표됐다.The Turtles는 1965년 결성
돼 1970년 해체됐다. 83년 재결합해 활동중이다. 대표곡으론 Happy Together, She'd Rather Be With Me
You Showed Me등이 있다. Happy Together는 3주간 빌보드 챠트 1위에 올랐었다. https://youtu.be/9ZEURntrQOg
첫댓글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새 차도, 더 큰 집도 아니었다.
이미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이 평범한 하루를 잃지 않는 삶이었다."
그런데 자꾸 새것이 핸폰에 마구 떠서 머리가 아픕니다.
나도 예전대로 살고 싶습니다.
새로움에 적응이 머리아픕니다.
발전이 빨라서
속도를 못맞춥니다.
그져 옛날대로...
니이가 들어가니 욕심도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비온뒤님 어른을 위한 동화 정말
유익한 글이십니다
내 가진것 보다
남의 것이 더 커 보이는것이 욕심인것 같아요 ㅎ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서초님.
어른이 읽으면 좋은 동화.
읽다보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동화, 참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자리님.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