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執着)의 진실
갈애를 원인으로 집착(執着)이 일어난다. 하지만 갈애가 없으면 집착이 일어나지 않는다. 갈애는 감각적 욕망이지만, 집착은 감각적 쾌락이라서 갈애보다 한층 더 강화되고 깊어진 마음의 상태다. 그래서 집착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인 집착을 원인으로 업을 생성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이 단계가 미래의 태어남을 만드는 결정적 행위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 중에서 두 번째가 집성제다. 이때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이 집착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괴로움의 원인이 갈애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집착이라고 한 것은 집착이 다음 생인 업의 생성을 준비하는 직접 원인이기 때문이다. 갈애가 가벼운 욕망이면 집착은 돌이키기 어려운 쾌락으로 발전한 상태다. 그래서 괴로움의 원인이 집착이다.
갈애가 일어났을 때는 가벼운 욕망이라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단순한 느낌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집착에 이르면 윤회의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집착을 우빠다나(upādāna)라고 하는데 연료, 생명의 연료, 땔감, 잡음, 집착, 취착이라는 뜻이다. 집착은 마음에 새겨두고 잊지 않은 상태로 깊게 마음을 먹어서 중독된 마음과 같다. 그래서 대상을 강하게 움켜쥐는 마음이다.
갈애를 생명의 연료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인간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힘이 약해질 때 집착이라는 연료를 부어 계속 윤회하게 하는 땔감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윤회는 다른 누구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나의 마음에 있는 집착이란 에너지가 이끌어서 간다. 집착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이다.
이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감각 대상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감각적 쾌락의 집착이다. 둘째, 잘못된 견해에 대한 집착이다. 이는 삿된 견해로 유신견, 상견, 단견에 대한 집착이다. 셋째, 도덕적 의무와 금지조항에 대한 집착이다. 이것은 개, 소 등의 동물을 흉내 내면 고통이 종식되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집착이다. 형식을 집착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으로 실재를 아는 수행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넷째, 자아에 대한 집착이다. 이는 내가 있다는 견해에 대한 집착이다. 이런 견해는 나의 마음이 영원할 것이라는 영혼으로 보아 집착한다. 이러한 네 가지 집착은 대상에 강력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존재를 욕망의 세계에 붙들어 맨다. 이런 집착이 업을 생성하여 계속해서 미래의 태어남을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