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반의 바닥 청소는 신입을 갓 벗어난 이등병 담당 이었다. 그리고 고참이 되기 직전 일병 말년이 식기 담당 이었다. 말년 병장은 밥 먹으러 식당에 가지도 않았다. 이등병이 배식 받아서 내무반 까지 배달 하였다.
아침 6시에 기상 해서 연병장에 집합 하면 구보를 하거나 태권도를 하였다. 겨울 영하의 날씨에 얇은 도복을 입고 기본 6개 동작을 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다. 아니! 절대로 감기 걸려서는 안되었다. 동기 중 한 명이 몸살 감기 걸렸다고 보고 했다가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라는 대대장 지시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한 그 동기는 군대 생활을 몇 배 힘들게 했다. 바로 위 고참들의 타켓으로 무릎 아래가 시퍼렇게 멍든 것을 본 적이 있다. 오다가다 군화로 찍힌 것이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입대한 바로 위 고참들이 두 세 살 많은 동기를 고문관 취급을 하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입대한 후임도 고문관 취급을 받았다. 군대는 나이가 무시 되었다. 오로지 군번 순으로 위계 질서가 세워졌다.
동기 중에는 결혼을 하고 입대한 동기도 있었다. 인사계 행정병 이어서 야간 보초를 함께 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점심 때 다이제스티브 같은 과자를 초소 주변에 깔아 놓았다. 그리고 야간 보초를 서면서 다이제스티브를 먹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 이었다.
첫댓글
상명하복
무조건 하면된다.
상식이 통하지 않던
예전 군대방식,
남편과 연애 1년차 입대
33개월 합쳐 8년후 결혼
이후 전투적 결혼생활
지금은 전우애로...ㅎ
우리나라 가정문제중
많은부분이 옛 군대문화의
폐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더군요.
물론 긍정적 부분도 있지만
상당수 군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죠.
남편도 예전에 다시 군대에
가는 악몽을 꾸곤했다네요.
네,반갑습니다.
군대 생활의 강한 기억은 가족 외에 남들과 숙식을 함께 오래 했기때문인 것 같네요.
병이 군의 기강을 잡겠다고 후임을 괴롭히는 고참은 몇 명
되지 않았네요.
동기가 많아서 끈끈한 동기애로
즐거웠던 추억도 있네요.
오히려 사회 직장이 구타는 없어도 더 힘든 곳이라 생각합니다.
차분한 글 솜씨가 흡인력 있습니다
또 , 또 기다리겠습니다 ㅎ ㅎ 감사합니다
네,반갑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정상 인데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특히 훈련소에서 만나서 병장 때까지 함께 했던 동기들이
생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