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의 <지네브라 데 벤치 (Ginevra de' Benci)> 초상, 1474-1478년, 패널에 오일, 38.1cmx37cm,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19세기 이전 회화가 있는 미국 워싱턴 미술관 내셔널갤러리를 둘러보던 중 유난히 관객이 많은 방을 발견했다. 그곳 한 가운데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 1458년 출생)의 회화, 지네브라 데 벤치 (Ginevra de' Benci)>의 초상화가 별도의 유리장에 전시되어 앞 뒷면을 모두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워싱턴 DC의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이 작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공개된 유일한 레오나르도 그림이다. 즉 미국에서 다빈치를 보려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린다는 이야기다. 어떤 작품이고 또 어떤 스토리가 있을가?
문 밖 자연으로 나온 여인
이 작품은 그려진 당시의 관점에서 두 가지 차별점이 있다. 첫 번째는 옆모습이 아닌 측면을 비스듬히 보고 있는 여인의 자세이고, 두 번째는 그 배경이 실내가 아닌 야외라는 점이다.
그림의 소녀는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의 귀족 가문 은행가의 부유한 딸 '지네브라 데 벤치(Ginevra de' Benci, 1457~1521)'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그녀가 16세일 무렵 그려졌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이 초상화를 그렸을 때, 그녀의 나이는 16세였고 막 약혼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다빈치는 22세로 아직 젊은 베로키오 공방의 조수이자 견습생에서 별도의 주문을 받기 시작할 때였다. 그럼에도 입체적인 얼굴과 머리칼, 또 나무와 자연의 사실적 묘사가 다빈치 특유의 기교를 보여준다. 지네브라는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미인으로 소문이 나 있어서 당대 피렌체의 유명 시인들이 앞 다투어 그녀에게 시를 지어 헌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전원 풍경
피렌체(Florence)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최대 도시이자 중심 도시다. 아르노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역사상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중세 유럽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1865년에서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1982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도시 중심에는 거대한 돔을 가진 성당인 두오모(Duomo)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으며, 이는 피렌체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 성당의 본래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이다.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였던 도시로 메디치가는 피렌체의 발전에 기여했다. 문화와 학문적으로 막대한 후원을 하여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을 세웠으며, 이러한 유산들은 매년 수백만이 넘는 관광객들이 오는 도시이다.
이 때 보통 초상화는 완전히 측면에서 본 것이 흔했다. 그런 점에서 마치 인물이 내 앞에 앉아있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더 극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혼자 외출하는 것이 드문 시기였는데, 드넓은 자연 속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 길래 이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그림 속 지네브라의 눈동자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모나리자’를 예감하게 하는 시선의 모호함이다. 그러나 희미하게 미소 짓는 모나리자와 달리 창백한 피부에 금발의 이 미녀는 그저 무표정하기만 하다. 그림 속 배경에는 아마도 고향 피렌체인 듯 한 풍경이 저 멀리 보이지만 그녀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것은 주니퍼 나무의 검푸른 그림자이다.
노간주나무(Juniperus rigida)
주니퍼 나무는 여성의 정숙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지네브라가 아름다운 만큼 그녀의 정숙함이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의미 했으리라. 또, ‘주니퍼’를 이탈리아 어로 ‘지네프로’라고 하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상기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정숙하고 아름다운 지네브라. 깊게 팬 눈꺼풀을 반 쯤 뜨고 알 수 없는 피안의 세계를 보고 있는 듯한 이 엄숙한 소녀의 얼굴은 주위를 뒤덮은 금녹색 주니퍼 나무의 그늘로 인해 달빛처럼 희게 빛난다. 이 신비한 모습과 분위기는 훗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 속에서 완벽히 재현해 내었다.
지네브라는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다. 멀리서 불어 오는 바람 사이로 주니퍼 나무 잎새가 고향의 언어로 그녀의 이름을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는 듯 하다.
그럼 다빈치는 왜 지네브라의 초상을 그렸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 때 대부분의 화가들은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 역시 인생의 특별한 때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 주문되었다.
우리가 지금도 생일이나 졸업, 결혼 등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처럼. 그러니 이 그림은 지네브라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남긴 ‘셀피(Selfie)’와도 같다.
잘 알려진 젊은 피렌체 여성인 지네브라 데 벤치는 보편적으로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간주되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1474년에서 1478년 사이에 피렌체에서 초상화를 그렸는데, 아마도 지네브라가 16세 때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아마도 약혼을 기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당시의 여성 초상화는 약혼 또는 결혼의 두 가지 경우에 의뢰되었다. 결혼식 초상화는 전통적으로 쌍으로 만들어졌으며 여성이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약혼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연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네브라의 약혼을 축하하며 그려졌다. 지네브라의 곱슬머리 뒤로 펼쳐진 나무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지네브라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고 배경의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는 향나무 덤불은 단순한 장식 목적 이상을 제공한다. 르네상스시기의 이탈리아에서 노간주나무는 여성의 미덕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노간주나무(juniper)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ginepro도 지라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초상화는 국립 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며 지네브라의 기질 묘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지네브라는 아름답지만 엄격하다. 그녀는 미소의 기미가 없으며 그녀의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지만 보는 사람에게 무관심해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 여인의 손 연구, 1490(출처: 지네브라 데 벤치-wikipedia.org)
지네브라 데 벤치(Ginevra de' Benci)〉의 복원된 손 모습(출처: Ginevra de' Benci - Google)
지네브라와 모나리자의 가상 비교(출처: 파일:손 콜라주를 가진 Ginevra benci.jpg - Wikimedia Commons)
어느 시점에서 그림의 바닥은 손상으로 인해 제거되었으며 지네바다의 팔과 손은 그때 없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황금 비율을 사용하여 수잔 도르테아 화이트(Susan Dorothea White)는 원본에서 팔과 손이 어떻게 배치되었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하여 그렸다. 손 모양은 이 그림에 대한 연구로 생각되는 레오나르도의 손 그림을 기반으로 했다.(출처 : 지네브라 데 벤치 - wikipedia.org)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의 〈지네브라 데 벤치(Ginevra de' Benci)〉 뒷면
이 그림 뒷면의 이미지와 텍스트 '아름다움은 미덕을 장식한다' 'Virtue and Honor(미덕과 명예)'라는 라틴어 모토로 기념되는 월계수 화환과 야자수 화환으로 둘러싸인 향나무 장식은 초상화의 식별을 더욱 뒷받침 해준다. 이 문구는 한편으로는 지네브라의 지적 도덕적 미덕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육체적 아름다움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월계수와 야자수로 둘러싸인 향나무의 장식은 그녀의 이름을 암시한다. 월계수와 야자수는 Bernardo Bembo의 개인 엠블럼에 있다. 지네브라와의 플라토닉한 관계가 그들 사이에서 교환된 시에서 밝혀진 피렌체 주재 베네치아 대사. 적외선 검사를 통해 지네브라의 아래 Bembo의 모토인 "덕과 명예"가 드러났으며, Bembo가 초상화의 의뢰에 어떻게든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데 벤치와 벰보가 시를 편지로 주고받은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에 따라 그림 속에는 두 사람의 우정도 담겨 있다고 연구자들은 본다. 데 벤치에 대한 애정으로 그림을 다 빈치에게 의뢰한 사람이 벰보라는 추측도 있다.
이 작품은 즉 아름답고 지적인 데 벤치의 약혼을 축하하는 외교관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다 빈치는 그런 그녀의 지성을 과감한 구도와 풍경으로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여행 가방으로 실어온 작품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미국으로 오게 되기까지의 스토리다. 이 미술관의 큐레이터 데이비드 앨런 브라운이 2018년 현지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미술관이 1967년 구매해 무려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캐리어에 담아 가져왔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작품을 최대한 조용히 가져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원래 유럽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의 왕족이 소장하고 있었다. 다빈치의 작품, 특히 유화는 세계적으로 몇 점 없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에 발견된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가 2017년 경매에서 5000억 원에 팔려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 작품으로 추정되는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내셔널 갤러리는 이 작품을 약 500만 달러(약 60억 원)에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재정난을 맞이했던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빈치의 그림을 팔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 작품에 눈독을 들였던 내셔널갤러리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왕족이 돈이 부족해 판 그림을 떠들썩하게 가져올 수는 없었다. 미술관은 이 작품을 캐리어에 담아 비행기로 가져온다. 물론 화물칸에 싣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캐리어를 위한 별도의 비행가 좌석을 구매했고, 그 옆을 큐레이터가 지키며 그림을 조용히 모셔왔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때 미술관의 결정은 다빈치를 보기 위해 수백 만 명의 관객이 찾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미술관을 짓는 것은 쉽지만, 좋은 소장품과 전시로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것은 단시간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어떤 작품을 보고 싶을까? 그것을 걸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자료 출처: '영감 한 스푼 2023.5.19(금) · 69호' (김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