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녹여라
청화 큰스님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
물론 오랫동안 하지 않고서 잠시간만 한다하더라도 그 효험(效驗)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역시 오랫동안 해야만이 우리의 과거번뇌 금생번뇌가 녹아집니다. 우리는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라, 함께 구(俱), 날생(生)자, 일어날기(起)자, 우리 생과 더불어서 과거로부터 지어온 번뇌가 있다 말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행동하고, 우리 입으로 말하고. 우리 뜻으로 분별하고. 이런 것은 그때하면 그것이 순간 사라지지만은 흔적(痕迹)은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식(識)에다가 인상(印像)을 둔다 말입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자기 몸에다가 담배를 부벼서 피는 것은 아니지만은 자기 몸에서 담배냄새가 나는 것을 보십시오. 자기 호주머니에다 향(香)을 담았던 사람은 자기 몸에 향을 바르지 않지만은 향기(香氣)가 풍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느 한마디의 말. 또는 행동 하나. 생각 하나를 한다 하면은 그냥 그런 것은 사라진다 하더라도 흔적(痕迹)은 안 사라집니다. 흔적 그것은 종자(種子)가 되어서 우리 의식에다가 흔적을 인상을 둔단 말입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그때는 그것이 우리의 업장(業障)이 된다 말씀입니다.
우리 의식(意識)에는 어느 누구나가 다 같이 몇 만생 동안 쌓이고 쌓인 그런 훈습(熏習)된 업장이 있습니다. 인상을 둔 우리의 흔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금생(今生)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런 업장 때문에 금생에 우리 행동이 제한을 받습니다. 우리 타고나온 본 소질(素質)이나 그런 것은 모두가 다 훈습된 업장 때문에 그럽니다.
<분별기번뇌(分別起煩惱)>
금생에도 나와서 잘 못 배우고, 잘 못 듣고, 잘 못 생각하고, 이것이 또 흔적을 둔다 말입니다. 과거세(過去世)에 이러한 흔적(痕迹)을 둔 이것이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라, 그 위에다가 금생(今生)에 이루어진 번뇌, 이것이 분별기번뇌(分別起煩惱)라.
우리는 이와 같이 과거세에 우리가 생과 더불어서 가지고 온 번뇌, 금생에 새삼스럽게 새로 지은 번뇌, 이런 번뇌를 다 떼야 만이 우리 마음의 본 바닥을 보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가 금생에 지은 번뇌는 그냥 떼기가 쉬워도, 마치 하나의 억센 잡초가 있으면 잡초 우듬지는 베기가 쉽지만, 뿌리는 좀처럼 뽑기가 어렵듯이, 우리 번뇌 역시 금생에 배운 것은 조금만, 가사 나쁜 책을 많이 보았으면 딴책을 보면 되겠지요. 소설을 많이 봐서 그에 따르는 번뇌가 많으면 철학서나 종교서적을 많이 읽으면 되겠지요.
이와 같이 금생에 지은 번뇌는 딴 행동이나 딴 것을 취하면 달리 바꿀 수가 있지만, 전생(前生)의 번뇌(煩惱), 우리 의식(意識)의 저 밑에 까지 깔려있는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 깊은 번뇌는 좀처럼 안 됩니다. 견성(見性) 오도(悟道)한 도인(道人)도 차근차근 점차로 떼는 것이지 갑자기는 못 뗀다고 합니다.
마치 불교에서 표현할 때 ‘견도여파석(見道如破石)’이요, 금생에 지은 번뇌는 최파(摧破)할 때에, 끊어 버릴 때에 마치 돌을 탁치면 순간에 금이 가듯이, 금생에 지은 번뇌는 우리가 법성(法性)을 보면 즉시에 끊어지지만,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라,
생과 더불어서 온 번뇌는 그냥 두고두고 마치 ‘수도여우사(修道如藕絲)’라, 마치 연뿌리를 떼려면 잘 안 떼어지지요 질겨서 말입니다. 연뿌리를 떼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생에 지은 번뇌는 떼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성(佛性)에 사무칠라면 정작 우리가 앞서 말한 참다운 자유인(自由人)이 되고, 참다운 해탈(解脫)의 성자(聖者)가 되기 위해서는 싫으나 좋으나 간에 아무 때고 그런 번뇌는 떼야 합니다. 못 떼면 우리가 윤회(輪廻) 바퀴에 짓눌려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日常的)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 스님들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재가(在家) 불자(佛子)들도 마땅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허나 아무리 선량한 불자라 할지라도 집안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못 벗어나면 윤회를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몇 십만 생을 지나도 윤회를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시면 직감(直感)하실 것입니다. 윤회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싫으나 좋으나 간에 우리는 꼭 아까 말한바와 같이 금생에 지은 분별기번뇌, 과거 무량생에 지어온 구생기번뇌. 이 번뇌를 우리가 끊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일이고 대사(大事)입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제2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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