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는 처세술에 능했던 사람이고 말하면서
사육신을 죽게하고 세조를 찬탈한 기회주의자라고도 평가한다.
칠삭동이 한명회는 그리 운이 따랐던 사람이었을까?
세조 왕위기간중에 이시애의 난때 반란자 이시애의 모함으로
투병중에 집에서 끌려나와 하옥되는 시련까지 맞았으나
결국 나오는등 운이 참 좋은듯한 사람이었다.
죽을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리고 딸을 성종에 비로 줄만큼 세도도
있었던 한명회
그러나,말년에 이 처세술이 빗겨나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어린 연산군이었다. 한명회가 죽을 나이가 다되었을때에
조정은 이미 폐비의 아들인 연산군을 두고 세자책봉에 대한
두려움을 우려하고 있었고 한명회도 이에 한몫하여
임금과 대비를 찾아가서 세자책봉을 취소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였다.연산군이 장자였던 이유로 왕실의 법도상
세자가 되었는데.....
한명회가 죽고 얼마안있어 연산군이 보위에 올랐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일으켰고 그 이후에 갑자사화를 일으켰는데
갑자사화때 바로 한명회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폐비에 관한일에 폐비윤씨를 변호하지 않거나 가만있었던자나
찬성한 자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욕을 보이게 했는데
이미죽은 한명회의 무덤도 이때 파헤쳐지고 시체가 된채로
목이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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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상식
한명회 ....죽어서 모욕을 당하다
♡閔 福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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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3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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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관참시... 압구정엔 피빛 노을이 물든다. 그래도 압구정엔 권력이 있고 또 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