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짜리 홍보영화 한 편에서 이렇게 큰 감동을 받은 경험은 놀랍고 새롭다. 30분 내내 콧마루가 시큰거려 연신 손수건 신세를 져야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저시력 보조 앱 ‘릴루미노’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한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 얘기다. 릴루미노(Relúmĭno)는 라틴어로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허진호 감독은 릴루미노를 통해 엄마의 얼굴을 처음 본 시각장애인 아이가 놀라는 광경을 우연히 보고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단다. 연기자들 또한 시각장애인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영화 제작이 끝나자 곧바로 영상을 유투브에 무료 공개했다. 영화는 공개 7일 만에 조회 수 1천만 회를 돌파했다. 취지로 보아 릴루미노 역시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에게 저가로 보급하여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된 게 아닌가 싶다.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27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아주 안 보이는 전맹(全盲)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저시력 장애인이다. 즉, 릴루미노의 도움을 받으면 어느 정도 앞을 보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 눈앞이 다 훤해지는 느낌이다.
영화의 내용은 사진동호회에서 만나 취미활동을 함께 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밝고 쾌활한 분위기라 보는 내내 흐뭇하면서도 가슴이 벅찼다. 눈물을 흘린 것도 슬퍼서가 아니라 감동적이고 기뻐서였다. 동정 따위의 감정은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 평생 양호한 시력을 가지고 살아온 내가 과연 저들보다 더 건강하고 안정된 감정으로 살아왔는가 싶을 따름이었다. 나 자신 너무 밑바닥 인생을 살다 보니 평생 동안 감히 누구를 동정해본 적은 없다. 배경이나 음향도 대작영화 못잖게 최고 수준이었다.
출연배우 전원의 빼어난 연기력도 매우 돋보였다. 주연, 조연, 단역 할 것 없이 그 어떤 배우들보다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지나가다가 한지민이 시각장애인인 걸 알고 손을 잡아주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는 할머니 역의 단역도 천연덕스럽게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해냈다. 심지어 평생 발연기 지적을 받아온 신신애조차 이 작품에서는 인생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모든 연기자가 진짜 시각장애인인 듯 서로가 서로에게 눈이 되고 동무가 되어주며 오순도순 어울려 사는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여주인공 한지민은 언제나처럼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배우다. 감독이 허진호라는 얘기를 듣고 대본도 받기 전에 출연을 수락했다는 한지민, 그녀는 감독만큼이나 완벽하게 준비된 배우다. 오른쪽 눈동자는 정상위치에 그대로 둔 채 왼쪽 눈동자만 가운데로 모아 움직이도록 하는 연기-그녀는 반복된 연습을 통해 그런 연기가 가능했다고 하지만 그게 연습으로 될 성이나 싶은 경지인가? 게다가 촬영이 끝날 때까지 24시간 그 상태를 유지했다니, 작품에 임하는 배우 한지민의 프로의식이 깊게 가슴을 울린다.
한지민은 자원봉사 활동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해온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그녀는 봉사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대학도 사회사업학과를 나왔다. 자비로 국제구호단체에서 벌였던 자원봉사 내용을 담은 책자를 발간하여 자원봉사 확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사회복지 자원봉사 관리센터>에서는 한지민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나도 한지민처럼 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기도 했다. 외모와 마음씨가 동시에 예쁜 배우 한지민, 그녀의 행동은 언제나 감동과 깨우침을 준다.
남자주인공 박형석의 연기도 돋보였다. 그는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 출신 가수다. 그 동안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다는데,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초면이다. 영화로서는 데뷔작이라고. 그런데 연극영화과 출신이거나 연기학원에 다닌 배우처럼 표정, 동작, 대사 처리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눈동자가 일반인처럼 움직이지 않는 대신 미세한 근육의 떨림을 조절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시각장애인 연기를 저처럼 잘할 수 있다면, 다음부터는 어떤 연기든 제대로 해내지 않을까? 그가 부른 OST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나는 시각장애인과 가까이서 생활해본 적이 없어 그들이 얼마나 불편하게 사는지, 심리상태는 어떠한지 잘 알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 모든 시작장애인들이 저렇게 밝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얼마나 다행일까 싶었다. 오래 된 얘기지만 택시 일을 할 때 시작장애인을 두 번 태웠는데, 두 번 다 요금을 받지 않았다. 물론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요금을 받지 않았다. 자원봉사 활동을 해본 적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게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매우 고마워하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하던 두 시각장애인의 환한 표정이 상굿도 눈에 선하다.
첫댓글 오늘 아침,
금주의 인생극장에서
33년 만에 만난 한국산 쌍둥이 두 여인ㅡ
케이티외 아만다가 생각나네.
LA 케이티의 양어머니가 동생 아만다를 공항으로 보내놓고 남편에게
"너무 짧았어요. ...!" 라며 눈물을 훔치는데...
내가 어찌 감동의 눈물을 안 자아낼 수 있는가!
이 글도 인생극장의 만남과 깊이 너무 깊이 기꺼이 사랑함도 저무는 올해의 내 가슴을 더 편안하게, 따뜻하게 해주었네.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