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길상사
서울 성북구 길상사라는 절이 있다.
예전에 이곳은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요정이었다.
나라 고위층 인사들을 모시던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이 어떻게 절이 되었는가?
이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에게 기증을 한 것이다.
10년 가까운 기나긴 설득 끝에
법정 스님이 승락을 하였고,
1997년 드디어 창건된 절이다.
알다시피 법정 스님은 강원도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수행하며 지내신다.
가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길상사에 와서 법문을 베푸시는데,
이 책은 그런 법정 스님의 법문을 모아 놓은 첫번째 책이다.
길상사.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절간 풍경이 아름다웠다.
나중에 한번 꼭 찾아가 보리다.
1. 타임머신
이 책은 시대순으로 모아놓았는데,
보통 시대순이라 하면,
과거로부터 현재로 편집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가까운 날짜를 앞쪽으로 배치하였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거로 빠져들어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이었다.
각 법문마다 열린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러면, 그 날짜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 잠시 생각에 빠지곤 하였다.
그 당시,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이 책이 나처럼 독자로 하여금,
지나온 과거를 돌아다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러한 편집을 했다면,
그야말로 천재적인 편집이 아닐까 생각된다.
...
이 책을 읽을 때는 속독이 아닌 정독으로 읽어야 한다.
책과 함께 과거 속으로 들어가 법정 스님의 법문을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눈으로 읽을 때도 한 자 한 자 정독을 하였다.
그리고 입으로 읽을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조그맣게 소리를 내어 읽어 내려갔다.
법정스님의 말과 생각이 나의 입을 통해 다시 나의 귀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하나하나 머리 속에 새겨진다.
2. 일기일회(一期一會)
이 책의 제목은 일기일회이다.
한자로도 적혀 있어 뜻을 유추해 보았다.
이 책에서 일기일회의 뜻을 알려주었는데,
내가 유추했던 뜻과는 다른 뜻이었다.
역시 한문을 읽고 쓸줄 안다고 그 뜻까지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기일회.
오늘 우리의 삶도 단 한번이고,
지금 이 순간도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남만 또한 생애 단 한번의 인연이라는 뜻이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는 이 기적같은 순간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다.
법정스님의 책은 늘 나에게 채찍질을 해준다.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는 나를 채찍질하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는 나를 채찍질한다.
내일 내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데 먼 미래를 걱정해서 무엇하리...
3. 삶과 죽음
삶.
모든 것은 삶에서 시작되고,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하고, 기쁘고 슬픈 것이다.
모든 것은 삶의 뒷전이다.
삶.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욕심은 금물이다.
...
지난 주말에 TV 다큐멘터리 3일이란 프로그램을 봤다.
어느 유명한 숲의 이야기다.
그 숲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숲을 찾는 사람들이다.
암 말기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왔다.
나이가 적은 분들도 많다.
그분들을 보면서,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았다.
몸이 건강하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음이 우리를 피해가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우리 삶이 마감될 지 모른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런 삶이라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불교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 하루하루 나의 삶이 다음 생의 나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음 생 뿐만 아니라,
오늘의 나의 생활은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얼굴이 변한다.
그 얼굴은 그동안 나의 생활로 만들어진 얼굴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얼굴이 호남형에, 편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오늘 나의 행동은 다음 생의 나뿐 만이 아니라,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죽음.
그럼,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은 삶의 연장이다.
죽음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죽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매듭이라고 법정스님은 말씀하신다.
"죽음도 살아가는 모습으로 생각하라.
다음 생의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대신 순간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새롭게 챙겨라."
...
그래, 지금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
4. 무소유
내가 처음 읽은 법정 스님의 책은 <무소유>란 책이다.
이 <무소유>란 책은 법정 스님의 가장 대표적인 책 중에 하나이다.
이 <무소유>을 통해 법정 스님을 알게 된 나는
무한한 경쟁 속에서 앞만 보고 가는 나에게 뒤를 돌아다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수십년 몸에 배인 경쟁의식과
자본주의에 찌든 욕심과 집착이 여전하지만,
간혹 그런 경쟁과 욕심이 쓸데없는 것인데,
내가 왜 여기에 집착하고 있는가 자책하기도 한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무소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진정한 부자란 무엇인가?
나는 부자인가?
부자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들과 비교되는 상대적인 것도 아니다.
나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탐욕이 많다면, 나는 언제나 궁핍하다.
그 탐욕은 대개 물질에 관한 것이다.
물질은 한때이다.
영원하지 않다.
조급한 현대사회.
여유가 없다.
가득 채우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은 노자의 가르침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이 바로 동양의 가르침이다.
동양화에는 서양화와 달리 여백이 있다.
이 여백도 동양화를 운치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삶도 똑같다.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나는 행복한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왜일까?
언제부터 그랬나?
어떤 것이 인간의 진정한 삶인가?
가득 채우는 것인가?
부자가 되는 것인가?
어느날, 갑자기 건강을 잃는다고 생각해 봐라.
그때도 부자가 인생의 목표인가?
진정한 인간다운 삶.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때때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불행할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누구나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그 어려움을 피한다면..
가끔 생각한다.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짤리게 된다면...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요즘에는 만일 그런 일이 오면 내가 어떻게 대처할 지 궁금하다.
걱정은 별로 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쳐오면, 내가 어떻게 대처할 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이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 어려움없이 한 평생을 마치는 것..
삶에서 무엇인가 빼먹고 끝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어려움이 생기고 난 뒤,
지금 쓴 글을 보고,
멍청한 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마음을 깊이 새겨본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그 영원하지 않은 것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5. 베풀기
나 혼자는 살기 어렵다.
동일한 시대, 동일한 공간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나와 어떤 인연이길래,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공간을 살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가.
이런 걸 생각하면,
전쟁은 커녕 싸움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베풀어야 한다.
돈으로만 베풀라는 소리는 아니다.
마음을 베풀라는 것이다.
맑은 눈빛, 다정한 얼굴, 부드러운 말...
이것이 무척 쉬워보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도 나의 짜증이 전파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다짐을 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맑은 눈빛, 다정한 얼굴, 부드러운 말.... 돈도 들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 필요한다.
맑은 눈빛, 다정한 얼굴, 부드러운 말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름 사람도 그렇게 만든다.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파된다.
그리고 이런 베품은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지구도 포함된다.
우린 우리의 편의를 생각하고, 지구를 너무 망가뜨려놓았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
지구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미 늦은 감도 있다.
하지만, 늦었을 때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노력은 해야한다.
물론 개인이 한다고 큰 성과를 보이기는 어렵다.
지구위의 모든 나라들이 노력을 해야한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라들은
다른 나라보다 잘살기 위한 경쟁으로, 지구 살리기는 뒷전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구도 그렇다.
우리는 분명 후회할 것이다.
후세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살기 좋던 지구.
살기 어려운 지구로 만들고 있는 이시대의 사람들...
분명 후세로부터 욕 잔뜩 먹을 것이다.
지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냐면서...
다른 이유도 아닌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말이다.
나 또한 그리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나또한 큰 죄인이다.
지구, 미안하다.
후세들이여, 미안하다.
....
.....
이 책은 내 영혼, 나의 삶, 다른 사람의 삶, 지구의 삶...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내는 책이다.
법정 스님의 두번째 법문집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법정 스님이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우리에게 베푸셨으면 좋겠다.
책제목 : 일기일회
지은이 : 법정
펴낸곳 : 문학의숲
페이지: 389 page
펴낸날 : 2009년 05월 27일
정가 : 15,000원
독서기간: 2009.09.08 - 2009.09.11
글쓴날 : 2009.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