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을 위해
-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새벽 5시 -
여느 때처럼 G여고(女高)의 L선생, K선생과 3명이 출발하였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큰비도 거의 없었고, 태풍 한번 지나간 적이 없었건만 그래도 우리는 꿈꾸는 님과의 만남을 위해 매주 휴일이면 끈질기게 도전해왔다.
돌(石)은 도(道)로 통하는 것이라며,
한여름 뜨거운 돌밭을 종일 헤매어도 우리는 조금도 지루한 줄 몰랐고,
매번 빈손으로 돌아와도 아무런 서운함도 걸림도 없었다.
일상의 평범(平凡)을 떠나 모든 것 훌훌 벗어던지고,
꿈꾸는 만남을 위해 찾아 그냥 돌밭을 찾아 떠나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영겁(永劫)의 세월
매끄럽게 수마(水磨)된 한점 돌을 보며
끊임없는 화두(話頭)를 스스로에게 던지며
무애(無碍)의 걸림 없는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김천을 거쳐 점촌을 향해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선산휴게소에서 아침을 들었다.
1차 산지는 점촌 태봉의 맨 아래쪽 돌밭을 택했다. 그곳은 소품(小品)이 주류를 이루건만, 비교적 발길이 적게 닿고, 인연이 닿으면 잘 닳은 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L선생이 멋진 평원석과 변화석 한점을 만나 들뜬 나머지 무리하게 도하(渡河)를 시도하다가 물이 깊어 돌가방과 스틱까지 팽개치고 간신히 물속을 빠져 나왔다는 곳이기도 하여 어쩌면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기에 이곳을 택했다.
돌밭에 도착하였다.
보통 때는 아래쪽으로 향하였는데, 두 분이 아래쪽으로 가기에, 나는 왠지 보(洑)가 있는 위쪽으로 마음이 끌리었다. 물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 흐르고 있었다.
가운데 흐름을 택하여 아래쪽에서부터 찬찬히 물속을 살피면서 올라갔다.
거의 보(洑) 위쪽까지 도착하였을 때였다.
흐름의 가장자리 쪽에 까만 돌 한점이 보였다.
무심결에 집어 올려다보니 점촌 특유의 까만 오석(烏石) 변화석인데, 가운데 모래와 자갈이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느낌이 왔다.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물을 퍼서 모래와 자갈이 박힌 곳에 끼얹어보니,
스르륵 물이 그대로 스며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한 점했구나!’순간 머리가 띵하고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 하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물가로 가서 물을 계속 끼얹자,
서서히 투(透)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아! 그 터지는 기쁨!! 온몸을 휘감아 도는 짜릿한 희열(喜悅)!!
오리지널 석질(石質)에 그 어려운 구멍(透)이 두개나 뻥 뚫리었으니...
수석(壽石)의 세계에서 구멍 뚫린 투(透)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돌에 구멍이 뚫리자면 이질(異質)적인 요소가 끼어 있어야 되며,
또한 오랜 세월이 흘러야하기 때문이다.
투(透)는 막힘이 아닌 뚫림이요,
폐쇄가 아닌 열림이며,
구멍(穴)너머 저쪽은
인간사 고뇌를 벗어난 피안(彼岸)의 세계로 여기기 때문이다.
낭보(朗報)를 일행에게 알리고 싶었다.
‘지금 고함을 쳐서 불러 모아? 아니지.. 그랬다간 눈에 콩깍지가 끼어 더욱 보이지 않게 될 터인데...참자. 기다리다가 올라오면 그 때 보여주자’
터지는 기쁨을 억누르며 혼자 만끽하고 있노라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얼마 후 일행이 가까이 올라왔다.
“어이! 한점 했어?”
“아닙니다. 뭘 했습니까?”
“그렇다네. 한 점했네. 쌍투야”
“잘 하셨네요”
하지만, 두 분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투(透)라고 하면
흔한 옥석 자질의 조그마한 촌석(寸石)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다가온 두 사람에게 가방을 열어 돌을 꺼내 보여주었다.
“햐!! 정말 멋지군요! 명석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점촌에서 만난 것 중 최고인 것 같네요. 축하합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마(水磨)가 잘 된 소품 한점을 추가하고, 자주 들르는 수석 가게에 자랑겸 감정(鑑定)받기 위해 들르기로 하였다.
주인은 “정말 좋은 돌 하셨습니다. 오늘 한턱내고 가셔야지 그냥 가시면 안 되는 돌인데요” 그러면서 옆의 자기 친구에게,
“야!! 너는 뭣하냐? 이런 돌 안 가져오고...”
“태봉에서 이 잡듯이 뒤졌지만, 이런 돌은 없었는데....”
수반(水盤)에 이리저리 연출해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는
애마(愛馬)를 몰아 거창을 향해 달렸다.
거창에 도착하여 돌을 들고 돌방식당으로 향하니, K형님과 S사장님 두 분이 상주수석 가게로부터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야!! 이 교감, 정말 오늘에야 한점 했네 그려.”
S사장님도,
“이 교감, 나는 20여년을 점촌 돌밭을 다녔는데, 아직 이런 돌을 만나지 못했는데...”
K선생만 약속이 있어 먼저 가고, 나머지는 돌방식당에서 돌을 마주대하며
오랫동안 석담(石談)을 주고받으며 장원 턱으로 소주 5병을 비우고서야 일어섰다.
뜻이 있으면, 언젠가 길은 열리게 마련이라던가.
돌밭-
그 곳은 내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카타르시스(Katharsis:淨化法)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걸림 없는 해방감을 만끽하는 곳이다.
돌(石)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애석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세상-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건만, 같은 이는 둘도 없고,
코드에 맞는 이와의 만남 또한 쉽지 않다.
돌(石)-
지천으로 깔려 있지만,
돌다운 돌.
꿈꾸는 돌과의 만남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렵기에,
흔치 않는 그 잊히지 않는 만남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돌밭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리라.
- 돌은 결국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지라도-
- 2008년 9월의 끝자락에 거창여중 교정에서-
첫댓글 오메! 오랫만에 좋은 작품과 채석기를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그려 주었습네다. 축하 합네다!!!! 우리는 수석은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명석이 틀림없소이다. 다시한번 명품 채석을 축하합네다. 언제 한번 실물구경을 시켜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네다. ㅎㅎㅎㅎ
靜中動 이라 했던가 !! 모든 형상이 돌 하나에 녹아 있는 것 같습네다. 나도 한번 수석에 입문하여 선배님들의 한량없는 지도를 받고 싶습네다. 언제 한번 지도편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