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검습니다
아가서 1:4-5
2021년 11월 28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아가서는 해석자마다 그 해석이 다 다르다. 일치된 해석이 없다. 알레고리적 해석이 있고 문자적 해석이 있다. 알레고리적 해석은 상징적 혹은 은유적 해석이다. 유대인의 해석은 아가서가 야웨와 선민의 관계를 묘사하고 선민을 신부로 표현한다고 본다. 이 해석은 탈무드에 반영되어 있다.
기독교는 아가서를 신랑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사랑으로 본다. 오리겐은 아가서가 솔로몬과 바로의 딸의 결혼을 묘사한 것이라고 보지만, 그 영적 의미는 그리스도와 교회 혹은 그리스도와 개인 신자의 관계에 적용된다고 보았다(참고: Marvin H. Pope, the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 Company, 1985, 89).
아가서의 여인을 처녀 마리아로 보는 해석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처녀 어머니요 하늘 여왕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것은 장로교나 기독교에서 받기 어렵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그렇게 신격화 한다(참고: Marvin H. Pope, 90).
신부를 지혜와 동일시 하기도 한다(Don Isaac Abravanel 혹은 G Kuhn; 재인용 Marvin H. Pope, 90).
문자적 해석 방식 중에 연극 이론이 있다. 또 세속적 사랑 노래로 보는 해석도 있다(5세기 Theodore 혹은 19세기 Herder; 재인용 Marvin H. Pope, 90).
아가서에 대한 유대인의 고전적 해석은 탈무드, 탈굼, 미드라쉬 등에 담겨 있다. 주후 70년 성전 파괴와 주후 132년 바르 코크바 폭동 기간 사이에 아가서는 하나님의 임재, 쉐키나와 출애굽 이스라엘 공동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유대인의 알레고리적 해석이 발전했다. 에스드라서 하 5:24,26에 아가서에서 이스라엘의 상징적 이름을 사용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세상 모든 꽃들 중에 하나의 백합 꽃을 택하였나이다. 창조된 모든 새들 가운데 당신 자신을 위하여 하나의 비둘기에게 이름을 붙여 주셨나이다." 랍비 아키바는 아가서를 거룩하고 거룩한 노래로 해석하는데 기여했다. 아키바에게 "전세계는 아가서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그 날 만큼도 가치가 없었다."(미쉬나 야다임 III 5; 재인용 Marvin H. Pope, 92).
1: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아가 1:4 KRV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갈때 만군의 주님 의 임재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 앞에서 그 길을 인도했다. 그 세대의 성도가 노래했다. "만군의 주님이시여, 우리가 당신의 이끌림을 받겠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선한 길을 따라 달려가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시내산 기초 가까이 이끄시고 당신의 하늘 보물 집에서 당신의 법을 우리에게 주소서. 그러면 우리는 즐거워할 것이며 그것들이 쓰여진 스물 두개의 글자로 기뻐하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마음에 둘 것이며 당신의 하나님 되심을 사랑할 것이고 민족들의 우상들로부터 우리가 떠나리이다. 그리고 당신 앞에 의를 행하는 모든 의인이 당신을 공경하며 당신의 계명들을 사랑하리이다."
탈무드에 의하면, 랍비 아키바는 하나님의 임재의 가장 깊은 비밀이 있는 낙원으로 하나님을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섬기는 천사들이 그를 밀쳐내려 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 장로를 그냥 두라, 그는 나의 영광을 함께 할만 하다." (탈무드 TB Hagigah 15b; 재인용 Marvin H. Pope, Song of songs, the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 Company, 1977, 306).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아가 2:8 KRV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시편 147:15 KRV
1:5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가 1:5 KRV
5a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과 견과류 농장에서 일해서 햇볕에 피부가 거무스름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그을렸다.
욥은 살이 검어졌다. 햇볕에 의한 것도 있지만 온 몸에 피부병이 든 결과다. 심적 고통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근심이 많아지면 얼굴에 기미가 끼는 수가 있는 것과 같다. 마음의 병이 신체의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 검어진 살을 가지고 걸으며 공회 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욥기 30:28 KRV
레위기는 피부 질병을 진단하는데 피부 상태와 털의 색을 관찰했다.
만일 제사장의 보기에 그 옴의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없으면 제사장은 그 옴 환자를 칠일 동안 금고할 것이며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옴이 여전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났으면 그 옴은 나았고 그 사람은 정하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진단 할지니라
레위기 13:31, 37 KRV
노랗고 병든 털이 있는가 관찰했다.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아가 5:11 KRV
상대 남자 연인의 머리털을 까마귀 같이 검다고 표현했다.
피부나 머리털이 검다 혹은 거무스름하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로 여겨진 것이다.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스가랴 6:2, 6 KRV
두 번째 병거의 말은 적색, 백색, 어룽진 색과 대조되는 검은 색이다. 검다는 것은 반정립 (antithesis)의 의미이다. 정립은 몸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희고 붉다고 표현한다. 다음 두 구절을 보라.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나다 아가 5:10 KRV
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어 그 윤택함이 마광한 청옥 같더니
예레미야애가 4:7 KRV
아름다움과 건강을 희거나 붉다고 하고 그 반대를 검은 색으로 여기는 것은 붉거나 흰색이 정상의 피부 색인 경우만 적용할 수 있다. 여기 검다는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어서 실내에서 얼마동안 계속 지내면 다시 피부가 흰색으로 돌아오게 된다. 게달의 장막처럼 광야에서 노출되면 검게 변한다. 다음 구절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내용이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민수기 12:1 KRV
미리암과 아론은 구스 여인과 결혼한 모세를 비난했다. 이때 야웨께서 직접 모세를 변호하시고 미리암과 아론에게 진노하셨다. 미리암은 칠일동안 나병이 걸려서 격리되는 벌을 받았다. 하나님은 모세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참소자들인 아론과 미리암에게 화를 내시고 벌하셨다. 모세의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보건대, 라쉬(Rashi)는 "모든 이가 구스 사람들의 검은 것을 인정하듯이, 모든 사람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인정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Marvin H. Pope, 308).
오리겐은 신부를 이방인들 중에서 모여진 교회로 해석했다. 유대교 회당은 이방인들의 교회를 검다고 헐뜯는다. 이에 대해 교회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예루살렘 딸들아 나는 참으로 까맣다. 나는 유명한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모세 율법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내게는 창조시 받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당신들은 나의 검은 것을 게달의 장막과 솔로몬의 휘장에 비교한다. 그러나 게달은 이스마엘의 두 번째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복의 분깃이 없었다(창25:13, 16:11). 너희는 나를 솔로몬의 휘장에 비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장막의 휘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출25:2이하).
예루살렘의 딸들아 너희는 나의 검은 것을 비난하려고 드는구나. 미리암이 검은 이디오피안 아내를 맞이한 모세를 대적하다가 벌을 받은 것을 너희는 잊었단 말이냐? (민수기12장). 나는 그 이디오피안 사람이다. 나는 실로 검다. 그러나 나는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아름답다.
5b 예루살렘 딸들
예루살렘 혹은 시온의 딸들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예루살렘 딸들이 결혼식 여성 하객이라는 '자연주의자' 가설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온갖 결혼 예식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지그프리드, Siegfried). '연극 이론'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딸들은 왕궁 하렘의 여성들이다. 하렘은 친척을 제외한 남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장소나 집을 의미한다. 주로 이슬람 권에서 썼던 용어이다.
호세아 2:4-7에 예루살렘 혹은 이스라엘을 의인화 한다.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호세아 2:4-7 KRV
예루살렘 혹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가 꾸짖고 있다. 본 남편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이방신들이 떡, 물, 양털,삼, 기름, 술 등을 준다고 착각하는 이스라엘의 방탕함과 어리석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햇빛과 비를 내리시고 의식주를 공급하시는 신랑되신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모르는 이스라엘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혼내시는 것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을 의인화하여 율법을 순종하고 따르는 경우와 배역과 불순종하는 현실을 비교한다. 로버트(Robert)는 아가서의 그런 고전적 의미의 표현, 즉 신랑과 신부의 관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묘사한다고 해석한다. 예루살렘 딸들은 그 도시의 주민이다. 예루살렘이 여성형으로 의인화되어 신부의 역할을 한다.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아가 3:11 KRV
예루살렘의 여성들, 즉 주민들을 초청하고 있다. 솔로몬 왕이 그의 결혼식을 위해 쓰고 있는 면류관을 보라고 화자가 초청한다. 여기서 화자는 아가서 저자이거나 저자가 세운 페르소나(가면) 이거나 '신부(화자)' 이다. 여가서는 신부가 화자로 보인다. 로버트에 의하면 그 신부는 조금전 혼자였고 독백을 하고 있었다. 이제 시온의 딸들이 출현하여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고대 비극에서 '코러스(합창)'를 연상시킨다. 제의적 해석에 따르면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성한 결혼 예식에 참석하고 목격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의식 진행 요원, 가수, 댄서, 관중 등이 포함된다.
5c
장막들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가 4:14 KRV
1:5c의 '장막' 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아홀'과 4:14의 하브리어 단어 '아할로트' 즉 '침향'이 비슷한 단어여서 '장막'을 '침향'으로 착각할 수 있다.
'게달'
게달은 북 아라비아 족속인데 이스마엘 자손으로 추정한다.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창세기 25:13 KRV
플리니(Pliny)는 '게달'이 나바티안 족속의 세다(Cedrae)인과 연계된다고 주장한다. 랍비의 용어는 아랍을 집합적으로 '게달'로 부른다. '아랍어'는 "게달 어"라고 한다. 유대교 분파 중에 카라이트(Qaraite)가 있다. 카라이트 주석가 예페트 벤 알리는 게달을 선지자 무하마드 지파의 이름, 쿠라이쉬(Quraish)로 대체했다. "그녀의 검은 피부 색은 쿠라이쉬 장막처럼 검다."
5d
휘장(pavilions)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가 1:5 KRV
'휘장'은 일종의 커튼이다. 고디스(Gordis)는 "솔로몬의 휘장"을 '아론의 수염'처럼 일반적 용어로 보았다. 그러나 마그누스(Magnus)가
시적 평행법으로 옳게 해석했다. 즉 '오헬', "장막"의 환유어로 '예리오트', "휘장"이 쓰인 것이다.
'휘장'은 야웨의 광야 거주(임재)에 쓰인 "장막" 혹은 "성막"에 적용된 용어이다(출26장). "휘장"은 염소털로 짠 것인데 장막의 지붕을 덮는데 쓰였다. 휘장 즉 커튼은 우리의 생각에 커튼의 개념처럼 창문을 가리는 용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휘장은 지붕을 덮는데도 쓰였다. 휘장은 벽과 지붕을 가리거나 덮는데 쓰인 것이다. 다음 구절은 그것이 염소털로 만든 것임을 알게 한다.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열 한폭을 만들찌며
출애굽기 26:7 KRV
'칠십인역'과 '벌게이트'는 '예리오트' 즉 휘장을 "가죽"으로 잘못 옮기고 있다(Marvin H. Pope, 319). 카시오도러스 (Cassiodorus)는 장막이 죽은 짐승들의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니, 장막, 즉 교회는 욕심과 정욕에 대하여 스스로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같은책, 319).
솔로몬의 이름은 가장 부유하고 화려한 이스라엘 왕을 연상시킨다(Schmokel, 1956, 51n3). 텐트를 구성하는 천은 햇빛, 비, 눈, 바람, 먼지 등 날씨와 대기에 노출 되어서 낡고 어둡고 더러워진 외관으로 변한다. 그래서 그 신부의 낮은 신분은 예루살렘의 딸들과 대조되는데, 게달의 장막이 솔로몬의 휘장과 다른 것과 유사하다(E.F.F. Bishop, 1967, 21). 그러나 포프(Pope)는 신부의 검은것과 예루살렘 딸들이 창백하다는 생각이나 게달의 검은 텐트와 솔로몬의 휘장의 밝은 색은 순전히 공상적이라고 본다. 신부는 베두인 텐트처럼 검고 아름답다. 탐슨( W. M. Thomson)은 "검은색 텐트도 초원의 숲에 새롭게 펼쳐지면 매우 예쁜 모습이 되고, 특히 저녁 노을 햇살에 더욱 아름답다."고 했다(171).
5.
탈굼에서 검은색은 이스라엘이 송아지를 만든 때의 모습이라고 보았다.
이스라엘 집이 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그들의 얼굴은 게달의 장막에 거하는 에디오피아 사람들처럼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했을때 그들의 죄가 용서받았을때 그들의 얼굴은 천사처럼 귀한 빛이 났다. 그들이 성막의 휘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야웨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셨고 모세는 궁창으로 올라가서 그들과 그들의 왕 사이에 평강을 이루었다.
미드라쉬 랍바(Midrash Rabbah)는 다양한 해석을 한다. 애굽의 이스라엘은 반역으로 검었으나 유월절 피와 할례로 예뻐졌다. 호렙에서 반역으로 검었으나 순종으로 예뻐졌다(시편106:19, 출24:7). 열두 정탐꾼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의 담대하고 긍정적 보고에 비하여 부정적 보고를 한 열명의 정탐꾼의 보고에 휘둘린 이스라엘 백성은 검어졌다(민13:32, 32:12). 싯딤에서 이스라엘이 음행할 때 검어졌으나(민25:1), 비느하스의 행위로 예뻐졌다(comely; 시편 106:30). 아간의 죄로 검어졌으나 여호수아의 열심으로 예뻐졌다(여호수아7:1, 19). (Pope, 320-21).
레비(R. Levi ben Haytha)는 이 구절(1:5)을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 "주중에 나는 검고 안식일에 사랑스럽다(comely). 년중 모든날 검고 속죄일에 사랑스럽다. 이 세상에서 검고 저 세상에서 사랑스럽다."(Pope,321).
이것은 우리가 대표 기도할 때 하는 내용과 비슷하다. "주중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 일에 짓눌려 살다가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왔나이다."라는 식이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과 목동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솔로몬이 끼어 들었다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목동에게 보내준다는 해석 등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아가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혹은 하나님과 교회의 사랑 즉 신랑 하나님과 신부인 교회의 사랑을 말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신부된 교회의 지체로 은혜와 사랑이 더하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