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족(중국어:纳西族, 納西族, 영어:Nakhi, 납서족)은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고대 강족의 한 가지이며, 모계 중심의 부족으로 일처다부제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나시족이라는 이름은 1954년에 정식으로 붙은 이름이며, 윈난 성 북부를 중심으로, 쓰촨 성 남부나 티베트 자치구 동부의 망캉 현에도 일부 분포한다. 민족 자치구역으로서는 지급시인 리장 시에 소속하는 옥룡 나시족 자치현이 있지만, 리장 시 중심부인 커우청구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2000년의 인구조사에서 중국 내의 나시족 인구는 308,389명이었다.
챵족(羌族, 강족)은 칭하이 성에 사는 티베트, 유목 민족(몽골족의 일부), 한족, 혼합 민족이다.
약 2만년 전부터 현재의 칭하이 성에 사람이 거주했으며, 이 당시의 주민은 주로 창족(羌族)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61년에 한나라(漢)가 창족을 평정하고 7개의 현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한족이 유입되어 한족과 창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창족의 경우 단일 민족으로 보기 어렵다. 심지어 거의 대부분의 중국 소수 민족들도 단일 민족은 아니다. 칭하이 성에는 티베트 사람들이 어느정도 살았지만, 중앙 아시아 여러 민족(회족, 이란, 유목 민족)도 살았다. 또한 후에 한족도 들어오는데 한족의 범위도 넓고 토착 칭하이인과 융화하므로 정체성도 다양해졌다. 일반적으로 창족이라고 하면 티베트계라기 보다는 몽골에 가까운 민족으로 생각되어 지기도 한다. 따라서 칭족을 단순히 티베트 민족이라고 정의되지 않는다. 칭하이 지역에는 이란계 소그드인도 존재하였다.
오호십육국시대에 창족은 중국의 영토로 침입했으며, 창족이 세운 후진(後秦, 384년~417년)은 요장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다. 후진은 건국자의 이름을 따서 요진(姚秦)이라고도 부른다.
나시족은 원래 모성 사회로 가정 등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높다. 『할머니방(祖母部屋)』은 이것을 상징하는 일례이다. 할머니방은 한 집안의 어른인 최연장 여성이 사는 방으로, 이곳에 선조의 제단 등이 있으며 집안 내의 미성년자들은 모두 이곳에서 살게 되어 있었다. 지금도 오래된 집에는 이 방이 있다고 한다. 나시족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숭배하며, 티벳불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나시족의 마을에서 티벳불교의 건물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리장에는 작은 시내가 많이 있고, 중주에 생명이나 죽은 사람 등을 제사 지내는 여러 색의 제단이 있다.
나시어는 티베트-버마어족 그룹에 속하며, 민족적으로는 이족이나 리수족에 가깝다. 단지 한족과의 왕래가 많아, 대부분 중국어도 할 수 있다. 나시족은 동파문자라고 칭하는 상형문자를 가지고 있지만, 종교적으로 사용될 뿐이었고, 별도로 표음문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은 별로 사용하지 않고, 1957년에 제정된 라틴문자로 표기를 한다. 동파문자는 지금도 종교의식에는 사용되며 원시불교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져 세계 유일의 현존하는 상형문자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동파궁(자료관)에는 춤의 악보 등이 전시되어 지금도 볼 수 있다.
진나라 대의 마사이(摩沙夷), 당나라 대의 마사만(麽些)을 기원으로 하여, 쓰촨에서 남하해 진샤 강 유역에서 번영했다. 당대에는 티베트 왕조나 남조의 지배를 받았고, 원나라, 명나라 시대에는 나시족 수령이 토사로 임명되어 중국왕조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명대의 나시족 수령 목씨는 려강(지금의 진사 강) 지역 토관으로 임명되었지만, 청나라 때에는 직접 통치를 하는 지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