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존재의 불안과 시간의 상처를 담은 시적 사유
– 김흥열 시조집 『명동 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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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열 시인의 시조집 『명동 뻐꾸기』는 전통 시조의 형식적 엄격함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주제와 감성을 풍부하게 담아낸 작품집으로, 시조 문학의 전통과 현대성을 동시에 탐구하려는 시인의 치열한 노력과 성찰이 돋보인다. 시조집의 제목이기도 한 「명동 뻐꾸기」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서울의 명동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도시의 얼굴과 그 안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뻐꾸기'는 제 둥지를 틀지 못하고 떠도는 새로서, 도시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이질감과 부적응의 정서를 강화하는 메타포로 활용된다.
김흥열 시인은 이 시조집에서 전통 시조의 정형미를 철저히 따르면서도, 현대적 시선과 주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시조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시조는 본래 일정한 형식을 유지하는 정형시이지만, 김흥열 시인은 그 틀 안에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시조집의 표제 시조 「명동 뻐꾸기」는 이러한 시인의 시도와 접근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명동’은 단순한 도시 공간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그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무대로 그려진다. “해마다 오던 봄이 발을 끊은 명동거리”와 같은 구절은 명동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안정적이고 따뜻한 곳이 아니라, 변화를 강요하는 장소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뻐꾸기’는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로,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시적 성찰이다. 시인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의 소외와 불평등,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시조 「명분 없는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현대의 국제적 갈등 상황을 다루며, 전쟁의 비참함과 무의미함을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통곡마저 허물어진/ 잔해 더미 파헤치며”라는 표현은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그 참혹한 현실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철모에 묻은 피를 먹고 자란 산나리는/ 진군나팔 불고 있던 나팔수의 환생인가”라는 구절은 전쟁에서 생명을 잃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역사적 고통과 그 연속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시인은 단순히 전쟁의 파괴적인 결과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적 소용돌이를 깊이 탐구한다.
또한, 시조 「백마고지 유해 발굴 현장」에서는 한국 전쟁의 상처를 다시 불러내어, 잊혀진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되살리고 성찰하게 한다. 이 시조는 전쟁이 남긴 상흔과 그로 말미암아 잊혀진 고통을 환기하며, 전쟁의 잔해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과거의 아픔을 되돌아보게 한다. “포성이 겹겹 쌓여 산이 된 고지에서/ 풀뿌리에 휘감겼던 칠십 년이 눈을 뜬다”는 구절은 역사적 비극이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음을 상기시키며,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과 고통을 되살려낸다. 김흥열 시인은 이처럼 역사적 상처를 시조라는 전통적 형식 속에서 다루며, 그 상처가 단순히 과거의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문제임을 강하게 주장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시적 탐구도 이 시조집의 중요한 요소로 나타난다. 시조 「관악산의 여름」과 「봄을 만나다」 등에서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고 그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적 요소로 활용한다. 「관악산의 여름」에서는 산과 나무, 바람 등의 자연 요소들이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며, 그 속에서 인간은 자연과 교감하고 상호작용하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산이 빚은 초록 바다 그 파도를 타고 가면”과 같은 구절은 자연의 거대한 생명력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겸손과 경외심을 담고 있다. 또한, “봄을 만나다”에서는 봄이라는 계절적 변화가 단순한 자연의 순환을 넘어, 새로운 시작과 희망의 상징으로 작용하며, “봄 아씨 마중 나온 개암나무 수렴 꽃은/ 갓 꺼낸 왕관이던가"라는 표현은 자연의 섬세한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생명력과 재생의 힘을 노래한다.
김흥열 시인의 시조들은 이렇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인간의 삶과 그 내면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시적 시도들을 드러낸다. 그의 시조에서 자연은 인간의 감정과 삶의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로, 시적 주제와 정서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김흥열 시조는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탐구하고자 하는 철학적 접근을 보여준다.
김흥열 시인의 시조집 『명동 뻐꾸기』는 전통 시조의 형식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주제와 감성을 통합하려는 시도들이 돋보이는 작품집이다. 그는 전통 시조의 형식미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시조 문학이 지닌 고유의 미학적 가치를 현대의 독자들에게 새롭게 제시하려 한다. 시조의 첫째 가치는 그 정체성을 지키는 데 있다고 말하는 김흥열 시인의 입장은, 그가 시조의 전통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의 시는 현대 사회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불안과 고독,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시적으로 담아내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조집은 전통과 현대, 형식과 내용을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시조라는 장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감상을 선사한다. 김흥열 시인은 고시조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현대적 감성과 시대적 문제의식을 담아내어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 그의 시조들은 현대적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으며, 사회적 불안과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는 시조라는 전통적 형식이 여전히 현대 문학에서 유효하며,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흥열 시인의 시조집 『명동 뻐꾸기』는 전통 시조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중요한 문학적 시도이며, 한국 문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을 가치가 있다. (북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