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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aid Peter,
"you shall never wash my feet."
Jesus answered,
"Unless I wa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
*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묵상글 *
어제는 제 컴퓨터에 있는 자료들을 정리했습니다.
정리를 해놓아야 나중에 그 자료가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에,
이제까지 써왔던 새벽 묵상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1년 6월 14일에 썼던 첫 번째 글입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하지요.
저는 가톨릭 신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마 제가 신부이기 때문에
성당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답니다.
프로그램…….
올해 제 소임이 컴퓨터 프로그램 공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거든요.
5개월 째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잘 되지 않네요.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면서…….
그런데 저에게는 잘 되지 않는 공부보다도 더 큰 고민이 생겼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프로그램을 공부하다보니
제가 신부인지, 프로그래머인지를 모르겠더군요.
분명히 신부가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항상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 신부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저에 대한 정체성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매일의 묵상을 통해 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그래야 제가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글은 새벽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글입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능력이 될 때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많은 격려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얼마 못가서 멈출 것이라고 스스로 예상했던 이 새벽 묵상 글이
바로 오늘 2007년 4월 5일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양이 어마어마하네요.
한 해에 4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니,
지금까지 총 2,400페이지가 넘습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의 두께가 상당합니다.
총 450페이지입니다.
두껍지요?
그런데 제가 이제까지 쓴 양은 이렇게 두꺼운 책의 5배가 넘습니다.
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제가 한 번에 그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하루에 한두 장씩 썼던 것이 모아져서 지금의 숫자가 나올 수가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신앙도 이렇지 않을까요?
단번에 얻는 신앙이란 없습니다.
제가 매일 조금씩 써서 그렇게 많은 양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조금씩 주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주님 앞에 나와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한 번에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욕심 가득한 신앙만을 주님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발은 못 씻는다고 했지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시자 발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즉, 단번에 모든 것을 얻으려는 욕심 가득한 신앙을 베드로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체험한 뒤에야
그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거하게 되었던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나의 모습 역시 욕심 가득한 신앙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과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씻어 주세요.
- 인천교구 간석4동 본당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의 묵상글 *
<성 목요일에 체험하는 은혜 한 가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또 다시 성목요일입니다.
오늘은 저희 사제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사제들의 생일’과도 비슷합니다.
오전에는 교구 내 모든 사제들이
주교님을 중심으로 주교좌성당에 모입니다.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지요.
미사 중에 사제들은
서품식 때 발했던 독신서약과 순명서약을 다시 한 번 갱신합니다.
주님의 사제로 새롭게 태어났던 그 은혜로운 기억을 되살립니다.
더불어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이 수행했던 사제직분을 돌아봅니다.
부족함을 주님께 용서청하며 다시금 자신을 추스릅니다.
그리고 주교님들께서는 사제들의 생일을 맞아 한 턱 내십니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치러야할 또 다른 큰 행사가 남아있습니다.
주님 만찬 저녁 미사입니다.
사제들은 미사 가운데 세족례를 거행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셨음을 기억하며
사제들 역시 신자들의 발을 씻어줍니다.
세족례를 거행할 때마다
제 개인적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은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신자들의 발에 물을 부을 때마다
저는 이천년 전 한없이 겸손했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보는 느낌을 갖습니다.
신자들의 발을 수건으로 닦아줄 때마다
부족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제게 전해져오곤 합니다.
또 다시 성목요일을 기다리며 사제직의 본질을 생각합니다.
사제직은 결국 봉사직이라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사제직은 올라가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데 의의가 있음을 상기하겠습니다.
은총의 성목요일,
다시 한 번 봉사하는 사목자,
내려가는 사목자,
겸손한 사목자로 되돌아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모든 사목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참 사목자 한분이 계십니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지지난해 10월, 5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철저한 나눔과 봉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각막과 신장, 간장, 심 판막과 연골 등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웃과 나누면서 떠나가셨습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삶 자체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보여주고 떠나가신 목사님의 삶과 죽음은
성목요일을 지내는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다음은 전생수 목사님이 남기신 유언입니다.
오늘 하루 제 삶의 이정표로 삼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다른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사람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고
사람들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며
세상의 마음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노라.”
(전생수 / ‘더 얻을 것도 더 누릴 것도 없는 삶’에서)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 이홍일 신부님의 묵상글 *
<베드로처럼>
베드로는 거절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맞다.
하지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살아가면서 가끔은 거절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인간적으로 내게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그러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거절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사제로 바라보고,
나는 인간으로서 나를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사제로서의 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이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사제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큰 짐으로 다가온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그 사실을 거부하고 싶어한다.
“제 발은 절대 씻지 못하십니다.” 한 베드로처럼.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내가 싫더라도 그분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이러한 삶은
때로는 일치할 수도 있고,
때로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거절하고 싶지만 거절할 수 없는 그분의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앙으로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 인천교구 동춘동 본당
* 김시영 베드로 신부님의 묵상글 *
<주님의 만찬은 우리 삶의 이정표>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신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만찬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두 가지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는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남기신
"나를 기억하라" (1고린 11, 24-25)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 (요한 13, 14)는 말씀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며 "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간단 명료한 말씀이지만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누구나 기억하도록 말씀하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몸이 갈기갈기 찢긴 당신의 희생과 정신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희생과 정신에 참여할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고,
우리 자신의 희생과 봉헌도 다짐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의 몸과 피를 모두 나눠준 것처럼
우리 또한 아낌없이 나누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나눈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심지어 내 몸과 피까지 송두리째 내어주는 것임을
몸으로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보기로 내가 나눔의 방법을 보여 줬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잡아 먹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우리, 이웃과 우리의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들고
희생과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섬김의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제자들의 발을 직접 당신 손으로 씻어 주시면서 종노릇을 하신 것은
종이 주인에게 하듯이 그렇게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만한 주인처럼 '내 발을 씻어봐라' 했으면
예수님은 더 이상 하느님의 아들도 스승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스승이신 예수님은
당신 친히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무릎을 꿇은 채로 하나하나 정성껏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섬김의 표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체 부위 중에서 가장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발을 직접 씻어 준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친히 씻어 주시면서 섬김의 삶을 보여 주셨고,
우리 또한 남의 발을 씻으면서 섬김의 삶을 살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나눠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한마디로 '사랑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임을 몸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그 마음을 바로 이해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그렇게 이웃을 열심히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밀알이 으깨져서 빵이 되듯이
내 자신이 그렇게 빠개져서 남에게 빵이 되는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다.
냄새나는 발을 씻어주면서
한없이 섬기는 모습으로 사랑을 할 때
언젠가는 벗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으며,
원수마저도 사랑하기를 원하신 예수님의 말씀 또한 실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학식이 뛰어나거나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결코 아니지요?
진정 위대한 사람의 척도는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의 빵이 되고 음료가 되었느냐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남의 발을 씻어주며 종노릇을 했느냐에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주님의 만찬 미사를 거행하면서
"나를 기억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더 기억하도록 합시다.
나아가 이 말씀이 매일의 삶에 이정표가 되도록 다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