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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3-2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석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마음들이 그리운 고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골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이 너무 막혀, 오히려 고향에 살고 있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만나기 위하여, 서울로 역귀경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래저래, 추석 명절 기간 동안, 도로가 막힘을 알면서도, 그리움과 보고픔으로 오고가는 발걸음들이 많아졌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가까이 해야 할까요? 어디에 우리의 관심과 애정을 주고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의 마음이 항상 향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무엇을 가까이 하든지, 닮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므로, 세상을 가까이 하여, 세상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주 계속 이어지는 추석 명절 연휴 기간 동안,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73편을 보면, 표제어에, “아삽의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삽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삽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 활동하였던 성전 찬양대의 대장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할 사람을 세웠는데, 그 중심인물이 아삽이었습니다. 아삽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150편 가운데, 50편과 73편에서 83편까지, 도합 12편의 시편이 “아삽의 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삽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들도, 계속해서 성전 찬양 사역을 맡았으며, 바벨론 포로 후에도, 찬양대 역할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담당하던 아삽은 세상 돌아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자기의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음에, 몹시 괴로웠습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당하고 공평한 세상인가?” 이해해보려고 애를 쓸수록, 그의 마음은 괴로웠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아삽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 특별히 온갖 불의와 불법을 저지르는 악한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도 잘 먹고 잘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가?”
악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지, 그들이 하는 일마다, 아주 잘 되는 것을 볼 때, 아삽의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 이해되지 않는 불공평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아삽은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입니다.
아삽은 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불법과 부정한 일들을 멀리 하고,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만나든지, 의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이 형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 온갖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며 사는 사람들이 왜 형통한 것인지, 그가 가진 모든 지식을 다 동원하여,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악인의 그 형통함을 부러워할 때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의인이든, 악인이든, 형통한 것을 볼 때, 그런 사람들이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들보다도 저 멀리 앞서 나아가는 것을 볼 때, 어찌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는 사람이든, 잘 모르는 사람이든, 누군가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하면, “부럽다”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아삽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매일, 아침과 저녁,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악인의 형통함을 생각할 때에, 고민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의로운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들이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찬양하는 일을 담당하고자,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다가, 하나님을 만나고서, 그에게 있었던 고민과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에, 그의 고민과 갈등은 깨끗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아삽은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16-17절)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고민과 갈등들이 깨끗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소인 교회에 나와,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어디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어디 가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디 가야 우리의 고민과 갈등을 해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교회에 나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추석 명절인데,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어디에 계시든지간에,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나올 때,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나와야 할까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그런 거룩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돌보아주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주여,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나를 만나주옵소서.”
“주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나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옵소서. 열두 바구니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형통함과 평안과 건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여, 주님의 응답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나의 고민과 갈등을 깨끗하게 해결하여 주옵소서. 염려와 걱정, 슬픔과 아픔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이런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열망이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나오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사랑, 자유와 평안,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달픈 세상,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길을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길을 가는 동안에,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것들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다 한번 스쳐 지나가듯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꼭 붙들어야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악인의 결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대부분, 앞부분에서는 악한 사람이 형통합니다. 드라마 중에서도 막장 드라마라고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를 보면, 선한 주인공보다는 악인들이 더 형통합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일들을 조종합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들의 생각대로 돌아갑니다. 그들의 형통함이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말은 어떻습니까? 대부분 악인이 망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권선징악으로 끝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들은 드라마처럼,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뿐만 아니라, 다음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아삽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악인의 결말이 어떠함을 분명하게 알게 된 다음부터는 악인의 형통함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인의 형통함을 무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때나마,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했던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아삽은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22절)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나는 우둔하여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라는 그런 말입니다.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했던 자기 자신이 짐승과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떤 흉악한 범죄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흉악한 범죄를 그대로 모방하여, 그보다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악한 것을 가까이 하거나, 따르거나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23-24절 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아삽은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내 오른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주님은 나를 영광으로, 영생으로,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시고, 능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그리하여, 마침내,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은 나와 항상 함께 하여 하십니다. 주님은 나약한 내 오른손을 강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주남은 귀하고 복된 말씀으로 나를 선한 길로, 생명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주님은 나를 영광으로, 영생으로,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아삽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나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면서, 고민과 갈등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하나님을 만나고나서, 그러한 모든 문제들이 사라졌습니다. 분노와 시기와 질투가 사라지고, 그의 입에서는 멋진 신앙고백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25-26절 말씀입니다. 아삽의 또 다른 신앙고백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아삽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도,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입니다. 이 멋진 신앙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7-28절 말씀입니다. 아삽의 또다른 신앙고백입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아삽은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불법과 부정이 판을 치고,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예기치 않고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많은, 이 험한 세상, 이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예수님을 믿고, 영혼이 잘되었습니다. 범사도 잘 되었습니다. 영육간의 강건함을 얻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힘만 가지고서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감으로, 주님의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오직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에 승리함으로, 우리 인생이 승리하게 하여 주옵시고,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