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그의 <인연>의 한 구절을 내 글에 인용하기도 했지만
어쨌던, 아사꼬(朝子). '인연'의 주인공이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만나고,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꽤 있었나보다.
KBS에서든가 (기억 가물) 아사꼬의 얼굴이 공개된 적이 있다.
언제 사진인지 모르겠으나
어느 졸업 앨범에서 간신히 찾아낸 아사꼬의 얼굴이다.
미국에 가 있는 아사꼬의 현재 모습을 찾아보겠다는 말에,
금아 선생이 한사코 만류했다고 한다.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고
인연에 얽힌 필자의 아름다운 회상을 깔끔하게 표현한 글로,
73년 수필문학을 통해 발표된 이 글은 이야기 전개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한 편의 꽁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
도입부분은 성심여대의 출강, 본문은 지난날의 회상,
끝 부분은 만남과 인연을 생각하는 현재로 다시 돌아오는데
회상부분에는 아사꼬를 만나고 헤어진 20년의 세월이 정교하게 축약되어 있다.
첫 번 헤어질 때 아사꼬는 지은이의 목을 안고 뺨에 입을 맞췄고,
두 번째는 가벼운 악수를 했고,
세 번째는 악수도 없이 절만 몇 번씩 한다.
서로의 몸이 닿는 면적이 자꾸 줄어드는 만큼 친밀감도 조금씩 줄어든다.
처음 만났을 때 아사꼬는 스위트 피이 같이 어리고 귀여웠고
두 번째는 목련꽃 같이 청순하고 세련되었으며
세 번째는 시드는 백합같이 초라해져 있었다.
세 번 모두 아사꼬는 꽃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어릴 적 아사꼬는 학교에서 햐얀 운동화를 보여주었고
여대생 아사꼬는 학교에서 연두색 우산을 가지고 나온다.
<셀브르의 우산>이란 영화를 봐도 아사꼬를 연상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란 소설에서도 아사꼬를 연상한다.
하양과 연두, 영화와 소설, 지은이는 구태여 의식하지 않았을지라도
<인연>은 이렇듯 치밀한 짜임새를 획득한 수필로 지은이가 만났던
'아사코'와의 만남과 헤어짐에 얽힌 추억을 소재로 인연이란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작품...
하여간 이 작품은 이러한 점강적인 의미 전개가
곧 이 작품의 제목인 '인연'과 맞닿아 있으며,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끝 부분은 아사코에 대한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피천득의 수필 세계의 특징인 간결하면서 부드러운 문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 희선,
작자 피천득 (皮千得 1910∼2007)은 시인·수필가. 호는 금아(琴兒). 서울 출생.
1940년 상하이[上海(상해)] 후장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46∼197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1963∼196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주임교수를 지냈다.
2007년 5월 25일 9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193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抒情小曲)》을 처음으로 발표하고
계속하여 시 《소곡(小曲, 1932)》, 수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대체로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 사상·관념·대상을 배제한 순수한 정서에 의해
시정(詩情)이 넘치는 생활을 노래하였다.
특히 《수필》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수필의 본질을 파고든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 밖에 시집 《서정시집(1947)》 《금아시문선(1959)》 《산호와 진주(1969)》,
수필집 《금아문선》 등이 있다.
- 배경음은 꿈 같은 한여름날의 바이올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