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거장의 애끓는 ‘思婦曲<사부곡>’
▶ 22일 LA 공연 백건우씨, 늘 연주여행 동반했던 부인 윤정희씨 병세 악화
▶ 이번엔 함께 못해 ‘애틋’, 쇼팽의 선율 더 절절할듯
백건우·윤정희씨 부부가 파리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빈체로 제공]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LA 리사이틀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번 공연에서 그가 들려줄 쇼팽의 피아노 선율이 더욱 절절하게 한인들의 가슴을 울릴 전망이다.
부부이자 예술가 동지로 평생 아름다운 영혼을 나누며 동반자의 길을 걸어온 아내
윤정희(75)씨가 알츠하이머 증상이 악화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는 22일(금) 오후 7시30분 LA 다운타운 콜번스쿨 지퍼홀에서 열릴
‘피아니스트 백건우 & 쇼팽’ 리사이틀은 이미 입장권 전석이 매진된 가운데,
피아노의 거장이 건반에 담아 들려줄 애끓는 사부곡(思婦曲)에 한인들의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일보 미주본사가 창간 50주년 기념 특별기획으로
열리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백씨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즉흥곡과 야상곡, 왈츠, 발라드 등
주옥같은 곡들을 선사할 예정이다.
한국이 낳은 전설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한 시절을
풍미한 배우 윤정희, 이들 부부의 스토리는 40년이
넘는 순애보로 잘 알려져 있다.
남편이 피아노 선율을 구도할 때 아내는 객석
맨 뒷자리에서 묵주를 쥐고 고요히 기도를 올렸다.
아내가 빛나는 조명 아래 카메라를 마주하고 있을 땐
남편이 존재를 지우고 기꺼이 그림자가 됐다.
남편은 결혼 이후 40여년간 아내의 머리칼을 정성스럽게 잘라줬고,
아내는 남편의 공연 구두를 직접 닦았다.
남편은 영화 마니아, 아내는 클래식 애호가이기도 하다.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로, 영혼을 나눈 예술가 동지로,
업무상 일정을 챙겨 주는 서로의 매니저로, 피아니스트 백건우(73)씨와
배우 윤정희(75)씨는 그렇게 한시도 떨어지거나 멀어지지 않았다.
늘 붙어 있으니 휴대폰도 한 대면 족했다.
그러나 평생 남편의 연주 여행에 늘 동반했던 아내가 함께하지 못한 건 올해부터다.
윤씨는 수년 전 발병한 알츠하이머 증상이 악화해 이젠 딸(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씨)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윤씨는 남편 곁을 떠나 딸 진희씨가 살고 있는 프랑스 파리 근교 호숫가 마을에서 요양하고 있다.
백건우씨의 한국 기획사 빈체로 측은
“올해 초부터 백씨 가족들이 윤씨의 투병 사실을 알리는 시기를 고민해 왔다”고 전했다.
윤정희씨는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50년간 영화 330여편에 출연했다.
문희, 남정임씨와 더불어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붐을 일으키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1974년 영화 공부를 위해 파리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백씨와 1976년 결혼했다.
윤씨의 삶은 오로지 영화와 남편뿐이었다. 기억은 흐려졌지만 사랑은 바래지 않았다.
요즘에도 40, 50년 전 영화를 찍던 때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백씨가 만나러 왔다가 돌아간 뒤에는 유독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윤씨는 늘 이야기했다.
“가족 덕분에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었어요.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요.”
미주 한국일보
2019-11-12 (화) 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