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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로마의 여행은 테르미니 역으로부터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마여행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테르미니 역은 유럽에서도 규모가 큰 기차역이고 로마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끝이 나오지 않는 역의 크기에 놀라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 역을 거쳐가야 했던 만큼 테르미니란 이름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여기에는 관광 안내소, 환전소, 은행, 우체국, 식당, 전화국, 슈퍼마켓 등 여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국제 관광도시 중앙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테르미니 역
바티칸 시국
로마라는 도시안에 또 다른 한 나라가 바티칸이다 이탈리아에 속해 있다가 1929년 무솔리니 정권이 들어서면서 독립했다.
바티칸 박물관과 산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이 속해 있는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인구 856명(오차법위는 있다)이 고작이라나! 대부분이 남자이며 성직자라서 앞으로 인구가 늘어날 확률은 극히 적다고 한다
바티칸 박물관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고 잘난 척해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바티칸 박물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임은 물론 르네상스 작품을 비롯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걸작들이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이른바 서양 미술의 보고라 불린다 18세기 후반 베일에 싸여 있던 역대 로마 교황의 궁전인 바티칸 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일반에 공개했다.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무조건 일찍 가서 줄을 서는 것이 상책이라는 .....
아침 8시도 채 되지 않는 시각인데도 관람 줄은 끝이 안보인다 거대한 담이 성벽처럼 둘러쳐진 바티칸 박물관은 베일에 감춰진 부분들이 많아서 관람객들에게는 많은 제한이 따른다
미켈란젤로의 전 생애와 바티칸 궁전이야기,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그리는 대목에서는 울컥해지기도 한다
이 좁은 문은 바티칸 박물관을 입장할 수 있는 문이다. 관람객은 많고, 문은 좁아서 들어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한다 소지품 검사가 엄격해서 핸드백은 괜찮지만 작은 배낭도 물품보관소에 맡겨야만 했다
* 바티칸에 대해 알고 가는 시간
무솔리니와의 협약을 거쳐 1929년 2월에 교황령에 의해 독립국가가 됐으며 우체국, 신문사, 라디오 방송국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이 나라의 주 수입원 박물관 입장료와 기념 화폐 및 우표다 바티칸 시국의 경비는 스위스 용병만 맡을 수 있는데 이 전통은 1506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100여 명의 용병이 바티칸을 지키고 있으며 그들의 유니푬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 용병은 강제적 의미가 클 뿐, 실제로 전반적인 치안은 이탈리아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가 아비뇽 유폐에서 풀려난 이래 현재까지 교황의 주거지가 되고 있는 바티칸 궁전은 1400여 방과 예배당 가운데에 교황이 사용하는 곳은 얼마 안되며, 대부분 바티만 박물관이라고 하는 20여 박물관, 미술관 등으로 사용된다.
피냐 정원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마주 보고 왼쪽에 있는 문을 통과하면 4미터 높이의 솔방울 조각이 눈에 띄는 넓은 정원과 만나게 된다. 로마 시대 분수의 일부였던 솔방울은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배경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사지가 없는 토르소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무척 좋아했는데 이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완벽히 표현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조각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자 이것만으로도 완벽한 작품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토르소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그려져 있는 예수의 몸 부분 모델이 되었다
라오콘
부풀어 오른 사지의 근육과 꿈틀거리는 뻬대를 대리석 조각으로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청동 조각의 로마 시대 대리석 모각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바티칸 박물관에서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라오콘은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군의 목마를 트로이 성 안에 끌어들이는 것에 반대하다 신의 노여움을 사서 두 자식과 함께 뱀에게 죽임을 당한 트로이의 마지막 신관이었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그리스 시대에 제작된 아폴로 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
대리석 욕조
네로의 궁전에서 가져왔다는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 욕조가 있다.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는 방
금지 구역으로 넘어가면 비상벨이 울리기 때문에 유의해야 하고 사진찍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회화관
그리스도의 변모
라파엘로가 누운 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는 라파엘로의 마지막 작품이다 신약 성서 마태오 17장의 두 장면을 그린 것으로 상단에는 그리스도가 변모하여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 하단에는 귀신 들린 어린 소년이 치료받기 위해 사도들 앞으로 이끌려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라파엘로 전시관
라파엘로가 25세 때 창작을 시도하여 37세에 죽을 때까지 벽화를 그린 4개의 방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서명의 방'에 전시되 있는 <기적의 논의><아테네 학당> 등이 유명하다.
아테네 학당
브라만테가 설계한 템피에토와 비슷하게 생긴 학당에서 신학, 철학, 법학, 예술 등 학문의 네 영역을 대표하는 54명의 고대 신학자와 과학자가 한가로이 노닐며 담화를 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디오게네스와 유클리드, 라파엘로 본인은 물론 그의 여자친구, 소크라테스, 미켈란젤로 등이 그림 속에 들어 있다
아래에 턱을 괴고 앉아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미켈란젤로, 사람들과 못 어울리지 못하는 캐릭터로 미켈란젤로를 그렸다.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를 시기질투를 했기 때문에 좀 못나 보이게 그렸다고 한다.
왼쪽 사진 아래 서 있는 여자가 라파엘로 여자친구이다 그림 속에서 라파엘로와 그의 여자친구가 멀찍이 떨어져서 서로 눈길을 주고 받고 있다 오른쪽 사진 중앙에 빨간색 도포 옷을 입은 사람은 레오나도 다 빈치이고, 라파엘로는 가장 우측 가장자리에 하얀색 옷과 모자를 쓴 사람이다.
박물관 안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도 관광객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4세기,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던 당시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인 베드로의 무덤위에 성당을 지은 것이 이 성당의 시초다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교황 알렉산드로 7세의 주도 아래 대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베르니니가 1655년부터 12년에 걸쳐 완성한 원형 광장이다. 피에트로는 12사도 가운데 한 명인 베드로를 뜻한다.
산피에트로의 원형광장을 파노라마사진으로 만들어보려 했는데 기술부족으로 쉽지가 않다
성당 건축은 브라만테의 주도로 시작해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에게 넘겨졌으며 이후 교황과 추기경의 외압에 의해 많은 예술가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건축에 참가 했다고 한다.
자금 마련을 위해 교회가 발행한 면죄부의 부당함을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통해 발표했는데 이는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성당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건축 당시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자재를 로마 유적에서 충당했기 때문에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이 훼손됐다고 하는 말은 포로 노마노에서도 들었던 것 같다.
초대 교황이자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언덕에는 초라한 모습의산피에트로 대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초라한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교황 니콜라우스 5세는 성인의 권위에 걸맞는 성당을 건축하도록 명했다. 몇 번의 증개축을 반복해 완성시킨 지금의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어마어마한 공간 속에 완성된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결정판이라고 말한다
베르니니의 청동 기둥
1642년 바로크의 거장 베르니니가 만든 나선형 기둥이다 교황님이 미사 집전하실때 사용하는 교황님 제대가 보이며 제대 밑에는 베드로 성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성 베드로의 성좌
그의 발을 만지면 영생을 얻는다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청동으로 된 발이 닳아 오리 주둥이처럼 되었다고..
중세 시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위하여 제작된 의자 위에 청동을 덧입혀 만들었다.
거룩한 문
25년에 한 번씩 대희년에만 열린다는 문 평소에는 교황만 이용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24세의 젊은 나이에 조각한 작품으로 처음으로 자기이름까지 새겨놓을정도로 정성을 다했다는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숨을 거둔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에서 지극한 모성애와 종교적인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피에타 조각품을 찾는 이가 많아 손상을 막기위한 유리벽이 둘러져 있다.
2013년 4월 27일 프란체스코 교황님에 의해 성인 시복에 올려질 요한 23세 교황이 모셔진 제대가 저 멀리 보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티끌 한조각도 황금 조각일 듯한, 혹여 티끌이라도 하나 보인다면 얼른 주워오면 땡잡은 것 같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교황님을 수호하는 스위스 용병의 유니폼 지금까지 변함없이 내려오는 유니폼이라니 저 멋스러움의 포스는 깔끔한 용모의 핸썸보이들의 전용복장인가? ㅎ 옛날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스위스 용병을 뽑는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잘생기고 희멀건한 영화배우 수준의 잘빠진 외모가 우선이란다.ㅋㅋ
바티칸 우체국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구경을 마치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고픈 사람들의 심리가 더해져 너나없이 들러가는 바티칸 우체국
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프레스코 그림들은 회반죽 위에 물감을 섞어서 바른< 천지창조>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33장의 프레임안에 테마 별로 조각품 같은 입체형 그림에 놀라고 천장의 어마어마한 높이와 폭을 감안한다면 정교한 균형과 조화에 한번 더 놀랐다.
천장의 그림을 보기 위해 잠시 몇 분동안 올려다 본 고개가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4년 6개월 여를 만신창이 몸에도 아랑곳없이 천장을 향한 예술가의 혼이야말로 하느님의 힘이 아니고서 어떻게 가능 할 수 있었는지....
로마는 아니, 이탈리아는 아직도 땅속에 문화재가 많아서 도로를 넓히거나 깊게 파헤치는 일을 금한다 여행객들 중에 9할은 다시 한번 가고 싶은 나라로 이탈리아를 꼽는다.
고대의 유적과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축복받은 나라!! 꼭 한번 성지순례하시길 바랍니다.....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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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로마는 망했어도 망한게 아니네요... 로마는 어찌보면 그리스도교가 자라난 곳이네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교가 잉태된곳이라고 한다면,,저기 나오는 예술품 가치로 보면 웬만한 약소국 한나라 사고도 남을 값어치가?? 잇을거같네요..
미켈란젤로&,라파엘로는 천국에 가있겠죠?? 거기서 뭐할런지 궁금하네요 ^^
하늘시냇물님,
궁금하신것에 대해서 도움이 되셨나요
직접 순례하시면서 느끼는 감동과 환희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수호천사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피에타 상 여기 치명자산에도 있고 여러번 보았는데 원본이 거기에 있었군요,,
미켈란젤로 24 살에 저런 작품을 만들다니 정말 그는 천재군요 .. 가보고 싶은곳 ..메쥬고리아, 스페인 도보순례,
로마 ,.. 저 아는 개신교 장로한분이 아내와 함께 스페인 도보순례를 하고 그 순례기를 책으로 만들어서 저에게
한권을 주어서 보았는데 그것도 매력이 있더라구요.. 근데 그책 많이 팔려서 순례 비용 뽑고도 남았데요..
개신교 신자들 열정은 알아 줘야 ....로마도 가고싶고... 인생은 짧고 갈곳은 많도다 ...ㅋㅋ
다시한번 수호천사님의 로마 안내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