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글>
희망은 운명도 바꾼다.
성 기 조 (시인,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1978년, 모윤숙(시인), 박종화(소설가), 서항석(극작가), 전광용(소설가), 부완혁(전「사상계」주간) 그리고 나까지 합쳐 여섯 사람이 재단법인 한국문학진흥재단을 만들었다. 이때는 정부에서 법인을 잘 허가해주지 않아서 무척 힘들었는데 그 당시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었던 이진희 씨를 설득해서 법인 허가를 얻었다. 문공장관을 설득하는 키워드는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였고 문학진흥재단은 한국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선정, 영ㆍ미ㆍ불어로 번역해서 외국에서 출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 재단을 설립하는데 필요한 돈은 당시 율산그룹(지금은 없어졌지만)의 고문이었던 부완혁 선생이 주선하여 당시로는 거금인 3천 만원을 율산그룹에서 기부 받았고 그 돈이 기본재산이 되어 법인으로 출발, 제일 먼저 번역에 착수한 것이 박종화의「세종대왕」, 김동리의「사반의 십자가」와 황순원의「나무들 비탈에 서다」그리고 고전으로「한중록」이었다. 네 권을 한꺼번에 번역하여 외국으로 내보내는 일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큰 일이었고 작품선정에 참여했던 평론가나 번역을 담당할 분들도 모두 놀라워 했다. 문공부 예술국장은 번역이 하루 빨리 끝나 외국에서 출간되기를 기대하면서 자신들이 도와 줄 것이 무엇인가 물어 왔으니 정부의 기대도 상당했다.
번역자로는 서울대의 장왕록 교수, 고려대의 김진만 교수, 코리아 타임즈의 안정효 씨, 외국인으로는 Bruce K, Grant(미), Kevin O'rourke(영), 미국시민 이었던 피터 현 등이었다. 이들과 번역계약을 마치고 일 년의 말미를 준 다음 나는 계속해서 외국에서 이 책들을 발간해줄 출판사를 물색했다. 이 때 출판사 물색에 힘을 보태준 분이 장왕록 교수였다. 장교수는 자신이 번역을 맡았기에 시간이 없었으나 외국에 가는 편지, 또한 외국에서 온 편지를 도맡아 처리했고 출판사 정보를 알아보는 등, 힘든 일을 해 주셨다.
그래서 장왕록 교수와는 거의 날마다 전화연락을 하면서 서로 바쁘면 을지로 입구에 있던 허바허바 사장(사진관)을 거점으로 번역 원고나 외국에서 온 편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장왕록 교수는 무척 성실한 분이셨다. 무엇이고 언짢아 하시지 않았고 그저 빙긋이 웃는 것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 했다. 성실과 신의, 그리고 과묵하면서 빈틈없는 장교수는 그 때 영문학을 전공하는 딸이 있었다. 바로 지난 5월 9일 이 세상을 떠난 서강대학의 장영희 교수다. (그때는 영문학을 공부하던 때였다.) 그는 아버지를 도와 원고를 정리하고 영문 편지도 쓰면서 장왕록 교수를 대신해서 내가 하는 일을 많이 도와 주었다.
장영희 교수는 아버지의 얼굴을 많이 닮았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불편했던 고인은 항암치료와 수술에 시달리면서도 조선일보에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영미 시 산책, 아침 논단 등을 여러 해 동안 집필해서 아침이슬 같이 맑은 영혼의 글을 독자들에게 선사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해맑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평생 목발에 의지해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고 암까지 겹쳐 고생을 하면서도 밝고 맑게 살면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암환자와 장애인들의 희망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고인은 암과의 투쟁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용하게 이겨냈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라고 썼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투병을 이겨낸 뒤에 쓴 기록이다. 그가 쓴 수필집 에필로그에는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 있다고 믿으면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고 써 있다.
비록 봄의 끝자락, 초여름으로 다가가는 5월에 장영희 교수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 자체가 암환자나 장애인에게는 희망이었고 기적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녀가 산 57년의 이 세상은 너무 더럽고, 추하고, 이기심에 휩싸여 구정물이 가득찬 가마솥 같지만 장영희 교수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깨끗하게 살다갔다.
그녀의 아버지, 장왕록 교수도 1994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많은 번역 소설 중 황순원의「나무들 비탈에 서다(Tree On The Cliff)」는 한국의 장편 소설을 본격적으로 번역한 최초의 것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란 말을 들을 만큼 후회 없이 맑고 깨끗한 삶을 고 장영희 교수는 살다 갔다. 만약 그녀가 희망을 갖지 않았다면 57년 동안 이 세상에서 어떻게 맑고 깨끗하게 살았을까?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란 것을 믿은 장영희 교수도 아버지 장왕록 교수의 옆으로 갔다. 선량하고 깨끗하게 살았던 부녀간의 두 교수는 지금 저 세상에서 어떤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 만났을까?
첫댓글 잘 보앗 읍니다
불정산님 자작글이 아니지만 글 내용이 좋아서 올렸습니다. 감사 합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 있다고 믿으면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