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물도를 다녀왔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리란 예보에 차라리 낼 아침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차길이든 뱃길이든 다 끊겨버렸음...하는 마음이 적잖았더랬습니다.
공기보다 무거운 쇳덩이가 하늘을 날아간다는 사실 못지않게
쇠로 만든 배라는 것이 물에 뜬다는 것...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갱비로선
모를 불안함이 전 날부터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토욜...아침 6시....
영남루 건너편 둔치 오리배 타는 곳에서 바라보는 영남루는
시커먼 하늘과 모를 음산한같은 안개속에 잔뜩 우울한 어깨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개비인지 가랑비인지 옷깃을 젖어오는 서늘함은 마음속 불안을 재촉하고 있었구요.
이윽고 관광버스의 크르렁~ 하는 시동음이 들리고.....
부산에서 일행 일부를 태우고
세계에서 젤 깊은 해저터널이라는 침매터널 과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 저구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미...빗방울이 돋는 포구는 세찬 바람까지 하늘가득 머금고 있었습니다.
아....배는 왜 그리도 작은지....
배에 발을 디밀어넣는 순간 뇌리는...아~ 이거 아닌데....하고 있었습니다.
눈짐작으로 배 딱 중간지점에 앉고선 젤 먼저
구명조끼 위치 부터 찾았더랬습니다.
별내용도 없는 착의요령을 몇번이나 읽었는지....그리곤
유사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가 잡아야 할 구명조끼까지의 거리와 발걸음 수까지 머리속에서
계산하고 예행연습까지 몇번이나 해보았습니다....흔들리는 뇌리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땅의 기억을 계속 찾아 헤매고 있었구요.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짙은 해무속에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잃어버리고 시퍼런 속살만 자꾸 겁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진정 회개하게 하고
진실한 기도를 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밖에 없나 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따악~ 한번만 ~~ ! 하는 깊고 절절한 기도를
얼마나 올렸는지....!!!
거제도 남단 저 아래쪽에 위치한 소매물도...
선착장에서의 첫인상은 허술해보이는 선착시설과
아담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은 산골 어귀같은 소담함이었습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팬션들이 눈에 띄고
그 언저리에 섬의 옛모습들이 새로 들어선 건물들의 기세에 눌러 숨죽이고 엎어져있는...
섬 내부에 몇개 둘레길 같은 것이 있었고 그 길마다 리본색으로 구별을 해서 안내하는 이정표가
이채로웠습니다.
갱비눈에 먼저 띄는 것은 언제나 이런 녀석들입니다.
슬레이트와 함석지붕....그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길이 그대로 살아있는 돌담들
머리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낮은 차양과 프라이버시 같은 말같갆은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한 뒷간.....그리고 주인잃은 빈집들.....
끈적한 해풍과 함께 하루를 열고
비릿한 바다내음과 어우러져 삶을 버무려내었던...기억과 흔적들.
어디라도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허리굽은 할머니의 억센손이 무쳐낸 미역나물과 해물들이
간장 한종지와 함꼐 상에 올라올 듯 합니다.
흙과 돌...경사진 작은 골목과 골목언저리 작은 텃밭....
소담하고 귀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그 먼 기억의 흔적들만 여기저기 주검처럼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만날수 없는 귀한 우리 아버지...할머니의 체취...
어제의 것은 무조건 없애버리는 것이 미덕처럼 되어버린 지금이 참 서글펐습니다.
애잔함만을 똑딱이에 잠시 담고선...등대섬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가파른 경사길과 내리막길을 건너
소매물도 마지막 끄트머리 등대섬을 만납니다.
짙은 해무와 빗방울이 섞인듯한 세찬 바람속에 윗옷은 흠뻑 젖어버리고
숨이 목에까지 차 오를때 즈음....희미하게 등대가 슬쩍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아래 해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무는 그 양을 더해가고
등대엔 바로 서있지 못할정도로 바람이 거세었습니다.
땀과 범벅이 되어버린...얼굴과 목덜미....
세찬바람속에 묻어나는 끈적함은 시원함속에 묘하게 자리하고선 피부 여기저기로 스며들며
사람을 흐물거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짙은 해무속에 숨어버린 절벽과 바위들...그리고 바람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하얀 파도와 갈매기들의 울음소리....언젠가는 한번 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선착장 포구엔 할머니 네분이 이런저런 해물들을 팔고 계셨습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다들 포구로 내려와 한접시 2만원 하는 해물을 대여섯 접시 정도 시켰었는데...
할머니 한분이 주문을 받지 못하셨나 봅니다....골고루 팔아드렸어야 하는데....
그 할머니 화를 내시며 다른 사람은 팔아주면서 왜 나만 안팔아주느냐구...얼마나 역정을 내시며 어필을 하시는지.....결국...그 할머니에게도 따로 한접시 주문을 해드렸습니다.
근데...왜 그렇게 짜던지.....바닷물에 대강 설렁~ 씻어서 담아내니....
멍게..해삼..성게..고동..석화..등등....
아직...찔레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바람 드센 하늘을 이고 있어서 그런지 키를 키우지 못한 채 땅에 엎어져 얕으막한 모습으로
오가는 이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에 익은 몇가지 꽃들과 나무들...그리고 풀들의 흔들림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섬 언저리 수플속에서 만난 한무더기 수국은 빛나는 자태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구요.
드센 바람과 풍랑으로 30분 이나 연착한 배를 기다리며
어둔 하늘을 가로지르는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퍼렇게 살아있는 바다의 내밀한 깊은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삶과 내 생존의 간극을 들여다보며.....그렇게 다녀왔습니다.
앞으로.....
바람불고 비오는 날....절대 배 타지 않을 것입니다.
갱비.....호야 ~ -.-
첫댓글 소매물도 가고 싶은 섬중에 하나네...
바람부는 날...가지마라....ㅋ
소매물도 다녀온 친구야
바다가 좋고 파도가 너무 좋구나.
아름다운 친구의 마음도
아마도 저 소매물도의 마음이니
너무너무 보기 좋구만
희섭아...오랫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