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창작의 어머니>
[1] 흡연을 즐기는 이는 많지만 흡연이 건강에 좋다는 사람은 없을 게다. 오죽했으면 ‘흡연은 살인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폐해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흡연이 인류사적으로 크게 기여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흡연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피카소라는 20세기 최고 미술가의 작품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881년 10월25일 밤, 스페인 말라가의 한 중산층 집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2] 아이는 울지도 숨을 쉬지도 않았다. “안타깝지만, 사산입니다.” 산파는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아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놀란 산모와 식구들은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삼촌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시가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빤 뒤 내뿜었다. 강한 연기가 방 안에 퍼지자 아이는 갑자기 자지러지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시가 연기 때문에 살아난 아이, 그가 바로 피카소다.
[3]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현대미술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스페인 출신의 거장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Pablo Ruiz Picasso)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가 아이일 때, 어머니는 그에게 “만일 네가 군인이 되면 장군이 될 것이고, 성직자가 되면 교황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화가 피카소'가 됐다.
피카소가 태어나 맨 처음 한 말이 ‘연필’이었다고 하니, 그는 화가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4] 피카소가 그린 위대한 작품 가운데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이란 작품이 있다. 이 그림에는 비밀이 있다. 그건 피카소가 처음부터 끝가지 창작해서 그린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서너 명의 화가들이 그린, 이미 존재하는 작품들을 가지고 와서 연결하고 융합했다. 이것이 바로 커넥토 혁명이며 플랫폼 구축 효과다.
피카소는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예술가는 훔쳐야 한다.
[5] 덧붙이면, 예술과 창작은 서로 다른 것을 많이 훔치고 빌려서 연결시키고, 융합하고, 상호 작용을 통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피카소가 위대해진 것은 그가 남보다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입체파’ 또는 ‘큐비즘cubism’이라는 독특한 플랫폼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일단 구축이 되면 그 후로는 어마어마한 창의력과 생산성이 확보된다. 이것이 플랫폼의 힘이다.
[6] 그는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그 많은 다양하고 놀라운 작품을 하루에 한 개씩 그릴 수 있었다. <아비뇽의 처녀들>도 플랫폼 구축의 부산물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루벤스Peter Rubens의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과 폴 세잔 Paul Cézanne의 <다섯 명의 목욕하는 여인들Cinq baigneuses, 엘 그레코El Greco의 <요한 묵시록-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The Opening of the Fifth Seal>이라는 그림들에서 훔쳐 자신만의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7] 어찌 보면 짜깁기나 표절로 생각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것은 짜깁기나 표절과는 차원이 다르다. 피카소는 아주 작은 구성 요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결하고 해체하고 또 재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 그 어떤 화가도 만들지 못했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다른 작가의 그림 일부를 그냥 가지고 오면 표절이고 짜깁기다. 그러나 여기에 자신만의 편집과 연결이 추가되면 또 다른 새로운 창작물이 된다.
[8] 피카소는 바로 이런 면에서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했던 것이다.
피카소가 25세 때이던 1907년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 사실적인 회화의 전통을 깬 큐비즘을 연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혁명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전문가들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이다”란 말도 이런 배경 속에서 나왔다.
[9]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 강단에서 설교의 표절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남의 설교를 표절했다가 쫓겨나는 목회자에 관한 기사들이 심심찮게 등장을 하곤 했다. 설교를 논문과 같은 잣대로 잰다면 표절에 걸리지 않는 설교가 거의 없을 것이다. 논문에서는 남의 자료를 인용했으면 반드시 인용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설교에서 그렇게까지 요구하질 않는다.
[10] 짧은 설교 시간에 인용한 출처를 밝히면 흐름도 깨어지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표절시비로 물의를 빚는 것은 어떤 경우들인가?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설교를 준비할 때 참고할 만한 설교집이나 자료들을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져와서 인용한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한 사람의 설교집을 50%에서 심지어 80~90% 그대로 베껴서 설교하는 케이스이다. 이건 정말 바보짓이고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11] 표절과 참조나 모방은 구분되어야 한다. 남의 것을 거의 몽땅 베껴버리면 안 된다. 하지만 피카소처럼 남의 귀한 자료들을 여기저기 가져와, 그것들을 기초로 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해낸다면 그건 선한 일이라 볼 수 있다.
해 아래 새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다 하나님이 주신 재료들이요 그분이 주신 재능에 의해 생산된 열매들 아닌가.
[12] 그들을 잘 참조하고 모방해서 더 낫고 독특한 작품으로 창작을 해낸다면 그보다 위대한 행위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설교자들은 피카소처럼 모방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 스펄전이나 로이드 존스나 위대한 설교자들의 보석같은 내용들을 가져와 더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설교문으로 만들어 활용해보라.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란 말이 어느 때보다 더 귀하게 와 닿는 새해 첫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