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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글/임공이산
레미제라블!
대선날짜인 작년12월 12일에 개봉하면서 연일 장안의 화제를 끌고 있는 뮤지컬영화 한 편을 보았다.
굶고 있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19년의 청춘을 노예살이로 보내야 했던 장발장!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이 영화가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은 쟁쟁한 출연진에 완성도 높은 작품성과 함께, 성공과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는 프랑스 혁명당시와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의 상황이 비슷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란다.
19세기를 치닫는 프랑스는 공평하지 못한 사회였다.
당시의 프랑스는 신분제가 뚜렷했다. 전체 인구 중 극소수에 불과한 제1신분 성직자와 제2신분 귀족들은 부와 권력을 틀어쥐고 온갖 특혜를 누렸다. 반면에 98%에 달하는 농민 노동자와 일반 민중들은 노예처럼 일을 하면서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고급 신분 특권층은 온갖 사치와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베풀줄을 몰랐다.
극심한 굶주림과 신분차별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은 드디어 폭발했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을 시작으로, 루이16세와 왕비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올리고 왕정을 무너뜨리며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일련의 민중봉기를 이른바 프랑스대혁명이라 칭한다.
이후, 장장100여년에 걸친 프랑스혁명은 성공과 좌절, 전진과 후퇴를 거듭했다.
루이16세 왕정을 무너뜨리고 어렵게 공화정을 세우지만 민중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이 들어선 혁명정부는 반혁명인사들을 단죄하는 피바람으로 공포의 세상을 만들더니, 과격파와 온건파로 나누어져 서로간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와중에 인근 나라까지 왕정종식을 하겠다며 원정전쟁을 벌인다. 패전과 승전을 반복하던 전쟁은 결국 승리를 하지만 국내경제는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장발장이 빵을 훔치다 체포되는 해가 바로 이즈음인 1796년이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극심한 혼란은 군부에게 쿠데타의 빌미를 주었다.
혼란 중에 난세를 구하겠다며 등장한 장군이 나폴레옹이다. 1799년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제1통령으로 취임하며 국내외의 혼란을 잠재운다. 프랑스 시민들은 나폴레옹을 환호했다. 그는 뛰어난 용병술로 외국과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고 반혁명 세력을 소탕하는 한편, 토지분배법, 각종제도의 정비, 초등교육의 확립 등의 개혁정책으로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이바지한다. 통령 지위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1804년 스스로 대관식을 치르고 황제로 즉위했다. 외국과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벌이면서 승승장구하나 러시아 원정(1812년)을 대패하면서 내분에 휩싸이고, 결국 실각당해 엘바섬에 유배(1814)된다. 탈출의 기회를 틈타 다시 백일천하를 이루는가 하더니 영국과의 워털루 전쟁(1815)을 패하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장발장이 19년 형기를 마치고 가석방을 하는 해가 바로 이해이다.
나폴레옹의 시대가 끝나자 외국으로 도망갔던 루이 16세의 아우들이 돌아오고, 역사는 과거의 부르봉가 왕정으로(루이18세와 샤를10세)회귀한다. 복고된 왕정은 개혁의 물살을 거슬러 언론과 자유를 탄압하였다. 이에 분노한 민중들이 1830년 다시 혁명을 일으키니 이를 7월혁명이라 부른다.
1830년 7월27일~7월29일 ‘영광의 3일’로 역사에 기록되는 칠월혁명으로 집권을 하는 왕이 ‘루이 필리프1세’다.
그는 왕족출신이면서도 개혁적 성향이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루이필리프1세 정권을 ‘7월왕정’이라 불렀는데, 시민혁명으로 왕이 되었기에 유럽의 다른 군주들은 그를 가리켜 ‘시민왕’ ‘폭동왕’이라고도 했다.
당시의 프랑스 정치세력은 크게 3개파로 나누어서 첫 번째가 왕정을 지지하는 귀족세력들로 왕당파이고 루이16세의 아우 샤를10세의 폐위와 함께 몰락하는 세력이다.
두 번째가 하층 부르지아주와 노동자들, 나폴레옹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공화파들이다.
세 번째가 시민계급 중에서 신흥부자가 된 상층부르지아주와 신 엘리트층으로 루이필리프를 지지하며 7월혁명의 진정한 승리자들이다. 이들은 선거권을 두 배로 확대하면서 지분을 높였지만 전체 인구에 비해서는 극히 미미한 숫자였다.
죄수번호 24601 위험인물 신분증을 버리고 마들렌으로 거듭난 장발장이, 유리구슬 제조공장을 설립해서 혁신적인 원가절감 생산공정을 바탕으로 대성공을 하게 되고, 몽페레이유시의 시장이 되는 것도 이때이다.
산업시대는 새로운 자본시대를 탄생시켰다. 장발장 마들렌시장처럼 노동자들을 위하는 자선적 공장주는 드물었다.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혈안이었던 공장주들에 의해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은 열악했고 임금을 착취했으며 물가는 폭등하고 빈민은 더욱 늘어났다.
산업화시대가 초래되고 한때 정국안정을 이루었던 루이필리프왕정도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 노동자들의 권익요구를 묵살하면서 민심을 잃게 된다.
1831년11월, 공업도시 리옹에서 최저임금제의 보장을 요구하는 수천명의 노동자들의 궐기를 잔인하게 진압하는 한편 오히려 결사의 권리마저 뺏어버렸다. 정부의 강력한 탄압책은 노동자들을 더욱 분노케하고 이에 공화주의 학생들까지 가세한 크고 작은 소요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드디어 영화에서 말하는 그 혁명의 날이 다가온다.
나폴레옹의 부관출신이면서도 자유주의를 신봉하여 시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날을(1832년6월5일) D데이로 잡았던 것이다.
One day more!
거사 하루전날 밤, 각각의 사람들은 저만의 상념에 빠져든다.
신분과 은거지가 밝혀졌으므로 소요를 틈타 탈출을 하겠다는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장발장, 사랑과 혁명 사이에서 번민하는 마리우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는 코제트, 짝사랑하는 마리우스와 연적 코제트를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아야 하는 에포닌의 애절한 심정, 내일이면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열정에 불타는 젊은 혁명전사들!
그러나 혁명은 실패했다.
정부군의 대포 앞에 시민군의 바리케이트는 힘없이 무너졌다.
영화속에서는 크게 나타나지 않지만, 이틀에 걸친 이 유월폭동은 쌍방간 800여명의 사상자가 났을 정도의 대규모 폭동으로 기록되어있다.
교전 중에 부상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 마리우스를 구출한 장발장은 판틴의 딸, 지금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딸 코제트와 결혼을 시켜주고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빅토르 위고는 무거운 주제 격동의 혁명사를 다루면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휴먼스토리로 소설을 꾸몄다.
용서와 회개와 박애정신을 실천하는 장발장을 통해 진정한 인간사회의 구원은 제도와 정치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자 했을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사람들은 난세를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지만 그들은 독재자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시대의 영웅은 불의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행동하는 시민이다.
웅장하고 힘 있는 합창과 함께 영화는 막이 내린다.
영화와 소설의 이야기도 이쯤에서 끝나지만, 합창곡 혁명의 노래가 암시하듯, 1848년 2월에 또 다시 역사를 바꾸는 대규모 혁명이 일어난다.
이 2월혁명으로 루이 필리프 왕정이 무너지고, 나폴레옹 3세의 집권시대가 열리는데, 대프랑스혁명사는 그리고도 한참을 더 험난한 여정으로 이어 진다.
나폴레옹3세의 이야기는 한국경제신문 오형규 논설위원의 유익한 글이 있어 여기에 옮기고 공부로 삼는다.
[천자 칼럼] 나폴레옹 3세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위 글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하는 때의 사건은 1832년6월 혁명 때였다. 오형규논설위원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글 얼마 후 홍사덕선대위원장은 불법선거자금 수수로 중앙선관위의 고발을 받고 구속되었다가 형을 받았는데....이번 이명박대통령의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가 지명했던 김용준 국무총리후보자는 국회검증과정인 인사청문회를 해 보기도 전에 낙마했다.
자식들의 병역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무분별한 언론보도가 억울하다고 원망하지만, 알려져 왔던 청렴한 법조인과는 거리가 먼 재력가임인 것은 확실하다.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인사권자인 당선인의 체면만 구기고 사전검증을 실패한 밀봉인사의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어떻던, 골랐다는 인물의 내면이 저 정도 일진데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만 크게 만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이동흡재판관의 경우는 어떤가.
청문회를 통해서 양파 속처럼 끝이없이 들어나는 사실들은, 사리사욕을 탐하는 공직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청와대측과 대통령인수위측의 책임공방 속에 거취를 표명하지 않은 그분은 지금 행방도 모른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평을 하는 제17대 이명박대통령은 임기 마지막으로, 권력형 비리로 구금되었던 친인척과 측근들에게 사면을 단행했다. 이른바 셀프사면으로 스스로 죄를 짓고 스스로 사면을 단행하는 것이 완벽한 도덕인가.
법은 모두에게 공평한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데, 우리가 주인노릇을 제대로 하고는 있는 것인가?
독재자를 영웅으로 받들고 사기꾼을 섬기며, 위정자들의 종노릇을 자처하지는 않는 것인가?
짧은 지식으로 프랑스대혁명사를 논하고 우리 정치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프랑스 시민혁명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
동시대에 일어난 영국의 산업혁명이 전 세계의 산업혁명을 몰고 왔던 것처럼, 프랑스혁명은 봉건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사회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정치혁명이 되었다.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역사는 꾸준히 진보한다.
경제와 정치 모두가 함께 발전하여 더불어 행복한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갈구하는 마음에서 졸글을 쓰게 되었다.
영화의 막이 내렸는데도 관객들 모두 잠시 동안 일어서지를 않는다.
혼자 온 듯 보이는 옆 좌석의 젊은 여성은 엎드려 울고 있는 모양이다.
먹먹해지는 가슴에 레미제라블 서문에 쓴 빅토르 위고의 말씀이 맴돈다.
[지상에 무지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 같은 책도 유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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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세계사 공부를한 느낌입니다. 박수만으론 모자라서 다시한번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지식이 부끄럽습니다. 사건들의 연속이어서, 글이 어지럽게 나열되어버렸습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났군요. 2013년 2월에 썼던 글인데 스스로 삭제글 보관함으로 옮겼다가 다시 옮겨 왔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프랑스 시민대혁명과 흡사한 시민대혁명이 이루어지는 시점인지라 스스로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