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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수난(12:1-19:42)
4.9. 빌라도 앞에서의 재판(18:28-19:16)
4.9.2. 빌라도 앞에서 진리를 증언하신 예수님(18:33-38a)
요절: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a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앞에서(28-32) 우리는 대제사장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그에게 억지로 재판을 떠맡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빌라도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할 수 있으며, 이로써 대제사장들은 예수란 자는 하나님이 저주하신 자라는 것을 공표함으로써 이 예수 메시아 사건을 마무지지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유대인의 간계를 간파하지 못했고, 또한 공정한 재판관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결정하기를 좋아하는 타락한 정치인이었으므로, 예수님이 범법자라는 확신이 없었음에도 대제사장과의 관계와 정치적 영향을 고려하여 자기가 재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란 자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소상하게 조사하여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앞으로 길고 고통스러운 재판이 전개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시며, 피고로서 재판관에게 오히려 자기가 진리의 왕임을 나타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는 우리에게 영원한 모범이 됩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진리를 증언해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리고 평소에도 이렇게 증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설교는 예수님의 증언하신 내용이 중심이 됩니다.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구절은 빌라도가 유대인으로부터 피고 넘겨받아 재판을 여는 장면입니다. 그는 자기 관정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에 밖에 있는 피고를 부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로마법에 따르면 빌라도는 언제든지 재판을 기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심문하다가도 피고가 로마에 대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그를 다시 유대인에게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앞으로 몇 번이고 재판을 기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예수님을 넘긴 후에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린 것입니다.
그는 이제 심문을 시작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곳에서 로마인의 재판 방식이 유대인의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유대인에게는 증인이 결정적이므로 피소된 자는 심문을 당하지 않습니다. 증언에 따라 그의 죄가 결정됩니다. 그러나 로마인은 증인은 필요 없고 단지 피고의 진술에 의해서만 판결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변호가 결정적입니다. 이를 위해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빌라도는 증인을 부르지 않고 단지 예수님만 심문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라는 질문으로써 재판을 여는 것은, 그가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고소 내용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눅 23:2). 예수님은 자기를 메시아라고만 계시하셨는데, 왜 유대인은 예수님은 자기가 왕이라고 주장했다는 거짓 고소를 했을까요“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자기가 메시아,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셨으므로 그분이 왕이심은 분명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 12:13). 그러나 그분은 로마 정부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가르치셨습니다(„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막 12:17). 정부를 전복하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젤롯주의도 거부하셨습니다. 심지어 제자가 예수님을 지키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하셨습니다: „칼을 칼 집에 꽂으라!“(요 18:11). 그분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왕으로 고소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큰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이것은 이들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 이스라엘 왕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하나님이 이들에게 보내신 이스라엘 왕을 정치적 왕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메시아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들의 시도는 그 자체로도 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저항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은 정곡을 찌르는 현명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할 때에만 로마에 대한 반역죄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로마가 기원전 64년에 이스라엘을 정복한 이후부터는 로마인이 임명한 자만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경우는 로마에 대한 반란으로서(참조: 행 17:7)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더욱이 지금 빌라도가 그들의 총독으로서 왕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예수란 자가 감히 그 앞에서 자기가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그 외에도 빌라도는 로마에 대한 전쟁을 부르짖는 메시아 운동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게릴라 전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보도하는 거짓 메시아 중에서 적어도 한 명, 즉 갈릴리 사람 유다(행 5:37)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빌라도가 부임하기 전에 봉기를 일으킨 자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질문은, „당신도 그들 중의 하나인가“라는 의미입니다.
이 질문에 피고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풀어주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사형에 처합니다. 이것으로써 재판은 간단히 끝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라는 빌라도의 질문은 노련한 정치가다운 질문입니다.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 질문은 형식적으로만 본다면, 예수님은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라는 고소하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빌라도가 지금 유대인의 고소 내용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정말로 관심을 두고 알고자 물어보는 것인지를 알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빌라도가 36-37에 나오는 예수님의 엄청난 계시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도록 준비시키는 질문 같습니다. 지금 법정에서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그들의 메시아)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핍박받아 재판정에 넘겨졌을 때,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증언하는 이들의 분명한 진술을 듣고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빌라도는 다른 로마인과는 달리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에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빌라도는 나중에 예수님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19:8).
그러나 빌라도의 대답은 분노, 혹은 경멸의 어조입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이것은 내가 왜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의 일에 관심을 두겠느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당시 유대인은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로마의 신을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국법에 따르면, 원래 그런 사람은 사형에 처하지만, 그 많은 유대인을 전부 죽일 수 있으므로, 할 수 없이 이들만 로마 신을 경배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독특한 율법과 종교관습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엄청난 경멸과 무시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구체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무슨 죽을죄를 지었길래 대제사장이 총독인 나에게 당신을 넘겨 주었소“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심문이며, 절차에 따라 피고에게 자기를 변호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36-38절의 예수님의 대답에서 빌라도 심문은 절정에 도달합니다. 예수님의 자기방어 변론에서 „나라“ – „왕“ – „진리“라는 세 요소가 핵심입니다. 빌라도는 이를 통해 메시아의 깊은 비밀을 듣게 됩니다. 이 세 개념 모두가 비밀스러운 예수님의 자기 계시인 „나는 …이다“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것이 요한복음의 원래 주제라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요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나타내려고 했습니다(참조: 20:31).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a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제 예수님은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빌라도의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입니다.
예수님의 첫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먼저 자기 나라의 독특한 성격을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왕국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왕국은 세상 나라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우선 예수님은 세상의 왕과는 달리 당장에 자기를 위해 싸울 군사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잡혀서 매우 무력하게 보이고 그뿐 아니라 겸손하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나라는 아무런 힘이 없는 무력한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종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력으로 예수님을 지켜 드릴 능력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종이란 천군 천사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로마군을 쉽게 섬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 외에 예수님의 나라가 별도로 있습니까?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입니다. 다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자주 가르치셨다는 것은 공관복음에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3장에서 나옵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임은 다니엘서 7:13-14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참조: 시 2:8 이하; 계 12:5; 19:15; 삼하 7:12 이하). 그곳에서 하나님과 같은 인자가 영원한 나라를 받는다고 합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비유에서도 „인자의 나라“라고 하십니다(마 25:31 이하). 고전 15:24-25에서는 좀 더 자세히 이 나라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좀 더 보충하자면,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 되시는 것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이후부터입니다(„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 그곳에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까지 이 세상을 왕으로서 다스리십니다.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구속사가 종말을 고한 후에는 예수님이 그 왕국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고전 15:24). 그러나 지금 하나님 역사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빌라도는 하나님이 부여한 그 권력으로 자기 왕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이 얼마나 멀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에 좀 인상은 받은 것 같습니다. 그는 „뭐라고, 당신 같은 사람이 왕이라고?“하지 않고 „당신이 지금 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확인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유감스럽게 그는 예수님의 메시지에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재판관답게 피고의 죄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즉, 예수란 자가 자기가 왕이라고 하는지 아닌지입니다. 그래야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나라, 자기가 속한 로마제국, 디베료가 황제이고 자기가 총독인 로마제국, 그리고 페르시아, 그리스, 게르만족 외에는 보이지 않는 나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싸울만한 종이 있다고 하셨음에도 이것을 하찮게 보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분명히 대답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이곳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정치적 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시고, 또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기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이것은 진리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것은 이 진리에 대해 증언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리를 증언하시고, 빌라도 앞에서도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동시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는 빌라도의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라는 말이 핵심에 속합니다. 진리란 하나님 자신이며, 언어로 표현된 그분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을 그대로 알려주셨으므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17)고 할 수 있으며, 그분 자체가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구현되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그분은 죽음 앞에서도, 죽기까지 진리를 말씀하시고, 행하시고, 진리가 자기 안에서 완성되고 구체화하도록 진리에 대해 증언하십니다. 그분은 이러한 진리의 왕국에서 그분은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왕국에 대해 설명하신 후에 누가 그 나라에 속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지에 대한 가르침이므로 우리에게 생명과 같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교리적 생각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 자체를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인간에게서 가장 신비한 일 중의 하나는, 그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싫어하는 큰 죄인임에도 예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이 사실이 너무나도 신비합니다. 근 40년간을 선교사, 목사, 성경교사로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 음성이 들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저에게도 예수님 음성이 들리는 것이 매우 신비합니다. 예수님 음성은 때로는 나를 찌르는 칼날이 될 수 있고, 내 삶의 습관과 잘못된 생각을 바꾸라는 엄청난 도전이 될 수 있으므로, 때로는 큰 부담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이 나에게 들려서 내가 고통 속에서도 순종합니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말은 그 사람이 예수님 자체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분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영접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이는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을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10장의 목자 설교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o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10:3-4)
o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6-28)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을 얼마나 중요시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릇 진리에 속한 자“가 자기 음성을 듣는다고 하십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 말을 그리스어에서 직역하면 „진리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입니다. 이것의 반대말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사람을 대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은 진리의 말씀인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대로 하려는 사람, 예수님 말씀에 감동되어 그분을 따르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신비입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는 10:27절 말씀과 비슷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것은 어떤 자는 타고나면서 목자의 음성을 듣는 자는 결정론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진리에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고 나를 따르라“는 초대요 도전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빌라도에게도 해당합니다. 그는 진리에 서서 진리대로 판결해야 합니다.
38a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빌라도 „진리가 무엇이냐“는 유명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이 질문의 의미에 대해 많은 학자가 해석했습니다.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즉, 빌라도가 예수님 말씀에 자극을 받아 진리를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옛날 한국의 속된 말로 표현하면, „진리라고? 진리가 밥 먹여 주는가“라는 정도의 의미 같습니다.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는 힘과 권력이 진리입니다. 이렇게 빌라도는 진리의 나라인 예수님 나라로의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진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은 피고에게 죄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38b를 보면, 그는 지금까지의 심문으로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재판을 기각하지 않고 계속 협상의 길을 찾은 것이 그의 잘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왕국에 대해 배웠습니다. 먼저 이 나라와 세속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모든 시도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교회가 그 목적을 이루고자 국가 권력을 이용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2) 교회는 국가 권력에 순종한다.
예수님은 불의한 국가권력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고 순종하셔서 체포되시고 심문을 당하십니다. 모든 권력을 가지신 창조주께서, 자기가 그 자리에 앉힌 인간 권력자에게 고난을 당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세운 원칙에 자기도 순종하십니다.
3) 국가 권력 앞에서 진리를 증거하고 진리대로 행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 앞에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국가 권력에 순종할지라도 진리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디에 갈지라도 진리를 증거해야 합니다. 법정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사를 결정하는 법정에서 진리를 증언함으로써 법정이 복음을 증거하는 곳이 됩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추호라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불신자들은, 진리 편에 서고자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도 서슴없이 함으로써 죽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 진리와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을 둡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세상 법정에서 진리를 증언하는 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왕국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나라는 진리의 나라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시고 또한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자기도 가르친 대로 사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바로 이 진리의 음성을 듣고 진리에 들어온 자입니다. 그는 진리대로 생각하고 진리대로 살므로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자기 삶에 거짓과 비진리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조금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누룩이 되어 교회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진리를 갈망하고, 진리이신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늘 진리를 증언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 말씀만 진리이며 하나님 말씀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나라에 사는 자이며 구원받은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