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11월 20일 화요일 맑음
“뭐라고 ? 노랑끈이 1700원 ! 파랑끈은 ?”
“1400원이래” 머리가 다 띵하다. ‘이럴 수가 있나 ?’ 내 얼굴이 벌개진다.
“속상할 거 없어. 우리가 한두 번 당해봤어. 그러려니 해야지. 그 거 없다고 못 먹고 사는 거 아니잖아 ? 농사는 지어봤자 남는 거 없으니까 우리 먹을 것만 심자고 했잖아. 괜시리 고생만 하고....” 안사람도 속이 상할 테지. 연속으로 내려 쏜다.
새벽 6시. 오정동 경매장에서 통보해준 우리 배추가 두 번째 낙찰된 가격이다.
노랑끈 배추망은 2등급. 단단하고, 묵직한 배추 세 포기를 넣으면 두 손으로 들기도 무거울 정도인데 그게 한 망에 1700원, 그럼 한 포기에 600원도 안 되는 570원. 여든 두 망이니까 총 13만 9400원. 3등급 파란망은 1400원이니까 한 포기에 370원 꼴이요. 총 34망이니까 4만 7600원. 한 차 가득 실린 배추가값이 고작 18만 7000원이네. 거기다가 수수료 10%를 떼면 16만 8300원이 내 수입이라네. 기가 막히다. 불기둥이 솟는다.
하긴 매실부터 해서 한두 번 당해본 일도 아니지. 경매장에 물건을 넣고는 웃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속으로 삭여야 했지.
정신없이 고생했던 지난 며칠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철장을 만드느라 사흘을 꼬박 고생했었다. 처음하는 용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우고 떨어지면 용접 똥을 벗겨내고 또 때우고.... 나중엔 눈까지 아프더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하다 보니 상당히 피로했다. 또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했지. ‘차라리 산에서 지게질하는 게 낫겠다’ 생각이 절로 들더라.
그래도 철장이 있어야 배추를 실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사흘 만에 간신히 완성을 해서 차 위에 세우니 그럴듯하니 보기에 그만이더라.
“어머님 여기 좀 보세요” “왜 ? 아이구 다 했네” “어때요 ?” “응, 좋아”
“어려운 고비 하나를 넘었구나” 생각을 하니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지.
토요일 날은 배추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전 가족이 동원됐다.
장모님과 안사람은 배추를 자르고, 충희와 충정이는 나르고, 나는 망에 넣었지. 속이 단단하게 들어찬 배추만 수확을 해서 크고 무거운 것은 55호 노랑끈 망에 담고, 그 아래 것은 52호 파랑 망에 담기로 했다.
한 망에 세 개씩, 망에 넣는 작업이 쉽지가 않더라.
생각 끝에 충희가 망을 잡게 하고, 내가 배추를 넣으니 한 결 수월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더니.... 하지만 그래도 반듯하고, 보기 좋게는 어려웠지. 영 삐뚤빼뚤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말도 있잖은가.
배추가 워낙 좋으니까 망이 터질듯하고 아구리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 끈을 묶기도 어렵다, 내가 농사지은 배추지만, 이런 배추는 처음 봤으니까....
한 망 한 망 채워나가면서 기대도 부풀어 나갔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처음하는 작업이니까 서툴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리 두 아들이 아무 불평 없이, 힘든 일을 도와주는 것도 흐뭇했고....
이제 차에 싣는 게 문제다. 높이 높이 올려야 하니 이것도 쉽지가 않다. 우리 식구가 다 달려들어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용접한 것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온 식구가 내내 불안해했지. 그래도 버텨주니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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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해져서야 토요일 작업이 끝났다.
노랑끈이 68망, 파랑끈이 42망이었다. 배추의 처음 출하, 얼마나 받을까 ? 경매장 속성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출하할 때마다 혹시나 해진다.
그런데 토요일은 경매가 열리지 않는 날이라 차에 실어 놓은 채 일요일 저녁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럼 일요일 날에는 뭘 해야 하나 ?
월요일 경매에 들어갈 배추를 뽑아서 망에 담아 놓기로 했다. 일을 않던 식구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씌였지만 배추를 빨리 끝내고 싶었지.
또 하루를 열심히 해서 망작업이 끝난 배추를 밭에 쌓아 놓고 대전으로 출발을 했다. 농수산시장 배추 경매장은 뒤쪽에 있었다.
배추를 가득 실은 차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지루한 시간이지만 요 시간을 정보 소통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좌우를 살폈지. 마침 내 앞차례 트럭의 운전수가 내리더니 배추를 덮은 망을 벗겨 접어서 정리를 하더라. 얼른 가서 “제가 도와드릴 게요”하고 손을 맞췄지.
처음 보는 사람이 도와주니 고마워 하는 건 당연하자. 그 때 묻고 싶은 걸 묻는거야. “사장님 배추를 어떻게 실어야 잘 싣는 거죠 ? 배추 농사가 처음이라 많이 힘드네요” “응, 싣는 거 ? 어디 봐요.” 내 차로 오더니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이럴 땐 서로 동류의식이 생겨서 금방 친해진다.
“응 망 작업이 서툴구먼. 틀로 안 했어요 ? 이러면 값이 깎여요.” “예. 한 사람이 망을 잡고 했지요” “그럼 안 돼요 틀이 있으면 혼자서 할 수 있고, 여기 와 봐요.” 다른 사람 배추 무더기로 데려 간다. 정말 기계로 찍어낸 듯 반듯하게 잘 돼있다. 확실히 전문가의 손길은 달랐다. “이래야 돈을 제대로 받아요” 그런데 뭐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탈리아에 갔을 때였다. 저녁 식사를 꽤 좋아보이는 식당에서 했는데, 후식으로 나온 사과가 볼품이 없었다. 우선 크기가 작았고, 벌레 먹은 것도 있었다. 또 칼까지 주는 게 알아서 깎아 먹으라는 얘기더라. 우리는 우선 커야하고, 빛깔이 좋아야 하지 않는가.
‘이탈리아 농업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 생각이 들었지. 그런데 일행분이 말한다. “이탈리아는 유기농 농업을 주로 해요. 농약도 하지 않고, 사과 크기도 우리처럼 크게 키우려고 하지 않아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 농림장관이 와서 이탈리아 농림장관하고 회담을 하고 과일 농장을 찾았대요. 우리 장관이 과일이 작고 볼품 없는 것을 말하자 이 나라 장관이 하는 말이 ‘한국에서는 과일을 입으로 먹지 않고, 눈으로 먹나 보지요 ?’ 하더래요” 고개를 끄덕였었지.
우리는 흔히 때깔이 좋아야 한다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맞추는 수밖에....
“틀은 어디서 팔지요 ?” “글세, 잘 모르겠는데.... 돈 많이 달랠 걸” “어떻게 만드나 보기만 해도 될 텐데.....” 그러자,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해 주신다. 대충은 알겠더라. 용접을 할 줄 아니 여러모로 쓰임새가 생긴다.
다른 차들이 배추를 실은 방법도 공부거리고 용접한 모습 등 배울 게 널렸더라. 내 차례가 되어 하차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차하시던 분들이 “사장님 배추 농사 잘 지으셨네요 ” 하시던 말씀이 내 맘을 든든하게 하더라. 이제 내일 새벽까지 기다리면 된다. 온 식구들이 늘어졌지. 전 가족이 힘을 모아 함께 했던 첫 사업이었다. ‘우리 아들들이 다 컸구나’ 흐뭇하더라.
“여보 노랑끈이 3200원, 파랑끈이 2400원 이래요” “응 겨우 ?” 서운하더라.
다른 집 노랑끈 망을 들어봐도 우리 것만큼 묵직한 게 없었는데....
그냥 30만원 정도 했으니까 다행이라 생각했지.
나는 다시 정산으로 향했다. 어제 뽑아 망작업까지 해놓은 배추를 싣고 경매장에 가면 되었다. ‘오늘은 간단하겠다. 여유있게 해야지’하고는 정산집에 들려서 철장 두어군데를 보수하려고 했지. 그런데 마가 낄려고 했는지. 뒷걸음을 치는데 철장이 창고 지붕에 닿았네. “우지끈, 쿵쾅”거리더니 철장 한 쪽이 부서져 내리네. ‘아하 방심했구나. 야단났네. 철장을 다시 고쳐서 배추를 실어야 하는데....’ 후회가 단단히 되더라. 할 수 없지. 팔을 걷고 덤벼들었지.
오후 세 시가 되어서여 겨우 고쳤다. ‘겨울 해는 금방 넘어가는데....’
또 오늘은 혼자서 실어야 하니까 겁도 나더라. 하나하나 차근차근 실었지. 어제 공판장에서 보고 들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
조심조심 달리다 보니 어제보다 더 늦게 경매장에 도착했다.
어제 그 사장님이 또 와 계셨다. 반갑게 맞아 주신다. “배추 많이 심으셨나 봐요. 매일 오시게.... ” “아녜요 이 다음부터는 비닐하우스 안에 심은 걸 뽑아야 하는데 아직 속이 덜 찼어요. 김장철이 지나면 배추 값이 떨어질 텐데....”
“아녀, 모르는겨. 지금은 너도나도 내 놔서 외려 싸요. 저봐요 널린 게 배추잖어. 어제보더 훨씬 많어.” 사실 그렇다 온 천지가 배추더라. 많으면 쌀 수밖에.... ‘그럼 어떡하나 ?’
“하우스 안에 있는 배추는 얼 염려도 없으니깨, 낮에는 문을 조금 열어주고 밤에는 닫아서 따뜻하게 해줘요. 한 겨울에 뽑아서 내면 비쌀 수도 있어요”
세 시간을 대기하다 겨우 하차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
‘어제 만큼은 나오겠지’ 하다가 벼락을 맞은 거지.
‘이제 두 차를 뽑아냈고, 적어도 두 차는 더 해야 하는 데.... 포기하나 ?’
아산의 고모님이 배추를 많이 심으셨는데 값이 너무 싸니, 아무나 뽑아다 먹으라고 내놨다는데...
어쨌든 맥이 다 풀린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움직이긴 해야지.
백제당, 도명당을 들러 거름을 싣고 정산으로 향했다. 어제 급하게 보수한 철장은 여기저기 끈으로 묶어서 버티게 했지. 그래도 배추를 다 내려놓으니까 그 때부터 내려 앉더라. 제 책임은 다 한 거지. ‘이 번엔 제대로 고쳐야지’
정산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갔다. 키가 훌쩍 크지만 속이 덜 찬 배추들이 싱싱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놈들을 포기하나 ? 그러긴 너무 아까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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