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잘 모르지만, 그의 가르침은 대체불가의 생명이요, 진리다. 그것을 통하지 않고는 진리에 이르는 길은 만날 수 없다. - 어느 낙서장에서 - |
누구나 사랑하는 이가 있기를 바라지만.. 주위에 사랑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스쳐가는 인연은 적지 않은데..
내가 "현숙 씨" 하고 당신을 부르니,
당신은 사랑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움직여 누구를 바라보며 그를 부르면 볼록 나타난다.
사랑이나 행복은 문득 생겨났다가 어느 순간 그냥 사라진다.
온 곳이 없고, 간 곳이 없다.
"색은 공과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다 [색불이공 색즉시공]"
라는 문장을 <반야심경>에서 처음 만났을때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
처음에는 반야심경 내용 전체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니 거기에 섞여 잘 모르면서 지나쳤고,
뜻을 어느 정도 알았을 때는
과거처럼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도 그것의 성질은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소 atom에 이르게 된다고 알고 있을 때라면.. '색은 텅반 공' 이라 하면 많이 놀랐겠으나,
이제는 원소도 쪼개진다고 배우고 있으니.. 물질의 본질은 비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기에
'공이 곧 색' 이라는 말을 보면서도 그닥 놀라지 않는다.
허나 '색은 곧 공이다' 하는 것의 진실한 의미를 새긴다면.. 현재도 믿을 수 없는 매우 놀라워해야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내 몸과 생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내 무릎을 세게 치면 탁, 탁 소리가 나며 아픔을 느끼는데 이게 공이라고?!.
산에 오르는 동안은 힘들어 했고, 꼭대기에 올라 기지개를 펴며 흐뭇해 하는 몸을 지금 여기서 보며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텅 빔이라 할 수 있는가.
매우 놀라워해야만 한다.
또 놀라워해야만 하는 게 있으니..
그런 엄청난 말을 석가 부처님이 아니라 관자재보살님이란 분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누구이기에 부처님 눈[불안]이 되어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말을 하고 있느냐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부처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엔 다른 입장에서 놀람이다.
석가세존의 최초 가르침은 고집멸도 4성제라는 게 <초전법륜경>에 나온다.
고로 4성제는 석가모니가 세상의 부처님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소식이 된다.
그러기에 4성제는 불교에서 보면 어마 무시하게 귀한 가르침으로.. 영원히 그 뜻을 새기고 또 새겨야만 하는 진리가 아닐 수 없는데..
관자재보살은 다섯 글자로 그것을 무시하고 있다.
"무고집멸도".. 그런 거 없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자부하는 남방아시아 상좌부 불교에서 <반야심경>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닌가?
그러나 어쩌나 우리는 오늘 법회에서도 <반야심경>을 모두가 독송하고 있다.
헌데 그 누가 심경을 독송하면서 놀람과 찬탄의 울림을 느끼고 있는가..
당신을 부르니 사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지만..
놀람이 없듯이..
사랑은 사라졌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려면..
<심경> 독송할 때마다 놀람이.. 사랑이 생겨야 한다.
....................................
석가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가르친 4성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1. 세상이 탐욕을 일으킨 게 아니라 내가 탐욕을 일으키니 세상이 불타고 있다. 탐욕이 곧 괴로움이다.라는 고제.
2. 불이 금방 꺼지지 않고 계속 불붙고 있는 것은 내가 일으킨 집착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집제
이와같은 괴로움을 멸하고 싶다면..
3. 탐욕을 멸하면 부처님이 된다. 는 멸제
4. 멸하는 길은 8정도. 라는 도제.
언제나 다시 보아도 최상의 법문으로 보이는 4성제를 <심경>에서는 인정사정없이 단 다섯 글자로 뭉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석가모니께서 가르친 4성제 잘못이 아니라..
4성제를 지금도 무엇보다 성스럽게 가꾸고 있는 '남방 불교 4성제 이해'에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현숙 씨" 하고 당신을 부르니,
당신은 사랑이 되었습니다.
현숙은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존재다. 그런데 사랑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비존재 아닌가?.
당신을 부르면.. 존재였단 것이 비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존재는 존재일 뿐이고, 비존재는 비존재이다.
석가 수행자가 석가 부처님이 된 것은..
존재에서 비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비존재를 발견하고.. 비존재인 마음이 근본임을 깨쳤기 때문이다.
존재는 그대로 생로병사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비존재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깨친 것이다.
그런데 상좌부는 그런 비존재를 다시 존재화 시켰다.
그런 그들은 말한다. 완전한 고멸은 존재인 몸이 죽어야만 가능하다고..
석가세존은 지금 여기서 열반인 부처님이 된다고 가르치쳤는데..
불자들이 인사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인 "성불하세요.()^^"는 '죽어서 부처님 되세요' 하는 게 아니다.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님은 상좌부를 상징하고 있는 석가부처님 최고 제자 가운제 한 분인 사라붓다 상좌에게 말한다.
존재인 몸[색]을 보며 비존재인 몸[공]을 봐야 한다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아 공은 곧 색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 알 뿐 아니라.. 비존재인 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마음인 12처를 존재인 6근6경으로 알고 있으면..
거기서 완전한 괴로움을 얻을 수 없으니.. 그런 4성제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얻을 게 없습니다[무지역무득]
존재인 6근6경과 같은 12처라면 버려야 합니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므로 12처가 마음임을 깨친 보살님들은 항상 무아를 깨쳐 열반에 이른 듯 살아가며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다.
오늘도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감탄이 없는 것은..
'색즉시공'이라 입으로 외우고 있지만.. 색이 곧 마음인 공임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세음보살님은 지금도 부른다.
"가요 가요 함께 가요. 우리 모여 함께 가요. 너머가면 오호~ 빛이여.()^^"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 사바하.().
첫댓글 <반야심경>은 짧지만..
이해는 어렵다.
과거 무게에 짓눌린 자가 보고 있기에..